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정리하면 마음까지 깨끗해지죠"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박소현 오늘의 집정리 대표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 사명감 없이는 하기 어려운 직업입니다.”

박소현 정리정돈 전문가(오늘의집정리 대표·42)는 자신의 직업을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리정돈 전문가는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전파된 직업이다. 2010년 무렵 한국에 상륙한 이 직업은 2020년부터 이듬해까지 방영한 TV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tVn)’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자기 방부터 회사 사무실까지 자신의 공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선물하는 직업 ‘정리정돈 전문가’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정리’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리의 기본은 비우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내 마음 속 미련을 버리는 거죠.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물건들, 몇 개월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은 굳이 전문가의 손에 맡기지 않더라도 스스로 버릴 수 있어야겠죠. 정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해요. △꺼내기(정리가 필요한 공간의 물건을 꺼내고) △나누기(비슷한 물건끼리 나누며) △줄이기(쓰지 않거나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리기) △넣기(장소와 위치를 정해 수납하기) 순서로 해 보시면 됩니다.”

▶정리정돈 전문가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쉽게 말씀드리면 공간과 물건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새 생명을 부여하는 직업입니다. 보통 집 안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수납의 문제점을 진단해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죠. 물건을 쌓아두고 생활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버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실행을 못하는 분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대신해 정리정돈을 해 주는 직업입니다.”

▶‘정리수납 전문가’ 또는 ‘정리정돈 전문가’로 불리던데, 정확한 명칭은 뭔가요.

“대행 업체마다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달라요. ‘정돈’과 ‘수납’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어요. 수납은 공간에 가지런히 정리한다는 의미인데, 정돈은 수납의 의미를 포함하죠. 자격증 명칭도 ‘정리정돈 전문가’라서 전 그렇게 쓰고 있어요.”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정리정돈 전문가 자격증은 따기 어렵습니까.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보통 2급을 먼저 취득해야 1급을 딸 수 있는데요. 민간 자격증이라 발급 기관은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2급은 온라인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르면 됩니다. 조건은 출석률(온라인 강의) 60%를 채워야 하고, 시험은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을 맞으면 합격입니다. 1급은 시험과 실습 과제가 주어집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그리 높진 않아요. 다만 전문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리와 정돈의 차이점’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고, 본인의 집을 정리 정돈하는 실습이 주어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죠. 최근엔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좌가 많아졌는데 2급 자격증을 먼저 취득한 후 오프라인 강좌를 들으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물론 온라인 강좌도 있지만 현장 실습 없이 자격증 취득만으로 활동하기엔 한계가 있거든요.”
※정리정돈(수납)전문가 자격증
: 1·2급으로 나눠져 있는 민간 자격증으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발급기관에서 발급.

커리큘럼
: △정리 프로세스 △나눔과 비움의 원칙 △의류 분류와 순서 △소품 정리 △싱크대 및 냉장고 정리 등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자격증이 있어야만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나요.

“자격증이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자격증 없이 일하는 분은 없었어요. 일반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면 저처럼 창업을 하는 분들도 있고, 정리정돈 회사나 이사 업체, 홈케어 회사, 인테리어 회사, 건설사 등에 정리 전문가로 취업할 수 있습니다.”

▶일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의뢰가 들어오면 먼저 정리가 필요한 공간을 영상으로 촬영해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코로나19 전에는 사전 방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엔 영상으로 대체합니다. 집 안 곳곳을 촬영한 영상으로 대략 견적을 냅니다. 저희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용할 물건과 버릴 물건을 구분하는 것이죠. 요즘엔 중고마켓에 팔 물건도 분류합니다. 사용할 물건들은 미리 준비한 바구니로 깔끔하게 정리해 드리고, 버릴 물건은 재활용, 폐기물 등을 구분해 처리하면 끝납니다. 작업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8~9시간이 소요되는데, 작업량이 많으면 연장 근무도 합니다.”

▶비용은 어떻게 책정되나요.

“인원 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경력에 따라, 업체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저희 회사는 전문가(자격증 보유자)는 1인당 20만 원으로 정해 뒀습니다. 자격증은 있지만 경력이 없는 분들은 10만 원 정도로 책정하는데, 요즘엔 가격 경쟁이 심해 업체마다 금액이 다 다릅니다.”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생각보다 비용이 적지 않네요.

“맞습니다. 보통 이사 비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근에 20평형대(59m²) 현장 작업을 했는데, 5명이 투입됐어요. 50평형대는 12명이 투입되기도 했고요. 그 정도 투입된다고 말씀드리면 다들 ‘그렇게나 많이요?’라고 놀라시죠. 근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7~8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고객들도 모르는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데, 그 물건들을 모두 빼내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투입 인원을 정하는 기준이 있습니까.

“물건의 양입니다. 정리해야 할 물건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 다음 투입할 인원을 정합니다. 부피나 개수 등 수치화되진 않았지만 그간의 노하우로 판단하고 고객과 조율하는 거죠.”

▶수입이 꽤 될 것 같은데요.

“직업 특성상 본인이 일한 만큼 벌 수 있어요.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장점도 있죠. 반면에 생각보다 일이 고되서 하루 두 건 이상은 못하고 한 달 내내 할 수도 없어요. 신입 기준으로 한 달에 20일 정도 일한다고 가정하면 200만 원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사연 있는 물건' 미련 못 버려 쌓아두기만... 정리정돈은 '치유의 과정'▶스스로 물건을 정리하지 못해 의뢰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작업을 하다가 고객과 부딪히는 일은 없나요.

