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원짜리 복권당첨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전국의 복권방이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나도 한번 재미 삼아 복권방에서 즉석복권을 사서 긁어 보았더니 '꽝'이었다. 사무실 근처 구두 닦는 총각의 '박스가게'를 지날 때 차라리 구두나 닦을 걸 생각하니 아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선착순으로 아파트 청약한다고 밀치고 당기고 '떴다방'이 뜨고 난장판을 이루었다. 학원이 좋다고 강남에는 '맹모(孟母)'들이 몰려들어 값은 고하간에 물건이 없다고 한다. 뒤늦게 국세청이 나서자 '떴다방'은 사라졌는데 진작에 그럴 것이지 다 오르고 나서 그러면 이미 올라버린 아파트 값은 어찌 하란 말인가.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전세 반 월세 반' 놓고 신도시에 가서 '전세금으로 전세 얻어 월세로 생활'하는 게 최고의 노후대책이라는 말도 돈다. 오래 전 옛날에 고시보다 힘든 경쟁을 뚫고 당첨된 강남의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노후대책은 잘 했지만 미리 차지하고 있는 것이 공연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추첨으로 배정된 학교가 불만이라 항의하며 소란이 일었다. 그래도 불만이라 서울로 전학원서 낸다고 온 가족이 순번을 돌며 밤을 새우는 야단법석도 일어났다. 복권 추첨식으로 학교 가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증권회사 객장에는 아침부터 '개미군단'이 가득하게 모여든다. 선진국에는 '기관'들이 설치는데 어느 나라에 '개미'들이 이렇게 많은지 알 수가 없다. 코스닥에 올려 '대박'을 노리던 '벤처'들의 거품이 꺼지면서 '게이트'가 터지고 줄줄이 잡혀간다. '벤처'는 그 뜻대로 '모험'인데 실세에 줄을 단다고 '대박'이 터질 수 있으랴.알면서도 권유 때문에 조금 투자했는데 아무래도 잊어버려야 할 것 같다. 선거 때만 되면 거품 같은 '신당'이 고질병같이 도진다. 얌체같이 탈당에 '되탈당'을 해도 '한마리 연어'라도 읊고 '쎈놈'한테 붙어 '신장개업'하면 장사가 된다. 뺏어 갈 때는 반기다가 돌아갈 때는 심술을 부린다. 너도나도 용이라고 나서니 잠룡(潛龍) 같기도 하고 토룡(土龍) 같기도 하다. '개혁'도 내세우고 '제왕'도 탓하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고 장군에 멍군 같아 도대체 알 수 없다. 온통 '재빠른 놈 먹어라'고,'복 있는 놈 먹어라'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스캔들'이다. '느린 놈' '복 없는 놈'은 이래저래 살기 힘들고,'고지식한 놈' '바르게 사는 놈'은 자꾸 밀린다. 열심히 장사해도 끈 다는 놈에게 못이기고,열심히 저축해도 투기꾼에게 못당하고,'고해성사'하는 정치인은 바보가 된다. 천하의 명장(名將)도 복장(福將)에게 못당하고,재수 있는 놈 연못에 빠져 붕어 잡아 나오는데,재수 없는 놈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지기 예사다. 절대 없다는 지역차별인데 그럴 리는 없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다는 얘기가 많으니,옛날에 누가 그랬듯이 아무래도 청산거사(靑山居士)로 자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이 8년의 유배생활을 하며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다는 적거지를 찾아가니 모슬포에서 차가운 바닷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었고,18년을 유배당하고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해 5백여권에 달하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저작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말년을 보낸 저택과 묘소에 갔을 때는 팔당호에서 강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왔다. 투전판 같은 세상에서 '장땡'은 못잡아도 '갑오'정도는 잡았으니 그것만 해도 대수(大數)로 생각되고,친구 말마따나 노후대책도 다 해 놓고 청설간서(聽雪看書)하며 살고 있으니 이 또한 다행 아닌가. '재빠른 놈' '끈다는 놈' '같잖은 놈'들 설치고,노력해도 '복 없는 놈'은 당하는 세상사는 그래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아무래도 보지 않을 수도 없고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오늘도 죽마고우가 써 보낸 액자 속의 시를 읽으며 하루를 닫는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