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김성태 IBK기업은행장…“조직에 책임과 권한 부여해 ‘책임 경영’ 확산”

김성태 IBK기업은행장, “최우선 과제는 중소기업의 위기 극복”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 본사에서 1월 16일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취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은행장으로 임명해 준 정부, 중소기업과 개인 고객들, 취임식 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준 직원들까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마디로 응축한 말이었다.

2023년 금리·물가·환율의 급등으로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허리를 도맡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더욱 어려운 경영 환경이 예고돼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이나 탄소 중립 등 경영 유지를 위한 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국책 은행의 수장으로서 김 행장은 “중소기업이 엄중한 경영 환경과 높은 불확실성에 직면한 시기에 신임 행장에 취임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33년 기업은행맨의 각오 “정책 금융에 충실할 것”

1989년 기업은행에 입행한 김 행장은 미래기획실장·종합기획부장·마케팅전략부장·부산울산지역본부장·경동지역본부장·소비자보호그룹장·경영전략그룹장·IBK캐피탈 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친 ‘33년 기업은행맨’이다.

이러한 김 행장이 생각하는 기업은행의 핵심 역할은 ‘중소기업을 위한 국책 은행으로서 정책 금융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내실 있는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 궁극적으로는 국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기업은행은 중소 벤처기업이 혁신의 항로를 찾을 때까지 빛을 밝히고 기다리는 등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 미만으로 예측한다. 그간 한국 경제를 든든하게 받쳐 왔던 수출 전선이 무너지고 고금리와 물가 상승으로 내수가 얼어붙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행장은 이러한 중소기업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어 취임 후 최우선 과제를 “중소기업의 위기 극복 지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은 올해 시작과 함께 중소기업의 금융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기존 금리 감면 대책을 더욱 확장한 금융 비용 경감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2024년까지 약 8000억원 규모로 지원에 나선다.

“창업 초기 기업이나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 부문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병행해 금융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경영상 어려움에 직면한 중소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재기 지원 프로그램도 강화할 것입니다.”

김 행장은 중소기업의 미래 혁신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술 경쟁력 확보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험 자본을 적극 공급하고 기업 성장과 기술 개발 단계에 따라 지원을 체계화해 혁신 창업 생태계와 기술 개발 여건 조성에 힘쓸 계획이다. 그는 “미래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이 생존을 넘어 경쟁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금융 지원과 깊이 있는 비금융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해 나가겠다”며 중소기업의 위기 극복과 미래 성장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약속했다.

경영 환경과 함께 최근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디지털 전환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등 기업에 요구하는 새로운 방향이다. 김 행장은 “새로운 경영 트렌드에 중소기업이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은행의 디지털 경영 지원 플랫폼 ‘IBK박스(BOX)’에 대해 설명했다.

IBK박스는 디지털 경영 지원 플랫폼이다. 중소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디지털로 전환해 주는 등 경영에 필요한 모든 사안을 지원하며 투자, 정책 자금 추천, 비대면 대출, 근태 및 자금 관리 등 금융·비금융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소기업들로서는 쉽지 않은 기업 내 인트라넷 구축을 도와주기도 한다.

ESG 경영은 ‘금융 주치의 프로그램’ 내부에 ESG 진단을 신설하고 진단 결과에 기반해 금융 연계는 물론 심도 있는 ESG 컨설팅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IBK캐피탈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한 김 행장은 실무를 경험하며 많은 초기 기업들의 투자 상황을 지켜봤다. 또 행장 취임 후 첫 행보로 서울 마포에 있는 ‘IBK창공(創工)’을 방문하는 등 기업 투자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초기 창업 기업을 위해 향후 기업은행이 수행할 역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벤처 투자 시장이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김 행장은 민간 벤처 투자사와 차별화되는 기업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간 벤처 투자사는 어느 정도 검증을 마쳐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이 기대되는 중·후기 단계의 창업 기업에 투자한다.

“창업 기업은 1~3년 차에 자금 부족으로 도산 위기에 직면하는데 이를 ‘데스밸리’의 늪에 빠진다고 표현합니다.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민간 벤처 투자사들은 이 시기의 기업들에 투자하는 게 쉽지 않아요. 초기 창업 기업들이 늪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IBK 벤처 자회사’가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행은 벤처 자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의 벤처 자회사는 투자 효율성과 함께 생태계 형성이라는 공공 목적을 우선시한다. 여기에 민간 벤처 투자사와 초기 창업 기업 사이에 존재하는 투자 간극을 좁히는 정책적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김성태 IBK기업은행장, “최우선 과제는 중소기업의 위기 극복”

3년만에 탄생한 '내부 출신' 리더

전통 은행권들은 정보기술(IT)을 앞세운 다양한 산업군의 도전장을 받고 ‘디지털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전략에 대한 김 행장의 생각은 ‘고객들이 환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디지털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은행들이 모두 디지털 프로세스를 갖춘 상황에서 평범한 상품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라이제이션은 이미 이뤘으니 그를 토대로 얼마나 혁신적 상품을 만드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행장은 디지털 전략이 꽃 피울 수 있는 곳으로 해외 시장을 보고 있다. 이미 네트워크가 확장된 글로벌 은행들과 경쟁하려면 디지털 서비스를 무기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청년 인구의 비율이 높고 지점 간 물리적 거리가 긴 시장일수록 은행의 디지털 전환이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쉽고 빠르고 안전한 서비스를 통해 유럽·동남아시아 등 새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으로 디지털화를 앞세워야 합니다.”

기업은행은 지주사 체제가 아니라 은행이 캐피털·투자은행·증권 등 비은행 부문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김 행장은 비은행 부문과 은행 부문 간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각 사업 부문들의 경영 평가를 할 때 시너지를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를 중점적으로 볼 것입니다.” 자회사들 간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대출 업무의 경우 자회사에서 대출을 담당하는 부서들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 이 협의체가 제대로 업무를 하는지 경영 평가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그룹의 책임 경영 체제를 강화한 것처럼 자회사도 제대로 업무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줄 것입니다.” 이러한 성과는 인센티브 등 보상을 통해 인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직원들의 큰 환대를 받으며 취임한 김 행장에게 조직의 기대는 크다. 3년 만에 탄생한 내부 출신 리더인 김 행장은 소통을 통해 공정하고 활력이 넘치는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내실 있는 조직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줄서기, 청탁 등 나쁜 관행을 뿌리 뽑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직원이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노력할 것입니다.”

조직 내부에 ‘책임 경영’을 확산시킬 계획도 밝혔다. 김 행장은 “은행장이 혼자 모든 것을 통제하기에는 너무나도 사업이 다양해졌다”며 각 조직에 권한과 책임을 모두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통인 김 행장은 미래 전략적인 부분에 더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다.

앞으로 김 행장을 비롯한 기업은행은 ‘정책 금융’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국민 경제가 어려워지지 않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정부 정책과의 입체적 협의를 통해 연착륙시키는 것이 우리의 미션입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