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Sniper)'라는 말은 과거 인도에 근무하던 영국군 장교들이 작고 빠른 도요새(snipe) 사냥에 능한 명사수를 '스나이퍼(도요새 사냥꾼)'로 부른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워싱턴 일대에서 계속되고 있는 무차별 저격사건 때문에 전 미국이 떨고 있다는 소식이다. 첨단기법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보름이 넘도록 용의자 몽타주조차 작성하지 못한채 '지그재그로 걷고 기름을 넣을 때는 낮은 자세로' 등 안전수칙만 나오자 집밖에 나오는 걸 꺼릴 정도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처럼 무서운 건 없다. 때문에 전쟁에선 저격수 한 명이 전황을 뒤바꿀 수도 있다고 한다. 피격자가 지휘관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동료라도 단속적으로 울리는 총성에 계속 쓰러져 가면 병사들 전체가 엄습하는 당혹감과 공포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대응을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영화 '에너미 엣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에서 보듯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에서 독일이 참패한 것은 소련군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가 독일군 장교들을 차례로 쓰러뜨림으로써 독일 진영 전체를 교란시킨데 힘입은 것이라고도 전해진다. 워싱턴 사건의 경우 테러냐 단순범죄냐 논란에 상관없이 사회·경제적 파장은 테러 못지 않고 주민들은 두려움으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질 지경이라고 한다. 홍보회사 임원이 무심코 길가 공중전화를 받았다가 저격 목표가 된다는 내용의 영화 '전화 부스(Phone Booth,20세기 폭스)'는 11월 15일 예정이던 개봉이 무기 연기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알 카에다 조직을 와해시켰다는데도 미국내의 탄저균 소동과 연쇄 저격사건은 물론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 사건까지 세계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명분에 상관없이 전쟁엔 무고한 희생이 따른다. 강한 미국,끝까지 응징하는 미국을 보여주려다 미국민은 물론 전세계인이 어디선가 겨냥 당한다는 망상에 시달리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