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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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는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쇼 ‘CES 2022’에서 32형 게이밍 모니터를 선보였다. 퀀텀 미니 LED(발광다이오드)를 적용한 이 제품은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 LG전자는 졸업·입학 시즌을 맞아 ‘2022년 아카데미 페스티벌’을 열고 성능과 디자인을 향상시킨 노트북 ‘LG그램’ 14·15·16·17형 신모델을 내놨다.

‘-형(形)’과 ‘-형(型)’ 구별하기 쉽지 않아

두 사례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말할 때 흔히 접하는 내용이지만 자칫 이해하는 데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특히 ‘32형’이니 ‘14·15·16·17형’이니 하는 표현은 사전 지식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다. 우리말에서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방황하는 말’이라고 할 만하다.

32형 모니터는 32인치 크기의 모니터를 말한다. ‘인치’는 영미에서 쓰는 야드파운드법에 따른 길이의 단위다. 1인치는 미터법으로 바꾸면 약 2.5cm이니, ‘32형’은 대략 80cm 크기의 모니터를 가리킨다. 인치를 인치라 부르지 못하게 된 까닭은 물론 우리나라가 미터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인치는 비(非)법정단위라 ‘공식적’으로는 사용이 금지된 말이다. 하지만 법정용어는 바뀌었어도 소비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인치’를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편법으로 생긴 게 ‘-형’이다. 미터법으로 넘어가기 전, 부족하지만 일종의 과도기적 표현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모호성이 우리말을 좀 더 ‘쉽고 편하게’ 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32형’ 같은 표현은 그 자체로는 구체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 미완의 말이기 때문이다. ‘-형’의 정체를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 말을 낯설게 하는 요인이다. 모양상으론 한자에서 왔음직하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인데, 어떤 형태·형식을 나타낼 때 쓰는 형(形) 또는 형(型)일 것이다. 우리말에서 이들의 구별은 꽤 어려운 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구체적 모양에는 形, 추상적 속성에는 型

“코로나로 침체된 경제가 V자형 경기회복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본형 장기불황에 빠질 것인가?” 이때 ‘V자형’과 ‘일본형’에 쓰인 ‘-형’의 정체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말을 꽤 촘촘히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말은 각각 ‘V자形’ ‘일본型’으로 구별된다. 형(形)과 형(型)의 용법을 가리는 게 왜 중요할까? 그것은 우리말을 분석적으로, 과학적으로 사용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말의 정체를 알고 나면 다양한 사례에 응용해 쓰기가 훨씬 쉬워진다.

形과 型의 사전 풀이는 각각 ‘그런 모양’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그런 유형’ 또는 ‘그런 형식’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하지만 이렇게 해선 두 말을 구별하지 못한다. ‘形’은 어떤 모양, 꼴을 나타내는 글자다. 대상이 ‘구체적 형태’를 띠고 있다. ‘삼각형(形)’을 외워두면 좋다. 운전을 배울 때 신경써야 하는 S자형, T자형 도로처럼 겉모양을 본떠 이름 붙인 말에 ‘-形’ 자를 쓴다. 피라미드형(形) 인구 구성, 반달형(形) 눈매 같은 게 그런 예다.

이에 비해 型은 ‘틀’ ‘거푸집’을 뜻하며 어떤 속성이나 특징, 유형(類型)을 나타낸다. 추상적/비유적 표현에 많이 쓰인다. 가령 어떤 속성(틀)을 지닌 인간, 즉 ‘햄릿형’인지 ‘돈키호테형’인지를 따질 때 이 ‘-型’ 자를 쓴다. ‘기업가型 대학’ ‘비만型 얼굴’을 비롯해 ‘관광경찰대, 가이드型에서 현장출동型으로 바뀐다’ 같은 말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자에 담긴 의미 차이를 알고 나면 사고(思考)의 깊이가 달라진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이제 응용을 해보자. ‘성형수술’과 ‘혈액형’에 쓰인 ‘형’ 자는 각각의 말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성형수술이란 이런저런 이유로 신체의 특정 부분을 외과적으로 교정·보완하는 것이다. 이는 ‘꼴’을 바꾸는 일이므로 ‘成形’임을 알 수 있다. 혈액형은 A, B, O, AB형 식으로 피에 있는 항원의 조합에 따라 혈액을 가르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추상적 유형별 구분이므로 ‘혈액型’이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