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코로나19로 어떻게 변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어느덧 2년째다. 전 세계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코로나19는 현재 세계 경제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 놓고 있을까.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지속되면서 사망자 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망자 수를 훨씬 뛰어넘었다. 모든 예측기관은 남아 있는 2020년대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각종 위기로 점철됐던 2010년대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또 다른 10년을 맞이하는 미완성에 따른 두려움이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입증했듯이 그 어느 10년보다 ‘혼돈 속에 대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앞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놓지 못한 것에 따른 우려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만 하더라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2020년대 세계 경제는 2010년대에 비해 환경 면에서는 ‘뉴노멀’에서 ‘뉴 앱노멀’로, 위험관리 면에서는 ‘불확실성’에서 ‘초불확실성’으로 한 단계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 앱노멀·초불확실성 시대가 무서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빅 체인지, 즉 큰 변화’가 일어나 국가와 기업, 개인까지도 위상을 갑작스럽게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질서, ‘속이 빈 버거’였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세계인이 고통을 겪는 지난 2년 동안 세계 경제 질서는 ‘속이 꽉 찬 버거’가 아니라 ‘속이 빈 버거’라는 점이 확인됐다. 외형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해 온 국제기구와 국제규범이 남아 있더라도 실질적인 역할과 구속력은 더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채워줄 새로운 국제기구와 국제규범이 태동될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무정부, 무규범의 혼돈 시대가 닥칠 수 있는 소지를 예고한 점이다. “짐의 말이 곧 법이다”고 할 만큼 경제 절대군주 시대에서는 새로운 국제기구와 규범을 만들기 위해 각국이 머리를 맞대는 일조차 어렵다. 설령 만들어지더라도 구속력과 이행력이 따르지 않는 느슨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미 트럼프 정부가 보여줬고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장기 집권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제통화질서도 ‘시스템이 없는’ 지금의 체제가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탈(脫)달러화 움직임이 빠르게 진전되는 가운데 유로화, 위안화, 엔화 등 현존하는 통화가 달러화를 대체하기도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하는 것을 계기로 디지털 기축통화 자리를 놓고 미국과 중국 간 또 한 차례 환율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첫해부터 들이닥친 코로나19 사태로 2010년대보다 더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중앙은행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들을 만큼 많이 풀린 돈으로 자산 거품이 심하게 끼었는 데도 회수가 쉽지 않다. 초저금리로 부채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종전과 다른 것은 중국과 미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점이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차기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는 점이다.

문제는 ‘다음 세대’보다 ‘다음 선거’, ‘국민’보다 ‘자신의 자리’만 생각하는 정치꾼이 정치가보다 더 판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대통화론자(MMT)의 주장처럼 돈을 더 풀고 빚을 더 내서 쓸 경우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대형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과 같은 국제경제기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여건에서는 글로벌 초대형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
세계 경제, 코로나19로 어떻게 변했나
기후변화 과제 현실로 다가오다
매년 초 스위스의 작은 휴양 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6년 전부터 단골 메뉴처럼 디스토피아(dystopia) 과제를 제시해 왔다.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 가장 어두운,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WEF가 2020년대에 예상하는 디스토피아 과제 가운데 가장 빨리 현실로 닥치고 있는 것이 ‘기후변화’다.

올해는 기후변화가 ‘대(great)’자가 붙어야 할 정도로 유난히 심했다. 북미 지역은 대폭염, 중남미 지역은 대가뭄, 아시아 지역은 대태풍, 유럽 지역은 대홍수, 아프리카 지역은 대사막화, 오세아니아 지역은 강한 바람에 편승한 대쥐떼 등으로 전 세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엄격히 따진다면 지난 2년 가까이 전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도 기후변화에 따른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로 분류된다.

기후변화는 세계 경제의 근본적인 틀(frame)을 흔들어 놓고 있다. 지금까지는 경제주체들이 지구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이익을 추구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 왔으나, 그 과정에서 노출된 디스토피아가 이제는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음에 따라 지구를 보호하는 쪽으로 관심이 이동되고 있다. 기본 틀이 전환되는 과도기 단계에 있어서는 각종 병목(bottle neck)과 불일치(mismatch) 현상으로 새로운 현안들이 속속 대두되고 있다.
세계 경제, 코로나19로 어떻게 변했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가시화
세계 경제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점이다. 원유, 희토류, 금, 면화 등 국제 원자재뿐만 아니라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부품에 이르기까지 각국이 무기화할 조짐을 보임에 따라 ‘공급 쥐어짜기 충격(supply sqeeze shock)’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올 만큼 세계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GVC)이 무너지고 공급난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국민 경제 입장에서는 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물가가 오름에 따라 경제고통지수가 급격히 높아진다는 점이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더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정책 대응 면에서는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총수요를 늘리면 물가가 앙등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줄이면 경기가 더 침체되는 악순환 국면에 처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정책 수단을 다 소진한 여건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2차 오일쇼크 이후 들이닥친 1980년대 초반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미국 레이건 정부가 곤혹을 치르자 세율 감면 등을 통해 공급 능력을 확대하는 ‘공급 중시 경제학’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물가도 잡을 수 있었다. 공급 중시 경제학의 이론적 근거가 됐던 아서 래퍼 곡선(Asher’s curve)은 당시 주류 경제학이었던 케인즈언의 총수요 이론으로 보면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4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대해 이번에는 각국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빠르게 정착되고 있는 디지털 콘택트 산업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다.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 시절 신경제 신화에서 입증됐듯이 네트워크만 깔면 갈수록 공급 능력이 확대되는 이른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콘택트 산업이 발전되면 고성장을 하더라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골디락스 국면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콘택트 산업이 발전되면 두 가지 새로운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기업 권력이 국가 권력을 넘보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크래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테크래시(techlash)란 ‘기술(technology)’과 ‘반발(backlash)’의 합성어로 각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 간 힘 겨루기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쌍방향 의미의 용어다.

