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학원‧독서실 등 방역 패스 효력정지 결정
정부 정책에 제동

[법알못 판례 읽기]
백화점·대형마트 등 면적 3000㎡ 이상 대규모 점포 방역 패스 적용 첫날인 1월 1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 방역패스 시행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백화점·대형마트 등 면적 3000㎡ 이상 대규모 점포 방역 패스 적용 첫날인 1월 1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 방역패스 시행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방역 패스(백신 접종 증명‧음성 확인제)’를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 등 교육 시설에 적용하려는 정부의 방역 지침에 제동을 걸었다. 학부모‧학원 단체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상대로 낸 집행 정지 신청이 일부 인용된 것이다.

법원의 결정 이후 정부는 방역 패스 적용을 두고 더욱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대형마트·식당·카페 등 필수 생활 시설에 대한 방역 패스 집행 정지 신청 소송과 방역 패스 적용 자체를 취소하라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법원 “학습권‧직업 자유 침해”…
7페이지 분량 인용 결정문 ‘이례적’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전국학부모단체연합과 서울교육사랑학부모연합·함께하는사교육연합 등 단체가 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 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이번 행정 소송 본안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 등 교육 시설에 대한 방역 패스 효력이 일시 정지됐다.

2021년 12월 3일 복지부가 특별 방역 대책 후속 조치를 내린 지 약 한 달 만이다. 1심이 4월 이후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청소년에 대한 방역 패스를 3월 적용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은 헌법 조항까지 내세우며 인용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제15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합리적 이유 없이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제11조 제1항)’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내용을 잇달아 언급했다. 인용 결정문 분량만 7페이지에 달했다.

재판부는 “(방역 패스) 처분은 사실상 백신 미접종자들이 교육 시설에 접근하고 이용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미접종자 중 학원 등을 이용해 진학·취직·자격 시험 등에 대비하려는 사람은 학습권이 제한돼 헌법에서 보장한 교육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직접 침해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백신 미접종자 집단만 교육 시설 이용을 제한받을 만한 객관적·합리적인 이유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백신 접종자 사이에서도 돌파 감염이 발생하는 등 미접종자가 접종자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 없다”며 “특히 청소년은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되거나 사망에 이를 확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설명했다.

줄 잇는 소송…방역 패스 미적용 확대되나

법조계에선 이번 결정에 대해 ‘이례적’이란 반응이다. 그동안 코로나19 방역 지침은 “공공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강한 지지를 받아 왔는데 이를 뒤집은 선례가 나와서다.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교육 시설 외에도 식당·카페·노래연습장·실내 체육시설 등 다른 시설에 대한 방역 패스 적용도 ‘미접종자 차별’이란 이유로 철회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에 복지부는 곧바로 성명문을 내고 “성인 인구의 6.2%(282만 명)에 불과한 미접종자들이 12세 이상 확진자의 30%, 중증 환자 사망자의 53%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방역 패스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집행 정지 인용에 대해서도 “즉시 항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월 10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이마트 창원점에서 한 방문객이 방문 등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월 10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이마트 창원점에서 한 방문객이 방문 등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결정 이후 방역 패스 적용을 중단하라는 백신 미접종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은 1월 초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된 대형마트·식당·카페 등 17종 시설에 적용되는 방역 패스 집행 정지 신청에 대한 심문에서 정부 측과 날선 공방을 벌였다.

조 교수는 이 자리에서 “방역 패스가 미접종자를 분리시켜 오히려 이들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키운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소수인 미접종자를 상대로 방역 패스를 시행해 부스터 샷을 강제할 근거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측은 “소상공인 피해 및 학교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만 의존하기 어려워지면서 방역 패스를 중요한 방역 정책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양측의 증거와 의견서 등을 추가로 확인해 2022년 1월 안에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원고 측 청구가 모두 인용되면 방역 패스가 무효화되는 시설이 대거 늘어난다. 재판부가 17종 시설 중 일부만 방역 패스를 적용하지 말자는 취지로 일부 인용 결정을 내리거나 아예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할 수도 있다.

이 소송 외에도 방역 패스 적용을 둘러싼 소송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과 백신패스반대국민소송연합이 2022년 1월 6일 방역 패스 적용 자체에 대한 집행을 취소하는 행정 소송과 집행 정지를 신청한 데 이어 1월 7일 고교 3학년 학생인 양대림 군 등 시민 1700명이 헌법재판소에 방역 패스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양 군 등은 2021년 12월에도 12~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방역 패스의 위헌을 주장하며 헌재에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상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적어도 교육 분야에선 방역 패스를 근간으로 한 정부 방역 지침이 무력화될 여지가 이전보다 커졌다”며 “현재 진행 중인 소송 결과에 따라 방역 패스 적용을 중단하라는 소송이 추가로 줄을 이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거리 두기 관련 소송에선 대부분 정부 ‘승(勝)’

그동안 방역 정책을 둘러싼 소송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반발로 제기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정 공간에 일정 인원 이상 모이지 못한다는 조치를 철회해 달라는 청구가 잇따랐다. 법원은 대부분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방역 정책을 두고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선 곳 중 하나는 교회였다. 전국 각지의 교회가 집합 금지 명령 취소와 거리 두기 지침 위반에 따른 시설 폐쇄 처분 취소 등을 요구하며 행정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2021년 7월 서울 7개 교회와 목사들이 서울시를 상대로 “대면 예배 금지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신청이 일부 인용된 것을 제외하면 원고 측이 승소한 사례는 손에 꼽는다. 이때 법원 판결로 서울 종교 시설은 20명 미만의 범위에서 전체 수용 인원의 10%만 참석하면 예배·미사·법회가 가능해졌다.

교회들은 그 이후 소송에선 대부분 고배를 마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2021년 8월 4일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시민연대가 서울시를 상대로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고시 효력을 멈춰 달라며 낸 집행 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해당 재판부는 8월 26일 사랑제일교회가 서울 성북구청의 시설 폐쇄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성북구청장을 상대로 낸 집행 정지 신청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신청인의 불이익에 비해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공공 복리를 옹호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학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2020년 12월 한국학원총연합회 등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서울특별시장을 상대로 낸 집합 금지 집행 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학원가에선 그 이후에도 정부를 상대로 집합 금지 취소와 손해 배상 소송 등을 제기했지만 올 초 방역 패스 집행 정지 청구가 일부 인용되기 전까진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법원은 “실내 공간인 학원에서 학생과 강사의 확진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진 사례가 계속 발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이 심각한 위협에 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등 실내 체육 시설 운영자들도 비슷한 판결을 받아 왔다.

집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2021년 10월 이동욱 경기의사회장이 서울시장을 상대로 낸 두 건의 옥외 집회 금지 처분 집행 정지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최대 50명까지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법원은 2020년 8월 15일 광복절 집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나타난 이후 집회 금지에 대해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왔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