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lee@univera.com 푸른 가을의 대기 속에 투명하게 펼쳐진 서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북한산을 병풍 삼아 한강의 도도한 물결이 휘감아 도는 곳,고풍스런 옛것과 역동적인 새것이 공존하며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는 자연경관과 역사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명성에 먹칠하는 교통난만 아니었다면,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늘 붐비는 차로와 사방으로 뒤엉킨 교차로,파란 불이 켜지기도 전에 출발하고 빨간 불이 켜진 후에도 멈추지 않는 악착스런 운전자들…. 고질적인 교통정체는 도시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비경제적 요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치명적인 해악은 교통난이 우리 본연의 인성을 메마르고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도시사람들이 대개 신경질적이고 조급하며 공격적이라는 평가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그것은 우리 본연의 민족성 때문이 아니라 삶의 여유를 잃게 만드는 교통환경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월드컵 기간의 체험 덕분이다. 월드컵 기간에 차량2부제를 한다고 했을 때 사실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서 곧 익숙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면서도 일과를 처리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음은 물론 오랜만에 차안에서 책을 읽거나 창가에 기대 졸기도 하는 그 여유가 달콤하기조차 했다. 겪어보니 차량2부제를 전면화해도 별 문제가 없겠다 싶다. 차량2부제 실시를 위해서는 여러모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생업용 차량에 특별허가를 내준다든가,2대 이상 보유가구에 대해 과세를 대폭 강화한다든가…. 세부적인 사항은 정책담당자들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질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는 용단일 것이다. 교통지옥을 헤매면서 상호불신과 짜증으로 하루를 보낸다면 그런 풍요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다. 교통난이 완화되면 얼마나 큰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검증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