namsh@hitel.net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사람의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지고 각종 질병뿐 아니라 비만 등 타고난 체질이나 일부 성격까지도 유전자적 요인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종국에는 태어날 때 예상되는 질병,성격,수명 등등이 이미 정해져 그것으로 분류·분리될 수도 있는,조지 오웰이 예견한 '빅 브러더'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진 않다 할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일찌감치 모두 예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올까 끔찍한 일이다. 자신의 건강을 운명으로만 생각한 안타까운 친구가 있었다. 평소 다른 문제에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런 저런 방법을 모색하던 친구였지만 유독 본인의 건강만은 운명으로 치부하고 술이면 술,담배면 담배를 마구 마셔대고 피워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인에게서 의논 전화를 받고 참으로 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를 잘 못해 반강제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위내시경검사를 받아본 결과 말기 위암으로 완치는 불가능하고 생명연장 수술 및 항암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예의 그 운명론을 설파하며 치료를 완강히 거부하니 내게 설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향후치료방법,효과를 다 설명하고 최선을 다해보고 난 후 운명에 맡기자고 하였으나 그 친구는 이 상황이 내 운명이니 그대로 따르겠다며 굳이 조용히 지내기를 고집하는 것이었다. 투병 아닌 투병생활 중 통증으로 괴로운 나머지 몇번이고 안락사 시켜달라는 간청을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결국 가족 몰래 뒷산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다시 한번 숙연한 운명의 매듭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또 이런 분이 계셨다. 평소 건강과민증이라 할 정도로 조금만 이상증세가 있어도 곧 병원으로 달려가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다고 해야 안심을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최근의 건강진단에서 위암이 발견되었으나 조기암이라 수술 후 거뜬히 완치돼 80의 연세가 무색하게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 이 모두가 운명지어진 것이라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애초부터 운명론에 기대기보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생활자세가 아닐까. 건강운명론은 마지막 판도라의 상자처럼 결코 열어서는 안될 신만의 비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