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북·부산·강원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대규모 총파업에 들어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 2만7000여 명이 20일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에 기습적으로 집결했다. 서대문역 사거리를 비롯해 도심 곳곳이 경찰 병력과 집회 참가자로 아수라장이 되면서 시민과 행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김병언 기자
서울·전북·부산·강원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대규모 총파업에 들어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 2만7000여 명이 20일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에 기습적으로 집결했다. 서대문역 사거리를 비롯해 도심 곳곳이 경찰 병력과 집회 참가자로 아수라장이 되면서 시민과 행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김병언 기자
“회사로 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길을 막을 겁니까.”

20일 오후 1시30분 태평로2가 서울광장 주변 인도. 폭 5m 길 위를 경찰 병력 10명이 막아서자 한 남성이 언성을 높였다. 방패를 손에 쥔 경찰도 “집회 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며 맞섰다. 경찰과 두세 차례 말을 주고받던 남성은 결국 일그러진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광화문역 주변 회사에 다니는 윤모씨(42)는 “평소 10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30분 만에 갔다”고 했다.

사회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일 전국 14곳에서 총파업을 강행했다. 서울에서는 도심에 배치된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기습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도심 곳곳이 경찰 병력과 집회 참가자로 아수라장이 되면서 시민과 행인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군사작전 같은 시위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전북·부산·강원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대규모 총파업과 집회를 강행했다. 경찰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집회 금지를 통보하고, 정부와 각계가 우려를 나타냈지만 파업·집회 모두 그대로 진행됐다.

집회는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민주노총은 집회 시작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이 돼서야 서대문역 사거리를 서울지역 집회 장소로 확정했다. 집회를 해산하려는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이날 총 171개 부대, 약 1만2000명의 병력을 집회 현장에 투입했다.

뒤늦게 장소가 공지되자 서울시청과 을지로, 태평로 일대에 흩어져 있던 집회 참가자들은 서대문역 사거리를 향해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주요 길목에서 경찰이 이동을 제지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반발해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비교적 경찰 감시가 느슨하다는 이유로 서대문역 사거리를 집회 장소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주변에는 경찰버스로 이뤄진 차벽이 아침부터 설치돼 있었다.

도로 점거한 채 북 치며 소음

오후 2시 집회가 시작되자 서대문역 사거리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지하철 출입구는 집회 참가자들로 인해 막혔고, 4차로 차도는 전부 통제됐다. 경찰은 “금지된 집회를 개최 중이며 모두 처벌될 수 있고 연행될 수도 있다”고 수차례 경고 방송을 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북과 장구 등을 치며 단체로 야유를 보냈다. 방역수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날 서울 집회 참가 인원은 주최 측 추산 2만7000명이었다.

피해는 시민 몫이었다. 경찰 병력이 차도와 골목을 통제하고, 민주노총이 인도 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탓에 통행에 큰 불편을 겪었다. 지하철 경복궁역, 광화문역, 시청역, 종각역, 안국역 등 5개 지하철역과 인근 27개 버스정류장은 낮 12시30분부터 오후 2시40분까지 정차가 중단됐다.

50대 남성 A씨는 “시험 감독하러 학교에 가야 하는데 벌써 30분이나 늦었다”며 “뒤로도 못 가게 길을 막으면 어떡하느냐”고 호소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길을 비켜달라”고 부탁한 시민도 있었다.

보수 성향 대학생 단체인 신전대협과 자영업연대는 민주노총과 양경수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를 감염병 관리 및 예방에 관한 법률 위반과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서울경찰청은 67명 규모의 ‘10·20 불법시위 수사본부’를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장시간 불법집회와 행진을 강행한 집회 주최자 등에 대해 집시법 위반,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신속·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선 급식 중단

유치원, 초·중학교 등 약 1만4800곳 중 6000여 곳의 교육공무직도 이날 파업에 들어가 곳곳에서 급식·돌봄 공백이 발생했다.

파업이 발생한 초·중·고등학교 급식실에는 ‘교육공무직 총파업에 따른 급식 중단으로 간편식을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 최명신 씨는 “간편식을 급하게 발주하다 보니 영양에 맞는 식단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학부모들은 비상이 걸렸다. 서울 용산구의 한 학부모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돌봄교실이 문을 닫아 급하게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했다”며 “파업이 길어지면 연차를 낼 예정”이라고 했다.

교육부와 전국 17개 교육청은 상황실을 통해 급식·돌봄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급식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인력의 협조하에 가능한 메뉴를 지원하고, 도시락, 빵·우유 등 대체 급식을 제공하거나 개인별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안내했다.

양길성/최만수/최다은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