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AI)이 그동안 인간의 전유물로 여기던 예술 세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과연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작품인가, 제품인가?
‘챗GPT(사용자와 주고받는 대화에서 질문에 답하도록 설계된 언어 모델)’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래 봤자 인공지능(AI)이지’라고 생각했다가 깜짝 놀란 사람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전속 비서가 말해주는 듯 질문 내용을 정리해주는 챗GPT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세상이 또 한번 변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먼 미래로만 느껴지던 AI가 갑자기 우리 현실에 진입한 것이다.
AI 열풍은 단순히 텍스트 기반의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와 영상 등 창작물에도 온전히 적용되고 있다. 이미 우리는 키워드 몇 가지만 넣으면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AI 이미지 생성 사이트 이름을 10개는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이미지들은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독창성을 지녔다. 여기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 생긴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희로애락, 철학적 사고, 감성적 인과관계가 배제된 이미지를 작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대답하기 전 AI가 최근처럼 글로벌 이슈가 되기 전부터 AI를 활용해 작품을 해오던 작가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건 ‘오비어스(Obvious)’다. 오비어스는 AI 스타트업 기업이다. 프랑스의 20대 학생 세 명이 만든 이 회사는 지난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의 초상화>라는 제목의 작품을 출품했다.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작품 1만 점 이상을 AI에 학습시켜 창조해낸 그림이다. 물론 에드몽 드 벨라미는 가상 인물이다. 이 작품은 경매에서 43만 달러(약 6억 원)라는 놀라운 금액에 판매됐다. 턱없는 금액은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로 가는 선구자로서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미 5년 전 일이니 당시로서는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오비어스는 같은 이름의 디지털 아트 플랫폼을 오픈하고, 이곳에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를 작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이름은 ‘애런 코블린(Aaron Koblin)’이다. 애런 코블린은 구글의 데이터 아트팀을 이끈 엔지니어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는 빅데이터를 시각화해 데이터의 움직임 자체가 미디어 아트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인물이다. 그가 2014년 미국 산호세 공항에 설치한 ‘eCLOUD’는 미국 기상청에서 실시간 데이터를 받아 전 세계 날씨를 보여준다. 공항에 설치한 거대한 스마트 글라스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전 세계 기상 상황이 비주얼로 뜨고, 천장에 설치한 대규모 사각형 타일은 구름과 비, 바람 등을 형상화한다. 당시에는 ‘이걸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10년 전에는 AI가 만든 데이터 뭉치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 테니까.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작품인가, 제품인가?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작품인가, 제품인가?
(위) 2018년 오비어스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선보인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화>.
(아래) 애런 코블린이 2014년 미국 산호세 공항에 설치한 eCLOUD.


그럼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는, 최근 엄청나게 핫한 작가가 있다. 바로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이다. 이미 그래미 어워드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여러 번 전시를 진행한 바 있는 유명 아티스트다. 아나돌은 AI와 빅데이터를 물감처럼 사용하며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최근 현대미술의 주요 갤러리 중 한 곳인 뉴욕 모마(MoMA)에서 ‘Unsupervised(감독하지 않은)’라는 제목의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제목도 그렇지만, 작품의 내용 또한 만만치 않다. 갤러리 1층 로비에 설치한 거대한 LED 화면에는 화려한 색채의 촉수 괴물 같은 영상 이미지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이어진다. 아나돌은 모마가 소장 중인 13만 장 이상의 이미지를 AI가 학습하게 했다. 몇 달간 학습 후에는 맞춤형 소프트웨어와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 심지어 이 이미지는 외부 날씨나 관람객의 움직임 등을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모마가 홈페이지에 이 작품을 소개하며 내건 첫 문장은 이렇다.
‘모마의 소장품을 본 기계는 어떤 꿈을 꿀까?’
이 설명 그대로, AI가 수면 중 꿈을 꾸는 것처럼 이미지는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관람객의 시각을 자극한다. 모마 같은 초대형 갤러리에서 AI가 만든 이미지를 1층 로비에 전시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AI가 창조한 작품을 현대미술의 영역에 포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모마가 ‘예스’라고 대답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AI가 그린 작품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는 엇갈린다. 프레데리크 바움가트너 컬럼비아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소변기를 작품이라고 내놓았던 마르셀 뒤샹 등 과거 예술가들도 그랬다”며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독일 미술가 마리오 클링게만은 “점을 연결한 애들 그림”이라고 혹평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작품인가, 제품인가?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작품인가, 제품인가?
(위) 뉴욕 모마(MoMA)에서 전시한 레픽 아나돌의 작품.
(아래) 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무대 뒤 배경으로 레픽 아나돌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앞서 나는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는가?’가 논쟁적 질문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반대로 묻고 싶다.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작품으로서 가치를 갖지 못할 이유는 뭔가? 예술은 꼭 인간의 감정과 철학을 기반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인간의 창의력을 막고 작품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글쎄, 나는 그것이 너무 순진한 소리 같다. 인간의 창의력이라는 것도 결국 그들이 지금까지 보고, 듣고, 입고, 말한 것을 기반으로 생성된 것일 테니까. 인간의 작품을 보고 아무 감동 없이 지나칠 수 있는 것처럼,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보고 격렬한 감동에 빠질 수도 있다.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작품 자체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글 이기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