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겨져온 미국식 경영시스템에 대한 회의론이 최근들어 세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방식을 일방적으로 추종할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경영체제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도 비슷한 시각을 담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우량기업으로 꼽히던 GE나 머크까지도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이는 등 미국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데 따른 일시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외환위기 이후 서둘러 도입한 미국방식의 실효성을 점검해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미국식 경영'의 골자는 스톡옵션을 이용해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보상을 경영실적과 연관시키는 한편,사외이사제도를 통해 경영투명성을 강화하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미국의 장기호황과 이른바 '신경제' 대두에 힘입어 이 시스템은 90년대 중반 이후 유럽과 아시아 등지로 급속히 확산됐고,특히 통화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이같은 '선진'방식 채택이 개혁조치의 일환으로서 당연시됐던 것은 우리도 경험했던 일이다. 그러나 신경제가 몰락하자 그동안 가리어졌던 미국방식의 갖가지 문제점이 한꺼번에 노출되고 있다. 스톡옵션을 의식한 나머지 지나치게 단기업적에 집착하다 보니 분식회계를 저지르는가 하면,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은 그들을 감싸고 대변하는 '홍보이사'로 전락했다. 심지어 회계법인이나 투자은행들까지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경영실적과 기업가치를 부풀린 탈법·편법행위를 모른체 하거나 조장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분식회계 사태는 아무리 좋은 제도도 작게는 기업환경,크게는 경제발전 수준에 걸맞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금융 등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크고 기업지분이 분산돼 전문경영인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우리는 제조업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지속해왔고 중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창업자나 대주주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울뿐인 사외이사의 수를 늘리거나 명목상의 부채비율을 맞추도록 규제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물론 회계기준과 관행을 개선하고 감독을 강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영시스템은 '제도'보다 '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우리 현실에 맞는 경영시스템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