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평균의 개념이 등장했다. 당시 여러 국가가 대규모 관료체제와 군대를 갖추면서 월별 출생아 및 사망자 수, 연간 수감되는 범죄자 수, 도시별 발병자 수 등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만들어 발표했다. 하지만 현대 자료 수집의 초창기였던 당시 그 누구도 이런 자료를 적절히 해석하지 못했다. 인간 관련 자료는 워낙 뒤죽박죽 엉켜 있어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탓이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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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개념이 공감받기 시작한 것이 이때쯤이다. 학자들은 평균을 통해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각 측정값은 모두 예외 없이 어느 정도의 오류가 있지만, 일단 개별 측정값 전반에 걸쳐 축적된 전체 오류값은 평균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행태에 평균 개념이 도입되자 평균적 인간은 ‘참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기대 가능한 오류가 가장 작은 인간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모든 분야로 확산됐다. 평균 체중, 평균 결혼 연령, 연간 평균 범죄 건수, 평균 교육 수준 등 참 인간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한편 이상적인 인간을 의미하던 평균은 평범함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찰스 다윈의 사촌이자 성공한 상인이었던 프랜시스 골턴은 평균을 최대한 향상시키는 것이 인류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그는 평균을 이상으로 평가해 평균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형이라고 평가한 아돌프 케틀레 의견에 빅토리아 여왕과 뉴턴 같은 사례를 거론하며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것은 ‘우월층’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저능층’이라고 칭했다. 평균에서 벗어난 개개인을 ‘오류’라고 여겼던 케틀레의 신념을 ‘계층’으로 재정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인간을 평균 중심으로 최하위 ‘저능층’, 중간 ‘평범층’, 최상위 ‘우월층’까지 14개 계층으로 분류했다.

평균 중심의 산업과 교육

평균은 널리 확산됐지만 아직까지는 추상적인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레더릭 테일러의 등장 이후 평균은 기업과 학교의 주류 원칙으로 떠올랐다. 당시 기업들은 유능한 근로자를 채용한 뒤 자신의 신념에 생산적으로 재조직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테일러는 이런 운영이 비효율을 야기한다고 판단하고, 그의 저서 《과학적 관리의 원칙》을 통해 표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은 아무리 특출난 인재라 하더라도 시스템을 개별 근로자에게 맞추기보다 시스템에 맞는 평균적 인간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일러는 용광로에 석탄을 한 번에 퍼 넣을 최적 석탄량을 약 9.5㎏으로 산정하고, 이 평균치를 중심으로 전체 산업 공정을 표준화해 각 공정의 수행 방식을 고정시켰다. 테일러의 표준화 원칙은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테일러주의’로 확산된 표준화 원칙이 미국 산업을 탈바꿈시키자 산업현장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반숙련공에 대한 수요가 한없이 늘었다. 당시 교육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학생 개개인의 재능과 관심사를 맞추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기에 산업현장의 수요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192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 대다수 학교는 테일러주의의 교육 비전에 따라 조직됐고, 모든 교육 과정은 평균 학생, 평균 근로자를 길러내기 위해 설계됐다.

평균적 맞춤에서 평등한 맞춤으로

오랜 기간 평균은 사회의 많은 분야를 지배했다. 많은 의사결정이 평균에 기초해 이뤄졌고, 평균 중심의 유형화와 계층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데이터 단위로 의사결정이 세분화되면서 평균이 아닌 개별 맞춤형 의사결정의 편익을 많은 사람이 느끼며 살아간다. 디지털화된 오늘날 쇼핑,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검색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별 맞춤형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서비스 없이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무엇보다 평균을 벗어나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과거에는 ‘정상’으로 표현되는 평균적 인간의 범주에 들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기회를 얻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개개인의 특성이 고려된 환경에서는 각자 재능에 맞는 새로운 기회에 접근할 수 있다. 맞춤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표준화된 세상에서는 평균적인 두 사람을 가능한 한 비슷해지게 만들려는 노력이 공정한 처사로 평가됐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에 대한 맞춤형 기회 제공이 공정한 처사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평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