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속 체육복을 입고 3분기 실적 발표를 하고 있는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오징어 게임’ 속 체육복을 입고 3분기 실적 발표를 하고 있는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열풍에 힘입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신규 가입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는 19일(현지시간)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이 기간 신규 가입자가 438만 명(계정) 늘어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가입자 수(220만 명)의 두 배에 달한다.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마이 네임’ ‘갯마을 차차차’ 등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영향이 크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실적 잔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정작 한국 제작사들은 흥행에 따른 추가 수익을 얻지 못해 논란과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K콘텐츠에 넷플릭스 실적 잔치

'창작 놀이터' 얻은 K콘텐츠…'실적 대박'난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성장세는 디즈니플러스 등의 적극적인 공세로 둔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3분기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 수는 자체 예상치 350만 명, 월가 예상치 384만 명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20만 명이 새로 가입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선 7만3000명 늘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늘어난 74억8000만달러, 순이익은 두 배 증가한 14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로이터, 블룸버그 등 해외 매체들은 넷플릭스의 실적 개선 비결로 일제히 오징어 게임의 흥행을 꼽았다. 로이터통신은 “오징어 게임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예상보다 많은 신규 고객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이날 실적 발표에 나섰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로, 지난달 17일 공개됐다. 94개국에서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1위에 올랐으며 첫 4주 동안 전 세계 1억420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1위였던 ‘브리저튼’(8200만 명)의 두 배에 가까운 수다.

넷플릭스의 성장세엔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K콘텐츠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소희 주연의 ‘마이 네임’도 지난 15일 공개 직후 전 세계 4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 마이 네임처럼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는 아니지만, 방영권을 사들여 제공하고 있는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K콘텐츠의 잇단 흥행으로 넷플릭스뿐 아니라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해외 OTT의 한국 콘텐츠 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할리우드 등에 비해 가성비가 높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 제작사 싸이런픽쳐스가 만든 오징어 게임엔 넷플릭스가 2140만달러(약 253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당 28억원꼴로, 넷플릭스의 대표 해외 오리지널 콘텐츠 ‘기묘한 이야기’(800만달러)와 ‘더 크라운’(1000만달러) 등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IP 넷플릭스에 귀속…“개선 노력 필요”

그러나 제작사와의 수익 배분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처음엔 한국 제작사에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OTT로부터 대규모 제작비를 지원받아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고, 해외에 콘텐츠를 쉽게 알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식재산권(IP)을 OTT가 가져간다. 방영 후 러닝 개런티(흥행 결과에 따른 수익 배분), 굿즈 판매 수입 등을 모두 OTT가 차지하는 구조다.

블룸버그통신이 입수한 넷플릭스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얻게 되는 가치는 8억9110만달러(약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창작자들이 흥행에 연연하지 않고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며 “제작사 및 창작자들과 향후 어떤 방식으로 긍정적인 협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제작사들 사이에선 새로운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김은희 작가가 쓴 tvN 드라마 ‘지리산’은 전지현·주지훈 주연으로 23일 첫 방영 전부터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제작사인 에이스토리가 자체 IP를 갖고 있으면서도, 중국 OTT 아이치이에 중국을 제외한 해외 방영권을 200억원대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거대 제작비를 충당하는 동시에 방영 이후에도 IP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플랫폼 우위로 끌려갔다면 이번 오징어 게임 흥행으로 콘텐츠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플랫폼과 콘텐츠 업계가 함께 계약 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황정수 실리콘밸리특파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