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영향 · 신뢰·속도·스펙 통제 등 정성적 요소도 중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계정(ID)을 기반으로 솔직하고 진실한 소통을 한다. (사진=연합뉴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계정(ID)을 기반으로 솔직하고 진실한 소통을 한다. (사진=연합뉴스)
위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모든 위대한 발전은 리스크 감수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정보기술(IT)의 발전이 어떤 리스크를 감수했고 어떤 요소들의 제약을 극복했고 어떤 환경의 영향을 이용해 이뤄졌는지 알아보자.

IT의 발전은 기술 진화, 인재 확보와 같은 정량적 요소도 필요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받는 정성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1) 지리적 영향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오면서 후지필름은 살아남았지만 코닥필름은 뒤처졌다. 카메라업계 디지털화의 핵심은 일본이다. 후지필름·니콘·캐논 등 기존 세력도 일본에 있었고 전자 부품을 개발하는 곳도 일본 기업이기 때문이다. 모든 트렌드가 일본을 중심으로 생기고 있었다.

반면 코닥은 미국이 본거지다. 디지털화의 거센 트렌드를 피부로 느끼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일본에서 디지털 카메라가 탄생한 배경에는 지인·친구·주변 환경·분위기 등 비공식적인 정서적 영향도 한몫했다.

디지털화라는 같은 목적을 가진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이 트렌드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줬다. 이는 후지필름이 다른 기업을 제치고 디지털화에 성공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지역’이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세계 2위 고속 충전기 생산 업체 트리티움을 살펴보자. 2021년 8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50%를 친환경 자동차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인프라 구축이 중요해졌고 너도나도 업계에 뛰어들었다. 트리티움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기후 환경’이라는 지리적 조건, 니치 시장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DC 충전기는 섭씨 영하 35도 기후에 적합하도록 제작된다. 하지만 알래스카 지역의 공공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이보다 더 추운 극한의 기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DC 급속 충전기가 필요했다. 섭씨 영하 42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트리티움은 극한의 기후에서도 견딜 수 있는 전기차 충전기를 만들었고 알래스카의 전기차 상용화를 한 발 앞당기는 결과를 창출했다. 이 업체가 알래스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유일의 완전 수랭식 충전기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온도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유지·보수 관리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큰 도심이 아닌 지역에서도 충전기를 쓸 수 있다. 트리티움은 대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세계 2위까지 올랐다.

핀란드처럼 추운 지역에서 난방과 IT가 접목된 사례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센터를 활용해 난방 기술을 개발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에서 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냉각 시설이 필수로 갖춰져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버에서 발생할 열을 단열 파이프 시스템과 연결해 헬싱키와 주변 지역의 난방으로 쓰고 있다. 핀란드는 화석 연료를 사용했지만 열을 이용해 연간 40만 톤의 탄소 배출을 저감했다.

앞으로도 데이터센터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서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사업성도 커지게 된다. 난방에 민감한 지역과 IT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데이터센터라는 환경을 접목해 최고의 효과를 낸 예다.(2) 신뢰로부터 영향검색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통해 정보에 다가가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일반 웹과 달리 신원 확인이 된 계정(ID)을 기반으로 솔직하고 진실한 소통을 한다. SNS는 수많은 웹 서비스를 자기중심으로 엮어 간다. 그래서 신문·방송 언론사들도 모두 공식 홈페이지 이외 SNS 계정을 만든다.

불특정 다수의 실시간 이슈 검색을 통한 전파보다 이 SNS가 더 빠르게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통한 ‘정성적’ 전파 효과와 공유하기 쉽고 편한 SNS ‘기술의 발전’이 시너지를 냈다.

2018년에는 세계 주요 국가에 스마트폰 보급이 일제히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다. 첫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계속 확대돼 온 시장이 정점을 찍었다. 스마트폰 다음으로 태블릿·PC·노트북·소셜 미디어 등 IT 산업의 성장 정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감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소셜 미디어 자체보다 어떤 ‘감성’으로 구성된 소셜 미디어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효율이 보장되면 인간은 매력을 원하게 된다. 삶의 효율이 충분히 높아지면 매력과 재미의 질을 추구한다. ‘사람’과 ‘감성’이 중심이 된다. 어떤 것을 말하는지보다 누가 말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IT 기업은 회사에 대한 신뢰로 승부하지 않는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인화해 그가 가진 스타일이나 매력을 가지고 어필 포인트를 잡는다. 무조건 소비자의 취향을 맞춰 주는 대신 소비자가 매력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더 나아가 매력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따라 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3) 스펙 통제가 가능한 환경의 영향도요타가 후지산 근처에 개발 중인 스마트 시티 우븐시티는 일반 차량 없이 자율 주행 로봇만 다니는 로봇 전용 물류 터널이다. 도시의 한 층 자체를 이 물류 터널에 할당한다는 아이디어다.

자율 주행이 아닌 일반 트럭 같은 보통 차량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고 크기나 속도나 스펙이 다른 차들을 다 신경 쓸 필요가 없다.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활용한 자율 주행 로봇은 모두 동일한 스펙의 개체가 같은 신호와 룰에 따라 움직인다.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동 속도와 흐름이 인간이 운전하는 교통수단과 비교가 안 되게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자율 주행 운송 로봇만 다니게 하면 에너지 효율도 크게 높일 수 있다. 작은 크기 운송 로봇은 에너지 효율 높인다. 1kg짜리 치킨 배달에 70kg의 사람이 100kg의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고 있다. 이제는 170kg 대신 10kg의 운송 로봇만 필요한 셈이다. 에너지 효율이 몇 배 좋아진다. 연료가 조금 드니 친환경적인 것은 당연하다.

물류 통제에 천문학적인 도로 시스템이 필요하고 관리 리소스를 줄이는 데 진심이고 일괄적으로 로봇 스펙을 통제하는 것에 거부감도 없고 실현 가능성도 있는 규모를 갖춘 정서적 환경인 일본에서 이 IT가 현실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4) 속도의 경제 영향철저히 계획하는 것에 집중하던 시대에서 다양한 시도·실험·도전을 환영하는 시대로 변모했다. 다양한 액션을 해보고 실패해도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산업이다. 규모의 경제보다 속도의 경제를 지향하는 지금의 콘셉트는 객관적 스펙이나 팩트 외에 다양한 감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가치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스펙·효율·기능 그 자체보다 그것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과정, 접촉하게 되는 사람이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IT 제품이나 서비스의 스펙이 발전해 정점을 찍은 지금 밀레니얼 세대를 끌어당기는 힘은 감성에 있다. 판매원이 최신 제품을 쓰고 있는지, 판매원이 제품 추천을 적극적으로 해주고 있는지를 많이 본다. 밀레니얼 세대가 자기 라이프스타일을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할지 결정할 때 주변 환경, 특히 감성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시대도, 산업도 복잡해졌다. 스펙과 효율이라더니 이제는 감성과 환경이란다. 힘들다. 주저앉지 말자. 절대 안 되는 일이란 없고 100% 되는 일도 없다.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정순인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