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직접 싸우지 마세요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여름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하늘에 먹구름과 찬란한 햇빛이 묘한 컬러의 칵테일처럼 섞여 비디오 아트를 보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도 한다. 그 하늘만큼이나 변화가 심한 것이 내 마음의 감정이다. 덕분에 우리는 영화 등 문화 콘텐츠에 몰입해 울고 때론 웃으며 감동을 느낀다. 그런 감정 시스템이 내재돼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한편으론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주요한 이유다. 과도하게 불안하거나 우울하게 한다.

비가 오면 우울해지는 자신이 우울증이냐고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아니다. 비가 오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지면 그것이 독특한 것 아닐까. 팬데믹 스트레스, 글로벌 경제위기로 부정적인 감정은 증가하는데 과도하게 긍정적인 감정에 집착하려고 내 감정과 직접적으로 싸우다 보면 오히려 더 지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은 좋지만 억지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려는 노력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 마음 관리의 중요한 내용이다.

감정과 너무 직접적으로 싸우지 말고 마치 변화무쌍한 하늘의 컬러 변화를 보듯 ‘내 마음이 오늘 좀 우울하고 피곤하네. 그렇지만 오늘 하루 내가 할 일에 집중하자. 그리고 이런 피곤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인내와 도전의 가치다’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감정을 느끼긴 하겠지만 ‘가치’에 집중해 오늘의 삶에 몰입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더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마음 관리 전략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정리하려면 감정이 너무 내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게 하고 약간 거리를 둬야 한다. 가치 중심적인 삶을 살 때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감정도 다시 잘 살아나고 그 감정이 긍정적인 삶에 대한 프레임도 가져와준다. 긍정적인 삶의 프레임은 실제 내 일과 삶을 성공으로 이끈다.

“나 유리 멘탈이에요”
자신의 멘탈이 약한 것 같다며 스스로를 ‘유리 멘탈’이라고 걱정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이들은 작은 일에 쉽게 상처받고 유리처럼 약한 자신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경영자(CEO)로 성공한 뒤 최근 은퇴한 분이 “멘탈이 약한 것 같다.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나 불편하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멘탈이 약한데 CEO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유리 멘탈이 아닌 강철 멘탈일 가능성이 높다. 주변 반응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공감 능력도 좋은 ‘고성능 멘탈’이 기능적으로 보면 강철 멘탈이다. 강철 멘탈에 유리 같은 섬세한 특징이 존재할 수도 있다. 유리처럼 약한 것과, 고성능 시스템이기에 섬세한 것은 다르다. 그런데 섬세한 것을 자꾸 결핍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유리 멘탈로 폄하하면 실제로 내 마음이 약해질 수 있다.

섬세하다 보니 작은 실수에도 속상한 마음이 크게 들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업무 능력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져 고민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팩트체크를 해본다. 주변에서 실제 업무 능력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었거나 실제 인사 고과에서 문제가 있었느냐고 질문하면, 그렇지 않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객관적인 증거 없이 주관적으로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실제로 업무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CEO의 예로 돌아가 보면, 섬세한 고성능 멘탈을 가지고 있어 훌륭히 리더십을 수행했고, 섬세함에 양면성이 있어 은퇴하고 나니 섭섭함 등 여러 감정 반응이 좀 강하게 느껴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이가 드니 부정적인 생각이 커져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지혜의 데이터베이스가 확장된 현상으로 설명한다. 보통 지혜라고 하면 걱정을 잘 내려놓는 여유가 떠오르지만 의외로 지혜의 절반은 다크 초콜릿처럼 어둡다. 하면 안 되는 일, 만나면 안 좋은 사람 등 위기관리의 지혜가 쌓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사고가 대체로 커진다. 어린 아이들이 해맑은 얼굴로 갑자기 위험한 행동을 해 부모를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위기관리의 지혜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부정과 긍정의 콘텐츠가 서로 세를 이루고 맞서고 있다. 긍정을 올리고 부정을 찍어 누르는 전략보다는 모두 내 삶의 자산이라 여유롭게 품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부정이 내 삶을 주도하면 오늘을 즐길 수 없다. 운동, 취미 등 힐링 활동으로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 부정적인 내용을 잠시 옆에 치우고, 중심에 긍정이 자리 잡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감정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런 사람이 ‘강한 멘탈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감정은 자율성을 상당히 가지고 있고 내 통제를 튕겨 나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내가 조정에 힘을 더하면 그 힘을 오히려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더 강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극복하기보다는 버티자
극복하려는 자세는 훌륭하지만 목표를 ‘버티자’로 바꾸어보자는 제안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시간 믿었던 곳에서 배신과 억울의 감정이 느껴지는데 몇 개월 만에 그 감정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팩트가 아니다. 무의식으로 찍어 눌러 잠시 못 느끼는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러면 더 오랜 시간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마인드 케어를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정확하고 따뜻한 판단이 필요하다.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최대치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해도 이는 정상적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낫겠다고 환부를 함부로 만지면 오히려 덧날 수도 있다. 마음도 똑같다. 마음에 상처가 생겼을 때 회복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옳다. 그러나 따뜻하게 나 스스로를 안아주며 기다려줘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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