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산유국 똘똘 뭉쳐 "추가증산 없다" 못 박자…국제유가 7년 만에 최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닥까지 떨어졌던 기름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 4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2.3% 오른 배럴당 77.6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11월 이후 7년 만의 최고치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도 81.26달러로 3년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추가 확대하지 않기로 한 여파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이 다가오고 있어 유가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겨울 한파가 심하면 내년 초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원유시장 ‘거대 권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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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상당수가 이렇다 할 신산업 발전 없이도 부유하게 사는 것은 기름 팔아 번 돈, 즉 ‘오일 머니’가 넘쳐흐른 덕분이다. 이들에게 석유는 축복인 동시에 한계다. 국제 유가가 뛰면 돈방석에 앉지만 급락하면 나라 경제에 직격탄이 된다. 이들 석유 생산·수출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해 국제 유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50년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대형 유전이 잇따라 발견되자 원유 공급과잉 사태가 빚어졌다. 스탠더드오일, 엑슨모빌 등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은 다른 산유국을 상대로 ‘가격 후려치기’에 나섰다. 그러자 주요 산유국 사이에서 미국에 대항해 원유 가격 하락을 막아보자는 움직임이 꿈틀댔다. 1960년 이라크 주도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베네수엘라, 쿠웨이트까지 5개 산유국이 뭉치면서 출범한 협의체가 OPEC이다. 이후 카타르, 리비아, 아랍에미리트, 알제리,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가봉, 앙골라, 적도기니, 콩고가 합류했다.

초창기 OPEC은 정보 교환을 통해 유가 하락을 방어하는 가격 카르텔의 성격이 강했다. 1970년대 세계 원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자 석유 생산량을 ‘무기’로 삼는 생산 카르텔로 변신했다. OPEC 회원국의 원유 감산이 유가 폭등을 불러온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대표적이다. 당시 가격이 3~4배 뛰면서 산유국은 앉아서 떼돈을 벌었다. 이후 기세등등해진 OPEC은 석유시장을 쥐락펴락하며 ‘지구 최대의 카르텔’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고 했다. 국제 원유 시장에서 OPEC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힘이 빠졌다는 평가도 많다. 미국이 퇴적암에서 셰일오일을 왕창 캐내 기존 산유국을 위협하면서다. 셰일오일에 위기감을 느낀 OPEC은 2014년부터 원유를 증산해 국제 유가를 떨어뜨리는 작전을 썼다. 생산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셰일오일을 고사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국은 기술 혁신으로 셰일오일 생산단가를 더 낮췄고,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라섰다. 초창기 핵심 멤버였던 카타르가 2019년 1월 OPEC을 전격 탈퇴해 회원국이 줄어들기도 했다.

비회원국 더해 ‘OPEC+’ 진화

2000년대 들어 OPEC에 가입하지 않은 산유국인 러시아, 멕시코 등도 OPEC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 비회원국은 세계 원유 수급량과 가격을 둘러싸고 OPEC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그 결과 OPEC에 일부 비회원국까지 더한 새로운 협의체인 ‘OPEC+’가 구성됐다.

[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산유국 똘똘 뭉쳐 "추가증산 없다" 못 박자…국제유가 7년 만에 최고
산유국들은 코로나19 확산 당시 세계 에너지 수요가 급감하자 지난해 2분기 원유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올 들어서는 경기 회복을 반영해 생산량을 조금씩 늘렸고, 8월부터는 매일 40만 배럴씩 늘려왔다. 에너지 수요가 살아나자 시장은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좀 더 가파르게 확대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OPEC+는 이달 초 기존 원유 생산량을 11월에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산유국들이 추가 증산에 나서지 않기로 하면서 에너지 가격은 동반 상승했다. 천연가스와 석탄값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