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원 < 자민련 국회의원hakwonk@assembly.go.kr > 어린시절 어느 여름날 늦은 오후. 어머니는 컴컴한 방 안에서 문만 열어 놓은 채 방바닥에 홑이불을 펴놓고 꿰매고 계셨다. 그때 어디선가 난데없이 날아온 책보가 이불 가운데 떨어졌다.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귀여움만 받으며 천성이 놀기 좋아했던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보를 방 안에 휙 던져놓고 도망가려다가 그만 들켜 버리고 만 것이다. "게 섰거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장차 무엇이 되려고 베짱이처럼 놀러만 다닐거냐.게 섰지 못하겠느냐!" 내일 모레면 환갑이 되실 어머니는 웬 힘이 그리 센지 도망가는 나를 끝까지 쫓아왔다. 나는 동네사람들 보기가 창피해 산으로 도망치는데 쫓아오던 어머니가 숨이 턱에 닿아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겁이 덜컥 난 나는 도망가던 발을 멈추고 뒤돌아와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집으로 끌려와 골방 구석에 갇힌 채 회초리 5대가 다 부러지도록 맞아 종아리에 빨갛게 피가 흘렀다. 그날 밤 나는 곤하게 잠이 들었는데 무언가 종아리가 따끔따끔하는 아픔에 잠이 깼다. 어머니께서 내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모른척하며 자는 시늉을 했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귓불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후 나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을 하느니,무얼 하느니 하면서 어머니 속을 썩였다. 그러던 어느날 사법시험을 치르고 나오니 조카들이 몰려들어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너희들 웬일이니?" "오늘 아침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삼촌 시험 보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해서 알리지 않았어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온갖 희생만하고 끝내 내가 사법고시 합격하는 것도,법관이 되는 것도,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당신 할 도리만 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오늘도 종아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머니의 따끔한 매와 진한 눈물의 흔적을 애써 찾아보지만 세월은 무심하기만 하다. 앞으로 내가 잘못하는 일은 누가 따끔한 회초리로 고쳐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