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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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경제상황은 처참했다. 1950년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20%에 불과했다. 이는 멕시코나 콜롬비아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식량은 배급제였고, 수많은 사람이 굶주렸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 실제 많은 가정에 문손잡이가 없었다. 쇠붙이는 몽땅 전쟁 물자로 징발됐기 때문이다.

소니의 성공

경제상황도 어려웠지만, 재건도 쉽지 않았다. 연합군은 1945년부터 1952년까지 평화 유지 목적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생산과 산업정책을 통제했다. 신속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당시에 ‘메이드 인 재팬’은 질 낮은 상품을 일컫는 표시와 다르지 않았다.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가 만든 제품도 대부분 저품질이었다. 딱히 물건을 사줄 소비자도 없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끊임없이 기회를 엿봤다. 이들은 대기업이 포기한 시장에 초점을 맞췄다. 그중 하나가 1949년 개발한 휴대용 녹음기였다.

당시에 녹음은 특수하고 복잡한 기술이었다. 사람들은 휴대용 녹음기에 매료됐지만 구매하진 않았다. 이들은 여기서 기다리지 않았다. 1951년 도쿄레코딩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판매, 유통, 광고, 훈련, 고객 서비스를 담당했다. 전국 학교를 돌면서 제품을 홍보하고, 고객 경험 개선을 목적으로 애프터서비스를 시행했다. 이후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1955년에는 포켓용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만들어 진공관 라디오 시장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1950년부터 1982년까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제품만 12개가 넘었다. ‘시장은 누군가가 창조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로널드 코스의 지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는 1958년 사명을 ‘소니(SONY)’로 바꾼다.

도요타의 성공

1937년 창업한 도요타의 성공도 소니와 닮아 있다. 도요타 창립 당시 일본 거리에는 말이 끄는 탈것 31만 대와 소가 끄는 탈것 11만1000대가 돌아다녔다.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었다. 도요타 회장 기치로는 열악한 도로 사정에 어울리는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과 처지가 비슷한 주변 동아시아 국가를 목표로 삼았다. 1980년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도 미국 차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끊임없이 기존 자동차를 구입하지 못하는 소비층을 공략한 것이다.

소니가 도쿄레코딩을 설립했듯 도요타 역시 중부일본자동차학원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이 학원은 1958년 신입 직원들의 자동차 판매 방법을 훈련하는 도요타판매대학으로 발전한다. 이렇게 비포장도로에서 팔리는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하자 더 많은 공장을 지어야 했고,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야 했다. 많은 자본과 노동력이 도요타로 몰려들었다. 1938년 29개였던 도요타의 직영 판매점은 1980년 일본 전역에 300개가 넘었다. 고용도 급증했다. 1957년 6000명 규모였던 직원은 10년 뒤 3만2000명에 육박했다.

새 시장 만드는 스타트업

도요타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포장도로에 맞는 자동차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이후 1958년 미국에 진출해 기존 ‘빅3’와 경쟁한 것이다. 문제는 도요타 크라운이 비포장도로에 맞게 설계됐다는 점이다. 미국의 아스팔트에서는 시속 60㎞만 넘으면 차체가 마구 흔들려 사이드미러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1961년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포기는 아니었다. 소형차 코롤라로 다시 도전했다. 미국 빅3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면서 소형 시장을 창출했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경제 시대에도 어떤 이유로 소비하지 못하는 계층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스타트업이 환영받는 이유는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작다는 이유로, 청년이 창업했다는 이유로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할 수 없는 틈새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 세상에 기여하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창업하는 주체도, 지원하는 주체도 왜 스타트업이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스타트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