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증권에서 터져나온 세우포리머 미수계좌 사건은 '제2의 델타 사건'으로 불릴 만하다. 사고의 규모와 경위는 다르지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증권사 영업관행상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었다는 측면에서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이 사건은 정체불명의 투자자가 지난 9일 한화증권 HTS에 접속,세우포리머 1백만주를 주당 5천6백60원에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현금 23억여원에 미수금 33억원을 더해 56억원어치의 주식을 매입한 것이다. 한화증권이 계좌에 들어있는 현금의 2.5배까지 매수주문을 낼 수 있도록 한 제도를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이 투자자는 주식을 산 다음 주가가 급락하자 증권사에서 빌린 돈 33억여원을 갚지 않고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발생한 델타정보통신 사건도 작전세력이 대우증권의 HTS를 악용했다. 대우증권 직원을 매수해 현대투신운용의 계좌정보를 알아냈다. PC방에서 비밀번호 몇번 입력해 접속이 되자 델타정보통신 주식 5백만주(2백60억원 상당)를 매수했다. 이 틈에 작전세력은 매집 주식을 모두 현대투신운용 계좌에 팔아치웠다. 대형 증권사고가 잇따라 터지는 배경에는 위험관리를 소홀히 하는 증권업계의 영업관행을 빼놓을 수 없다. 한화증권 등 대부분 증권사는 종목 구분없이 모두 투자자에게 외상거래(미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세우포리머의 경우만 하더라도 작전관련설이 파다했고 주가의 이상 급등락이 거듭됐으나 한화증권은 이 종목에 대한 미수거래를 허용했다가 수십억원의 손해를 볼 상황에 처했다. 대우증권도 온라인 거래때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금감원 증권거래소 등 증권당국도 사고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증권당국은 작전이 종료되고 세력들이 흩어져 도망간 이후에나 나선다. 상당한 인력과 권한을 갖고 있는데도 작전혐의를 사전에 적발,투자자에게 경고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증권업계의 잘못된 관행과 당국의 사후약방문식 대처로는 제3,제4의 사고를 막기 힘들어 보인다. 박준동 증권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