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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한겨레출판, 2022년 1월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한겨레출판, 2022년 1월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유명한 조남주 작가의 최근작 <서영동 이야기>는 가상의 공간 ‘서영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단편 <봄날아빠(새싹멤버)>를 시작으로 7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인물들이 자신이 속한 동네를 생각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서영동 이야기>는 동네 어디선가 한 번쯤은 일어났을 법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서영동의 내밀함을 들여다보게 된다. 조남주 작가 역시 “이 소설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부끄러웠다”라고 밝힐 만큼 속단하기 어려운 에피소드가 나열돼 있다.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일군 여러분의 소중한 자산 아닙니까? 왜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립니까?”(9쪽)

봄날아빠는 네이버 친목카페 ‘서영동 사는 사람들(서사사)’에서 주로 부동산에 관한 글을 올리는 사람이다. 그는 서영동 빼고 다 올랐다며 복덕방에서 아파트값 담합을 문제 삼는다. 이 덕분에 운영자의 경고까지 받지만, 서영동 사람들은 그의 글 덕분에 집값에 대한 불신을 키워 간다. 집이 있어 행복했던 사람들마저 ‘왜 내 집값만 그대로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최근 뉴스는 2030세대 영끌족으로 점철돼 있다. 부동산에 문외한인 필자 역시도 기사를 챙겨 읽게 된다. ‘나는 끌어 모을 영혼도 없기에 안타깝다’는 것과 ‘재산세를 내는 게 부럽다’는 양쪽의 감정을 오간다.

조 작가는 2030세대의 사정을 <이상한 나라의 엘리>를 통해 보여준다. 실력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취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아영. 영어강사가 됐을 때 ‘엘리’라고 불리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거주하던 방을 급작스럽게 뺀 후, 아르바이트 장소인 영어학원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아이들 시험지 채점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지만 보증금 500만 원에 맞춰 이사할 공간을 찾기가 어렵다. 학원에서 거주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된 원장은 아영에게 자신의 집 방을 내어주겠다고 하지만, 아영은 강사 자리를 요구한다.

“학원 사이트에서 초등부 진도표를 확인하려고 크롬을 열었는데 포털사이트 메인에 ‘2030 영끌족, 수도권 아파트 매수세 심상찮아’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아영은 기사에 나열된 30대의 사례들이 무척 낯설었다.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오히려 황당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끌어 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웃음이 나왔는데 솔직히 웃기지는 않았다.”(241쪽)

주거의 기능은 삶에서 필수 요소다. 하지만 누군가는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갑작스럽게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하기도,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던가. 늦은 밤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자마자 직감했던 아영의 입장이 쉽게 이해되는 걸 보면, ‘집값’보다 일자리 부족이 더 마음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여전히 부모님의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부모님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은 <다큐멘터리 감독 보미>의 주인공 안보미는 아버지의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지금처럼 규제가 촘촘하지도 않고 취득, 양도, 보유에 따른 세금 부담도 거의 없던 시절, 아버지는 투기에 가까운 횟수와 방식으로 부동산을 끊임없이 사고팔았다.”(120~121쪽)

동생이 지방대학에 합격하자 증여를 했고, 결혼하는 딸에게는 아버지의 집 근처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게 한 것이다. 그렇게 안보미 아버지의 부동산은 “지금까지도 집안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고 있다.”(121쪽) 그렇기에 작가는 묻는다. “아버지에게 집은 뭘까. 아파트는 뭘까.”(121쪽)

그런 아버지는 현재 지역구 의원 사무실과 시청, 구청 앞에서 임대 아파트나 요양원 건축 반대와 같은 시위를 한다. 집값 상승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검소하고 성실한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란 보미는 아버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신과 아버지와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있다고 선을 긋지만, 아버지와 같은 사람임을 깨닫는다.

이 밖에도 알뜰살뜰하게 평수를 넓히며 좋은 집으로 이사한 희진의 층간소음 문제, 아버지가 옆 동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아파트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 5세 아이 때문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잘살고 싶었을 뿐이다. 잘산다는 기준이 거주 지역이나 아파트 브랜드명이 될 수도, 살면서 큰소리 나지 않으면서 지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옆집 사람과 단절된 채 살아가지만, 결국 연결돼 있다는 것을 “남 일이기만 한 세상은 없더라고요. 나이 먹을수록 더 그렇고요. 그게 맞는 거고”(238쪽)라고 말하는 등장인물을 통해 알려준다. 어쩌면 소설은 “이 집을 가져서 다행이기도 불행하기도 했다. 행복하기도 우울하기도 했다”(208쪽)고 생각하는 희진을 통해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지 다시 물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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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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