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주체, 인간에게 맞춰야

요즘 우리 사회 모든 갈등의 화두는 이동권이다. 화물연대 파업, 철도공사 파업 등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가 엉뚱하게 기업 총수 집 앞에서 시위하는 것도 엄밀하게는 이동권 갈등이다. 수도권에서 강남까지 빨리 가려는 사람에게 GTX는 반드시 필요한 이동권이지만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에게 이들의 이동권은 자신들의 재산 침해라 여긴다.

[하이빔]GTX 반대 외치는 은마아파트와 이동권

물론 재산을 지키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두 가지 기본권이 충돌했을 때 법조계에선 우선 순위를 보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헌법의 최우선 기본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다. 그런데 존엄과 가치를 지키려면 기본적인 이동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서 이동권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어도 모든 기본권의 기저에 스며들어 있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여기는 게 대부분이다. 쉽게 보면 국민의 기본 이동권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행위 자체가 이기적이다. 게다가 과정 자체도 정당하지 못하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아파트 시설 관리 충당금으로 시위자에게 일당을 지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토부와 서울시가 조사에 나섰다는 점은 시위의 정당성만 훼손시킬 뿐이다.

이 과정에서 재산권 침해와 전혀 연관이 없는 기업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더더욱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책을 입안, 결정했고 기업은 정부 요청에 따라 공사만 진행할 뿐이다. 그러니 해당 기업 시각에선 주민들의 시위가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하이빔]GTX 반대 외치는 은마아파트와 이동권

요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이동의 기본권이 간혹 정치적 구호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이동의 평등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이동의 효율을 원하는지 명확한 답변도 하지 않으면서 이동권을 주장하는 것은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하철 휠체어 출근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 없는 탑승을 원한다. 그래서 정부도 순차적으로 차별적 요소를 없애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다시 말해 이동의 효율을 높여주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동의 특성이 다른 만큼 겸용 이동 수단 도입 및 특별교통수단 증차 등을 앞세웠지만 이들은 오로지 이동의 평등권을 주장한다. 당연히 평등은 추구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시간이 걸리는 문제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각종 국제 뉴스에서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선진국들과 같은 선상에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묘한 뿌듯함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동(Mobility)' 분야로 시선을 돌리면 선진국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씁쓸할 때가 있다. 이동권을 인간 존엄과 가치의 기본이 아닌 재산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무척 강해서다. 소득만 보면 선진국으로 자부하지만 정작 이동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기주의와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