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68)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다. 스타이넘은 미국 오하이오 태생으로 1956년 스미스대를 졸업한 뒤 에스콰이어 글래머 보그 매콜 뉴욕타임스 등의 필자나 편집자로 일했고 방송작가 모델로도 활약했다. 60년대엔 흑인의 시민권 보장, 베트남전 종결,빈민 돕기,여성의 권리 등 다양한 주장을 폈으나 70년대부터는 여성문제에 집중했다. 60년 '여대생 베티의 도덕적 딜레마'(에스콰이어)라는 글에서 "피임혁명의 진짜 위험은 남성의 태도 변화 없이 여성의 역할 변화만 가속화된다는 것"이라고 쓴 그는 63년 '나는 플레이보이 바니였다'라는 르포기사를 통해 플레이보이클럽 여종업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폭로했다. 68년 '뉴욕'에 '도시정치'라는 정기칼럼을 게재하면서 유명해진 뒤 71년 베티 프리단 등과 함께 '여성행동 연합'을 창설했다. 72년 클레이 펠커와 '미즈'를 공동창간한 뒤 임신중절 합법화와 임금차별 폐지,여성의 의회진출,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여성연대 운동 등을 펼쳐 83년 하퍼스바자 선정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명의 여성'중 한명이 됐고, 99년 ABC방송이 뽑은 '20세기를 빛낸 여성 1백명'에 선정됐다. '과격한 행동과 일상의 반란' '내부로부터의 혁명' 등 4권의 책을 펴냈다. 남성을 적대시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여성적 매력을 십분 이용한 것으로도 알려진 그는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나 뉴욕시장 존 린제이와 정기적으로 점심을 같이하고 상원의원 유진 매카시,바이킹출판사 사장 톰 귄즈버그 등과도 염문을 뿌렸지만 결혼하지 않았다. '결혼은 여성을 합법적 반쪽인간으로 만든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그러나 2000년 "페미니즘이란 여성이 어느 때든 옳다고 생각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며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했다. '여성운동의 미래는 낙관적이지만 어떤 것도 저절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다'던 스타이넘이 결혼 2년 뒤인 지금 과연 어떤 생각과 행동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