“현장에 방문하면 고객이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한 눈에 보입니다. 버리지 못해 물건을 쌓아두신 분들 중에는 마음이 아프신 분들도 종종 있어요, 저희 표현으로는 치유를 한다고 하는데, 미련이 남아 못 버릴 땐 저희가 설득을 하죠. 그게 치유의 과정인 거죠.”

▶치유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이건 버리셔야 해요’라고 말씀드리면 반발심이 생겨 못 버리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자주 쓰세요?’라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다가가죠. 그럼 ‘자주 쓰진 않지만, 이건 이래서 필요하고, 저건 저래서 못 버려요’라고들 말씀하시죠. 사실 집집마다 사연 없는 물건은 없어요. 그런 사연들 때문에 버리지 못하면 집은 난장판이 됩니다. 그래서 꼭 사용해야 할 것, 나눠야 할 것, 버려야 할 것들로 구분해 설득하죠.”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버려야 할 물건 1위는 옷... 숟가락,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도
오랫동안 안 쓴 물건은 버리는 게 '정답'
▶가장 많이 나오는 물건의 종류는 뭔가요.

“옷입니다. 정리를 시작하면 평소에 못 봤던 옷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되거든요. 거의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죠. 몇 년 간 입지 않은 옷들은 버리셔야 해요. 그래야 다시 사죠. 버리지 않고 사기만 하면 나중엔 정말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회용품도 정말 많이 나옵니다. 요즘엔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데, 숟가락이나 나무젓가락, 포크, 접시 등 많이들 모아 두시잖아요. 집에 손님 올 때 써야지 하지만 요즘엔 집에 손님도 안 오고, 와도 일회용품은 안 씁니다.”

▶생각보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 보여요. 어느 정도인가요.

“제가 여자치곤 힘이 센 편이에요.(웃음) 가슴 높이의 금고도 저 혼자 밀어 옮길 정도로요. 체력도 좋은 편인데, 일을 하고 오면 아주 피곤합니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허리, 팔목 통증은 늘 달고 살아요.(웃음) 집 안의 모든 짐을 빼서 다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나면 100L짜리 쓰레기 봉투가 십 수개가 나와요.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전 이 일을 마흔이 넘어 시작했어요. 텔레마케터를 10년 넘게 했는데,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몸이 안 좋아져 수술도 몇 차례 하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정리하는 걸 참 좋아했어요. 친구 집에 놀러가서도 대신 정리해 주고, 혼자서도 침대나 냉장고 위치를 바꿔놓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이 직업을 알게 됐고, 자격증을 취득해 몇 년 전부터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일을 배우면서도 이 직업이 돈이 될까 싶었는데, 재작년쯤 TV에서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저희 직업이 많이 알려지게 됐죠.”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정리정돈의 매력은 뭔가요.

“밀린 때를 시원하게 민 느낌이랄까요.(웃음)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무언가를 정리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이에요.(웃음)”창업 비용은 無... 건강한 몸과 자격증, 사명감만 있으면 창업 가능▶자격증 취득 후 창업을 하셨어요. 창업 비용은 어느 정도 드나요.

“딱히 비용이 든 건 없어요. 사무실도 필요 없고, 장비를 구입할 필요도 없고요. 짐칸이 넓은 SUV 차량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건강한 몸이죠.”

▶건강한 신체 외에 정리정돈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요.

“이 일은 스스로 즐겨야 가능합니다. 요즘 집 정리를 주제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비포&애프터(before&after) 모습만 나오잖아요. 그 중간 과정이 생략돼 아쉬워요.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어디서나 잘 어울릴 수 있는 성격도 중요합니다. 작게는 두 명에서 많게는 십 수 명이 함께 하는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서로 잘 맞아야 결과물도 더 만족스럽게 나오거든요. 무엇보다 체력이 필요한 직업이에요. 가구·가전 이동, 폐기물 배출 등 힘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 기초 체력은 필수죠.”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죽은 공간에 새 생명을" 정리정돈 전문가
▶인테리어 감각이 필요하진 않나요.

“물론 필요하죠. 전 그걸 센스라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정리할지 판단하는 능력이죠. 저는 어릴 적부터 정리가 습관이 돼 있었고 기계나 물건 다루는 걸 좋아한 덕분에 공간을 보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판단이 섭니다. 풍수지리에 대해서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본 지식은 갖고서 가구 배치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 직업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신박한 정리’에 나온 사람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집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셨을 거예요. ‘좀 오버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실제 고객들의 반응을 보면 진심이 느껴집니다. 진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게 싹 잊혀져요. 가수가 무대 위에 오른 느낌이랄까. 이 직업을 놓지 못하는 아주 큰 이유죠.(웃음)”

▶정리정돈 전문가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신기술이 나오고 있고 인공지능(AI)이 대체하는 직업들이 많이 언급되곤 하지만 정리정돈 전문가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에요. 미국에서 199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일본을 거쳐 2010년쯤 한국으로 전파됐어요.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조금씩 알려지고 있고, 최근엔 중국에서도 정리정돈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를 봤을 때 유망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