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 서울대 공대 교수(57)는 외환위기 이후의 국가경쟁력 제고방안인 '신(新)창조론'을 주창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창조적'이면서 '세계적'인 제품을 '능동적으로 결정한 가격'에 팔아야 한다는게 신창조론의 골자다. 현재 이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이브레이드'라는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머리 땋는 독창적인 기계를 개발, 수출하는 회사다. 신창조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 위해 본지에 4년여 만에 또다시 특별기고를 했다. ----------------------------------------------------------------- 1998년 1월에 필자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 '신창조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를 초래하게 된 배경의 반성보다는 이를 강대국의 경제적 침략으로 규탄하는 분위기였다. 기고문에서 필자는 외환위기는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 위기를 잘 활용하면 오히려 국가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호기임을 강조했다. 신창조론에서 제시한 국가 경쟁력의 소생 방안은 세 가지였다. 선진국 제품을 따라 만들던 모방답습의 악습을 버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새로운 '신제품'을 창조해야 한다. 내수시장 보호를 위한 국산품 애용운동에 집착하지 말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여야 한다. 논리에 맞지 않는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이다"라는 궁핍한 구호를 포기하고 "가격결정권만이 살 길이다"라는 새로운 구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이 가끔 그러하듯이 필자도 큰 부담없이 이상적인 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로부터 예상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매일 40∼50명이 전화를 걸어 "내 생각과 똑같다. 그러니 당신이 시범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이들 중에는 80대 할머니도 있었고 40대 주부, 초등학생도 있었다. 약 열흘간 전화에 시달리던 끝에 필자는 시범을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곧 전국 대학생 벤처 네트워크를 결성했고 '들어본 적도 없는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일상생활에 변화를 가져온 신제품들을 보면 대개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체계적으로 파악한 경우가 많았다.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파악하기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 인체 각 부위별로 관련된 제품을 분류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발과 관련된 기존 제품으로는 양말 구두 스케이트 각종 운동화 등이 있고, 손과 관련된 제품은 반지 장갑 손톱깎이 매니큐어 등이, 머리와 관련된 제품으로는 모자 헬멧 헤어드라이어 파마기 등이 있을 것이다. 학기 초 수업시간에 인체 각 부위와 관련된 제품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같이 제품 목록을 만들어보니 순식간에 5백가지가 넘었다. 학생들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체부위와 관련된 제품을 열거해 보니 머리 부위와 관련된 제품이 가장 많았다. 그러므로 신제품이 나올 확률도 머리 부분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목적.기능.형태별로 분석을 세분화했다. 이 과정에서 머리 땋는 기계가 아직 없다는 것이 파악됐다. 곧 전 세계 특허 내용을 조사하여, 이런 기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개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갈등이 생겼다. 첨단기술로 인정되는 로봇공학 교과서에 "사람 머리는 기계로 땋을 수 없다"고 단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로봇기술로는 기계로 머리를 땋을 때, 두피의 통증을 측정할 만한 정교한 센서도 없고, 모발이 빠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첨단 제어장치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과서 이론에 도전해 보자며 머리 땋는 기계 개발에 착수했다. 첨단이론의 저주를 받으며 시작한 개발은 결국 4년 후 완성됐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제품이 머리 땋는 기계, 브레이드매직(BraidMagic)이다. 그리고 브레이드매직 개발과정에서 얻은 고유 기술을 이용해 머리를 꼬아주는 기계,트위스트매직(TwistMagic)도 개발됐다. 이들은 아직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이다. 개발에 착수하면서 인간공학연구실은 모발의 구조,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분석했다. 인체의 모발은 용수철과 같은 탄성체다. 다루기가 쉽지 않은 특성이다. 당시 석사과정을 이수하던 윤정선양과 박주영양의 모발은 분석을 반복하면서 수없이 뽑혀 나갔다. 기계공학과 이우일 교수 연구실의 박사과정 이도훈군과 석사과정 김현재군은 사람이 손으로 머리를 땋는 과정을 기계공학적으로 분석했고, 인천기능대학교의 전순기 교수와 송출용군은 개념설계내용을 기구설계로 구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금오공대 장성호 교수팀은 재료의 물성을 이용한 기계적 센서 개발을 시도했다. 프로텍의 김상백 사장팀은 여러 공단을 왕래하며 양산설계를 진행했다. 시제품이 나올 때마다 영동대학 미용학과 교수와 학생들은 시술과정에 나타나는 크고 작은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그런대로 머리를 땋는 기계는 개발을 시작한지 1년 만에 제작됐다. 그러나 통증도 없고 모발이 한 올도 빠지지 않는 기계를 만들기까지는 3년이 추가됐다. 만들어 본 시제품 수는 70개가 넘는다. 이 과정에서 특허 2건이 22개국에 등록됐고,국제학술지에 두 편의 논문이 게재됐다. 손으로 머리를 땋으려면 열시간 내지 서른다섯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브레이드매직을 사용하면 서너시간 내에 땋을 수 있다. 땋는 가닥의 굵기도 0.1㎜부터 1.2㎝까지 다양하게 바꿀 수 있고 가발을 연결해 땋으면 짧은 머리도 50㎝ 길이로 늘려 땋을 수 있다. 모발을 손으로 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문이 닳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위스트매직은 한 가닥부터 네 가닥의 모발을 단시간 내에 꼬아준다. 이렇게 해서 만든 브레이드매직,트위스트매직은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10여 개의 전시회에 출품됐다. 2001년 미국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서 열린 세계 미용 전시회에서는 '올해의 신제품'으로 선정돼 현지 신문에 소개됐다. 영국 런던에 있는 아프리카 문화박물관에서는 인류의 머리 땋는 문화를 대표하는 첨단기계로 선정했고, 2001년 10월부터 두 종의 기계를 전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헤어디자이너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알도 코폴라씨는 이 기계로 정교한 헤어스타일을 개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프랑스의 클레어사는 중세 유럽의 상류사회에서 유행했던 헤어스타일을 이 기계로 재현할 계획이다. 도쿄와 오사카의 유명한 미용 백화점에서는 이 기계의 보급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필자는 여러 전시회에 참석했다. 전시장에서는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비슷한 질문에 성실히 응해 주어야 한다. 가장 많았던 질문은 "어떻게 해서 이런 제품을 개발할 생각을 하게 됐느냐"이다. 처음에는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설명에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 간단한 내용으로 대답했다. "우리 민족은 5천년 동안 머리를 땋았다." 짧은 대답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에서 이런 제품이 나올 만하다"고 공감했다. 2002년 들어 브레이드매직은 미국 프랑스 일본 등 9개국에 수출됐고, 국내 2백여 군데 미용실에서 사용되고 있다. 트위스트매직은 9월부터 국내 출시와 함께 미국 프랑스 일본 등지로 선적이 시작됐다. 신문 기고문에서 제안했던 세 가지 원칙 중에 첫 번째 요건이었던 "존재하지도 않는 신제품 개발"은 시범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남은 과제는 우리 미용인, 미용산업과 협력하여 '세계시장'에서 '가격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