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CEO, 대거 교체로 장기 집권 제동…WM 조직도 광폭 개편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 금융권의 사령탑이 대거 새 얼굴로 교체됐다. 연임을 예상했다가 뒤늦게 바뀐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파격적인 내부 출신 행장 발탁까지 예상을 뒤엎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번 금융권의 대규모 수장 물갈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틴 CEO들도 눈에 띄었다.

금융권의 차기 CEO 물갈이가 대부분 마무리된 가운데 올해 금융권의 핵심 전략에도 업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CEO 교체와 함께 금융권의 조직 개편 윤곽이 드러났다. 금융권에서는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급격하게 위축된 자산관리(WM) 분야에 힘을 싣는 조직 재편에 나섰다. 고객의 자산관리를 포함해 내부의 고유 자산 운용, 디지털 자산관리를 위한 체질 변화 등 고객의 자산관리에 모든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세대교체 명분’ 금융권 CEO 줄교체…증권사는 변화보다 '안정' 택해

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했던 손태승 회장이 용퇴를 결정하면서 금융권 CEO의 연임 공식이 깨졌다. 이로써 5대 금융지주 중 윤석열 정부에서 회장 임기가 만료된 신한금융, 우리금융, NH농협금융 수장들이 새 얼굴로 교체된다. 역대급 실적으로 연임 청신호가 켜졌던 금융권 CEO들의 선임 절차의 투명성에 대해 금융당국이 압박을 제기하면서다.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 4연임은커녕 3연임 사례도 사라지게 됐다. 가장 파격적인 인사는 단연 신한금융지주의 조용병 회장의 갑작스러운 용퇴다. 당시엔 조 회장의 3연임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다. 그러나 내외부 안팎의 예상을 뒤엎고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 8일 차기 회장 후보 대상의 최종 면접 자리에서 '용퇴' 의사를 밝히며 물러났다. 이후 진옥동 전 신한은행장이 차기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됐다.

이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지난 1월 18일 “회장 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다”며 용퇴를 결정했다.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관련 중징계 취소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만큼 당시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손 회장이 용퇴를 결정하면서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27일 4명으로 압축된 차기 회장 2차 후보군(숏리스트)를 확정했다. 내부 출신으로는 이원덕 우리은행장과 신현석 우리아메리카 법인장이, 외부 출신으로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과 이동연 전 우리FIS사장이 포함됐다. 이 중 이 행장과 임 전 위원장의 양강 구도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앞서 NH농협금융지주도 손병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이 무산되면서 지난 1월 12일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 신임 회장은 10개국 21개 해외 점포장과의 신년간담회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BNK금융지주도 김지완 전 회장이 지난해 11월 7일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면서 차기 회장 후보로 빈대인(62) 전 부산은행장이 선임됐다.

주요 은행들도 줄줄이 새로운 행장 선임을 진행했다. 은행장들이 1960년대의 내부출신으로 대거 선임되면서 향후 금융권의 경쟁 구도 역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용구 신한은행장은 1991년에 신한은행에 입행한 이후 줄곧 영업부서에서 두각을 드러낸 전형적인 영업통이다. 이외에 인사와 연금사업부를 거치기도 했지만 영업 부문에서는 실력파로 평가를 받았다.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농협중앙회, 은행, 농협금융지주를 거친 농협맨으로 지난해 임원 후보추천위원회에서 후보에 올라 은행장으로 발탁됐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첫 외환은행 출신으로 통합 은행 출범 이후 네 번째 은행장이다. 지난 1991년 외환은행에 입행한 이 행장은 통합 직후인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경영기획그룹장을 지냈다.

IBK기업은행도 3년 만에 내부 출신인 김성태 행장을 발탁했다. 내부출신의 행장이 다시 선임되면서 전임 윤종원 행장이 노조로부터 거센 반대에 부딪힌 것과는 다르게 무난한 출발을 시작했다. 이로써 신한은행을 비롯한 하나은행, 농협은행 외에도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등이 내부출신 행장으로 자리를 채웠다.

이번 금융지주와 은행들의 수장들이 대거 바뀌면서 변화를 택한 가운데 증권사 CEO들은 대거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금리 상항에서 증권사들이 녹록치 않은 경영환경으로 변화보다는 안정을 토대로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다.

