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게이트의 의혹에 힘입어 대선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이회창 대세론이 빌라게이트 한방에 힘을 잃고 있다. 대안 없이 독주가 예상되던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는 요사이 '노풍'에 밀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민심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추대론까지 거론되며 이회창 후보의 일방적인 우세를 점치던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역시 최병렬 의원의 참여로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2000년에 합계 7천7백3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던 3백55개 벤처기업은 2001년에는 3천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1년 만에 1조원 이상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2년 1분기의 순이익이 2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에 주가가 사상 최고인 40만원을 넘어 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나 남북관계 역시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베이징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내일 뉴욕에서 태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카오스 현상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의 암살 사건이 촉발한 제1차 세계대전,기술적으로는 평범한 소프트웨어인 MS-DOS의 채택에서 비롯된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상,9·11테러가 초래한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재편 현상 등은 우연한 사건이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의 결과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제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 우연한 작은 요동이 증폭돼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려 혼돈을 초래하고,그 혼돈 속에서 더 큰 새 질서가 창발되는 '복잡계시대'의 특징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이 두드러지고 있는 경쟁시장의 결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반드시 가장 우수하고 효율적인 기술이나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수준 미달의 기술이나 제품이 오랫동안 시장에 존속할 수 있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에 바탕을 둔 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따라 시장의 소비자들은 몰라보게 현명해져서 웬만한 기술로는 시장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 1970년대의 VTR전쟁에서 거둔 VHS방식의 승리 역시 기술적인 우위가 원인이 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는 소니의 베타 방식이 우수했으나,독자적인 판매망 구축을 통해 기술개발 이익을 독식하려던 소니의 꿈은 콘텐츠 업계의 가세로 시장점유율 우세를 계속해서 벌여나간 VHS 연합군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초기의 조그만 차이(초기조건의 차이)가 바로 되먹임(positive feedback)의 증폭효과에 의해 수확체증의 법칙으로 연결됐던 것이다. 기술이 안정된 표준규격품·대량생산체제 시장에서의 경쟁원리는 품질관리와 원가절감이다. 그러나 지식경제에서의 경쟁원리는 차세대 기술의 개발,진입장벽의 구축 및 소비자와 협력업체로 소 생태계를 구축해 경쟁자와의 격차를 벌이는 수확체증의 세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최고의 기술,가장 싼 제품,최고의 품질보다는 다수의 참여를 성취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을 석권하고 이익을 독식하는 것이다. 정부의 엄격한 규제와 감독에도 불구하고 단말기 보조금을 부담하면서 가입자를 늘리는 이동통신업체의 전략,'길거리 가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회사들이 기를 쓰고 신용카드 발급을 늘리는 이유,신문고시의 논란을 불러 올 만큼 치열한 신문업계의 경쟁 등은 모두 수확체증시대의 상황과 전략을 웅변하고 있다. 기술력의 차이가 있는 분야에서는 차세대 기술력이 시장 석권의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그러나 기술력의 격차가 6개월을 넘기기 어려운 시대에는 생태계의 강도와 크기가 시장경쟁력을 좌우한다. 생태계의 중심은 소비자다. 초기에 소비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비자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선 어떤 희생도 각오해야 한다.특정 기술이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차세대 기술을 제시하지 않으면 소비자의 환심을 살 수 없다. 구 기술로는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승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하는 복잡계 세계의 경쟁원칙이다. ilsupkim@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