빅테크, 힘 겨루기 본격화…시장 독점 우려도 테크래시를 주도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6년 전 미국과의 경제패권을 겨냥한 ‘제조업 2025’를 추진하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육성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 왔던 중국이 2021년 3월에 열렸던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이후 바뀌었다. △해외 상장 제한 △민간기업 빅데이터 공유 △‘반독점법’ 적용 확대 등을 통해 빅테크 기업을 이중삼중으로 옥죄고 있다.
세계 경제, 코로나19로 어떻게 변했나
미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으로 ‘아마존 킬러’로 알려진 리나 칸이 임명된 이후 △경쟁사 킬러 인수 규제 △핵심 인력 빼내기 제한 △망 중립성 확보 △제품 수리권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다른 점은 날로 심해지고 있는 빅테크 기업의 독점 행위를 규제해 자국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시키려는 의도가 크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던 글로벌 최저법인세율 15% 부과안을 주도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넘어 130개국이 합의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도 카카오 모빌리티가 가맹 택시인 블루에 고객을 몰아주고 정작 기존 유료 회원은 뒷전에 내몰리는 등 배달 서비스, 골프장 이용 등에 테크래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테크래시가 범세계적인 성격을 띰에 따라 디지털 뉴라운드 협상이 전개될 움직임이다. 디지털 뉴라운드 협상은 디지털 경쟁 정책 라운드(CR: 빅테크 독점 규제), 디지털 기술 라운드(TR: 랜섬웨어 차단), 디지털 노동 라운드(BR: 빈곤층 고용 차별), 디지털 환경 라운드(GR: 관세 모라토리움 방지) 등 ‘4R’이 핵심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하나는 디지털 콘택트 기업이 시장을 독점할 경우 국가와 기업,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케이(K)’ 자형 양극화 구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빅테크’로 상징되는 디지털 콘택트 기업은 발전 정도에 따라 ‘횡재 효과(bonanza effect)’와 ‘상흔 효과(scaring effect)’가 뚜렷하게 나타나 소득 계층별로는 중산층이 무너져 중하위 계층이 두터워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이드 섀플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와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교수의 공색적 게임이론이 부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공생적 게임이론을 경영에 접목시키는 일환으로 BOP, 즉 빈곤층 대상 비즈니스(BOP business)를 새로운 사업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수익과 빈곤층 자립 기반 조성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BOP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동반자 관계 설정, 각종 기부 등을 통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이 함께 가는 제3의 길인 ‘임팩트 경영’에도 주력하고 있다. 임팩트(empact)란 감정 이입을 뜻하는 ‘empathy’와 사회적 연대를 나타나는 ‘pact’가 결합된 용어로 사회적 연대 경영을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행하는 ‘empact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대표적인 예다.

디지털 콘택트 산업과 빈곤층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알파 라이징 산업(α-rising industry), 해빙에 따른 북극과 그린란드에서 시작되는 신천지 산업(new frontier industry), 대중화 단계에 들어가는 우주항공 산업(off the earth industry) 등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제3섹터’가 부상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대량 실업에 따른 사회병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인 제조업도 계속해서 중시해 나가고 있다.

경제정책 운영과 관련해 공생적 게임이론이 ‘공유경제’ 논의로 급진전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콘택트 산업 발전으로 발생하는 ‘횡재 효과’와 ‘상흔 효과’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능력과 결부되지 않은 면도 많아 경제 게임 결과를 인정하고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많다. 능력 이상으로 얻은 것은 거둬서 능력과 관계없이 피해를 입은 경제주체에게 배분해주는 과정에서 공유경제가 논리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공유경제를 누가 담당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모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발생하는 제반 문제들이 준(quisi)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어 ‘국가와 민간’, ‘계획과 시장’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간, 계획과 시장이 함께 풀어가는 혼합경제 체제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도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