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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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를 지키느라 생긴 든든한 식스팩

여자들은 셀룰라이트가 보이지 않는 매끈한 복부, 남자들은 왕(王)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복근을 갖고 싶어 한다. 성장뿐만 아니라 지방 분해와 단백질 합성을 촉진하는 성장호르몬은 청소년기가 지나면 더 이상 몸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이후 조금만 방심하면 여기저기에 지방이 쌓이면서 염려까지 몰아친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식스팩을 마련해야 세상살이가 편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몸과 마음의 식스팩 키운 '리코더 소년' 성장기
청소년소설 《식스팩》은 따뜻한 마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사춘기를 꽤 오래 앓고 있는 강대한과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놀림 받지만 밝고 당찬 윤서, 뚱뚱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자 운동으로 몸짱이 된 최정빈이 등장한다.

미래고에 입학하자마자 리코더부를 창설한 대한이. 초등학교 친구 11명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만 2학년이 되자마자 줄줄이 탈퇴하고 효재만 남았다. 하지만 녀석마저 “고등학생이 리코더 부는 거 솔직히 좀 쪽팔리잖아. 사실 리코더는 초딩들이나 부는 거잖아”라는 말을 던지고 리코더부를 떠나버린다.

리코더는 정말 초딩들이나 부는 악기일까? 값이 싼 데다 기본적인 폐활량과 손가락만 있다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리코더가 초등학교 음악 시간 학습용 악기로 정착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리코더를 ‘초딩 악기’로 규정하는 건 무지한 판단이다.

중세부터 유명했던 리코더

리코더는 서양식 관악기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세 시대부터 널리 애용되어오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헨델이나 비발디 같은 작곡가들이 리코더를 주축으로 하는 트리오 소나타와 협주곡을 많이 썼으며, 바흐도 브란덴부르크협주곡 2번과 4번에서 리코더를 독주 악기로 활용했다. 18세기 들어서 경쟁 악기였던 플루트로 인해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으나 19세기 후반 고악기 연구가들에 의해 리코더가 되살아났다. 요즘 ‘오징어게임’ OST ‘Way Back Then’ 덕분에 리코더를 연주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듯하다.

리코더부와 식스팩은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까. 부원이 단 1명뿐인 리코더부의 동아리실을 부원이 넘쳐나는 철인스포츠부에 넘겨야 할 위기에 처하자 대한은 사력을 다해 부원 확보에 나선다. 두 명밖에 확보하지 못한 대한이 절대 못 나가겠다고 우겨서 일단 철인스포츠부와 동아리방을 반씩 나눠 쓰게 된다.

불만이 가득한 대한에게 철인스포츠부장 정빈은 철인대회에서 자신을 이기면 동아리실을 통째로 넘기겠다고 제안한다. 식스팩이 선명한 정빈에 비하면 대한의 몸매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대한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과감히 받아들인다. 리코더부원이면서 정빈을 좋아하는 윤서의 마음을 확실히 돌려놓고 싶은 소망에다 철인경기에서 3연패한 형에 대한 믿음을 보태어 내린 결단이다.

불 속에서 구해준 아버지

사실 대한은 자신의 혈액형이 부모 사이에서 나올 수 없다는 걸 중학교 3학년 때 알게 된 이후 가족과 냉랭한 상황이다. 엄청난 혼란에 빠져 계속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가족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방관인 아버지가 화마 속에서 건져 낸 아기였다는 것과 불 속에서 친엄마가 리코더를 불어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걸 알고 충격에 빠진 것이다. 대한을 너무나 아끼는 가족은 예전과 똑같이 대하며 눈치만 보고 있다.

현직 소방관인 형의 도움으로 철인경기 대비 훈련을 시작하면서 가족과의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진다. 그럼에도 ‘배 아파 낳은 자식, 피를 나눈 형제이고 싶었다. 내 부모님이 실은 부모님이 아니고 내 형이 실은 형이 아닌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리 그런 거 아니라고 위로를 해도 그런 거였다. 나는 부모 잃은 입양아일 뿐이었다’라는 대한의 토로가 찡하게 다가온다.

가족과 납골당에 간 대한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유독가스 속에서도 리코더를 분 친엄마와 자신을 구해주고 길러준 가족의 사랑을 진하게 느낀다. 철인경기는 어떻게 됐을까. 정빈이 당당히 1등을 하고 대한은 89등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다. 대신 정빈과 대등해진 자신의 식스팩을 보며 대한은 자신감을 얻는다. 든든한 가족이 마음의 식스팩이 되어준 것도 고맙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회원이 15명으로 늘어난 리코더부를 자신이 연습시킨 제혁에게 넘긴 대한은 윤서와 정빈이 사귀는 것에 대해서도 응원을 보낸다. 리코더와 식스팩, 입양과 가족, 우정과 짝사랑까지 재미있으면서 콧날 시큰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을 만나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