박정림·김성현 KB증권 각자 대표의 연임에 이어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도 5연임에 성공했다.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도 연임에 성공했다. 미래에셋증권도 고위 임원 변경 없는 소폭 인사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이영창·김상태 각자 대표에서 김상태 단일 대표 체제로 전환하면서 이영창 대표의 연임은 불발됐다. 김 대표는 올해 3월 글로벌·그룹 투자은행(GIB) 총괄 사장으로 영입된 이후 주식발행시장(ECM)과 채권발행시장(DCM) 등 IB 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다.
다만 변화를 준 증권사들도 있었다. 하나증권도 강성묵 대표를 지난해 CEO로 선임했고, 메리츠증권은 장원재 세일즈앤트레이딩(S&T) 부문장이 부사장급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외에 금융투자협회도 서유석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이 압도적인 득표로 선출됐다.
금융권 CEO, 대거 교체로 장기 집권 제동…WM 조직도 광폭 개편
금융권, 자산관리 조직 대폭 변화…'조직 분리 및 통합' 등 대폭 개편

금융지주의 조직 변화도 WM을 주축으로 큰 폭의 변화가 이뤄졌다. KB금융은 계열사를 전반적으로 총괄 관리하는 WM 컨트롤타워 조직을 구성해 기존 계열사 간 협업을 강조한 매트릭스 기조 유지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 KB금융은 허인 부회장, 양종희 부회장, 이동철 부회장 직속으로 3곳 사업 부문을 두고 자본 시장과 CIB(기업투자금융) 부문을 이끄는 박정림 총괄부문장이 AM(Asset Management·자산관리) 부문을 맡도록 했다. 허 부회장은 글로벌과 보험, 양 부회장이 개인고객과 WM, 연금 부문 등을 맡고 이 부회장이 디지털 및 정보기술(IT) 부문을 맡는 형태로 구성이 된다.

특히 KB금융은 연말 조직 개편으로 자산 운용을 총괄하는 부문인 AM 사업 부문을 신설했고, 박정림 대표가 AM 조직을 총괄한다. 고유 자산뿐 아니라 고객 자산 등을 총괄하는 일종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운용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반면 신한금융지주는 2023년 조직 개편 과정에서 퇴직연금, GMS(고유 재산 운용), WM 부문에 도입했던 매트릭스 체제를 사실상 해체했다. GMS그룹은 폐지됐고 퇴직연금그룹은 연금사업그룹이 일부 사업을 대신하도록 했다. WM그룹은 개인 부문 겸 개인·WM그룹으로 이관 및 통합됐다. GIB(투자금융)그룹과 글로벌그룹은 그대로 매트릭스 체제를 유지한다.

신한은행 역시 개인그룹과 WM그룹을 통합 출범했다. 이번 개인·WM그룹장으로는 정용욱 부행장이 선임됐다. 은행 WM 사업 부문에서는 매트릭스 체제하에 신한금융투자와 고객을 연계하는 데 집중했던 전략에서 벗어나 자율 경쟁 체제를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생애주기별 고객관리 연계 시스템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하나은행은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WM본부 직속의 WM컨설팅센터를 출범시켰다. 기존 리빙트러스트에서 상담 조직을 별개로 분리함으로써 WM본부와 신탁본부에 각각 분산돼 있던 고객 컨설팅 기능을 통합해 고객 관리 및 상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이다. 초고액자산가를 상담하는 패밀리오피스팀과 프라이빗뱅킹(PB)을 대상으로 하는 상속증여팀, 부동산을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자문팀으로 꾸려졌다.

우리금융도 WM 강화를 위해 계열사 간 시너지보다는 계열사별 고객 보호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우선 우리은행은 대면 채널과 비대면 채널을 아우르는 프라이빗뱅커(PB) 양성 체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5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계열 증권사가 없는 만큼 복합점포 개설 대신 종합 금융 컨설팅을 제공하는 특화 점포와 인재 양성을 통한 수준 높은 서비스 제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또한 우리은행은 WM 특화 채널을 기반으로 한 고액자산가 관리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 기업 오너 자산관리 등 전문 서비스 운영을 강화할 계획이다.

NH농협은행도 대형 센터나 상징성 있는 초대형 센터 설립 등을 살펴보는 한편 지역별로 거점 센터를 만들고 플래그십센터를 신설하는 이원화(two-track) 방식의 WM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외에도 WM, 퇴직연금, 투자은행(IB) 부문을 NH투자증권 등 지주 내 계열사 전문가 집단과 협업해 사업 격차를 줄이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객 자산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금융사들이 전반적으로 WM 조직을 새롭게 재편함으로써 변화를 주고 있다”며 “가장 큰 포인트는 KB금융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금융지주사들이 계열사 간 시너지보다 각 사별 고객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