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 26일 오후 3시27분

SK하이닉스가 17년 전 경영난 때문에 매각해야 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키파운드리를 인수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파운드리를 두 배 키우겠다”고 밝힌 청사진도 이번 인수로 실현할 수 있게 됐다.

2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번주 사모펀드(PEF)인 알케미스트캐피탈 등이 보유한 키파운드리(옛 매그나칩 파운드리 부문) 지분 전량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매각 측은 여러 인수 희망 후보의 조건을 검토한 후 SK하이닉스를 낙점해 협상을 했다. 키파운드리의 기업가치는 약 6000억원으로 평가됐다.

키파운드리는 8인치 웨이퍼 기반 파운드리업체로 1979년 설립된 LG반도체가 모체다. 1999년 현대전자와 합병하면서 하이닉스반도체가 됐고, 2004년 하이닉스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메모리 부문을 분리한 뒤 매그나칩반도체라는 법인을 세워 해외 CVC캐피털에 매각했다.

키파운드리는 이 매그나칩에서 충북 청주에 있는 파운드리 시설만 별도로 떼어내 설립한 회사로 지난해 3월 PEF 운용사인 알케미스트캐피탈과 그래비티PE 등에 5100억원에 팔렸다. SK하이닉스는 당시 PEF에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해 20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1년여 만에 전체 경영권까지 확보하게 됐다.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생산 규모는 월 20만 장 수준으로 두 배 가까이 늘게 된다.

SK그룹 차원의 반도체 육성 전략도 더 선명해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 모회사인 SK텔레콤은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밝혀왔다.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와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사업이 동시에 강화되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한층 커지게 된다.

박 부회장은 올해 5월 “파운드리에 더 투자할 것”이라며 “국내 팹리스들에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주면 이들 기업은 여러 기술을 개발해낼 수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

담장 하나 두고 숙소·식당까지 공유
SK '파운드리 시너지' 키울 파트너

키파운드리의 주요 공장은 충북 청주에 있는 SK하이닉스의 공장들과 담장 하나를 두고 인접해 있다. 키파운드리는 SK하이닉스와 공업 용수, 전력 등 기반시설을 공유할 뿐 아니라 SK하이닉스로부터 직원용 기숙사까지 임차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밀유지가 생명인 반도체업계에서 양사가 동거를 택한 건 국내 반도체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2004년 당시 하이닉스는 회사 존폐가 달린 재무 위기를 맞자 키파운드리 전신인 시스템반도체 사업부를 팔아야 했다. 해외 투자자를 새 주인으로 맞은 키파운드리 사정도 좋지 않아 매각 후에도 주요 기반시설을 하이닉스에서 빌려 썼다.

이후 반도체 업황이 좋아지면서 두 회사 모두 상황이 변했다. 부도 직전 위기에서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 업체로 자리잡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키파운드리도 호황 국면을 맞았다. 특히 최근 8인치(200㎜) 웨이퍼를 기반으로 한 반도체 품귀 현상 덕도 보고 있다. 키파운드리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왔다는 소식에 SK하이닉스 외 중국 반도체 회사는 물론 세계 반도체 관련 기업과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진 이유다.

결국 인수 경쟁에서 향후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 시너지가 뚜렷한 SK하이닉스가 새 주인으로 낙점됐다. 17년 만에 다시 한몸이 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기존 파운드리 부문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시스템IC)가 중국으로 이전하며 국내에 생긴 공백을 키파운드리가 메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특히 PEF 경영체제에서 키파운드리의 구조조정이 이뤄진 점도 인수 배경으로 꼽힌다.

키파운드리의 생산능력은 시스템IC와 비슷한 월 8만2000장이다. 인수 직후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설비 규모도 두 배 커진다. 반도체를 만드는 8인치 웨이퍼 장비는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어 공장을 지으려고 해도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본격적인 양산에 이르기까진 수년의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키파운드리가 시스템IC와 동일한 8인치 웨이퍼 기반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이미지센서 등을 생산해온 만큼 신규 투자 대비 생산량 확보에 드는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