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임박, 중국 헝다그룹발 유동성 우려 등 최근 국내 증시를 둘러싸고 불확실성이 팽배한 가운데서도 외국인 매수세는 유입되고 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낙폭이 컸던 반도체주를 집중 매수했다. 중소형주 대비 부진한 흐름을 보이던 대형주에 외국인의 유의미한 매수 흐름이 포착되면서 지수 상승을 이끌지 주목된다.
외국인들 '슬금슬금' 삼성전자·하이닉스 샀다

10개월 만에 순매수 돌아선 삼성전자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 13일부터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7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했다. 지난주에 이어 이날까지 외국인은 1조4361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달 외국인이 매수세를 지속한다면 월간 기준으로 올 4월 이후 5개월 만에 순매수로 전환하게 된다.

외국인은 최근 반도체주를 집중 매수했다. 지난 2주간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 1·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다. 외국인은 이 기간 삼성전자를 1조499억원, SK하이닉스를 1695억원 순매수했다.

월간 기준으로 외국인이 삼성전자 순매수세를 나타낸 건 작년 11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이달 들어 24일까지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1조3808억원어치 쓸어담았다.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선 배경으로는 우선 ‘팔 만큼 팔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까지 9개월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오며 외국인은 약 22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다. 주가가 7만원대로 떨어지자 저가 매수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올 3분기 실적 추정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다는 점도 수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7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전년 동기 대비 7.87% 증가한 15조6800억원으로 집계됐다. 메모리 반도체와 더불어 스마트폰 판매 회복으로 호실적을 냈을 것이란 관측이다.

원·달러 환율, 수출 지표 등 대외 여건도 국내 증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융시장 불안을 유발했던 헝다그룹발 시스템 리스크 확산 가능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감하고 있다”며 “9월 한국 주력 품목의 수출이 호조를 보였고, 환율도 고점 경신 이후 빠르게 내려와 안정을 찾아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3분기 실적 주목…“바이오는 안전지대”

반도체 외에 외국인이 최근 집중 매수한 종목은 주로 이달 중순 이후 실적 추정치가 상향 조정됐지만 코스피지수 대비 수익률이 부진했던 업종이 많다. 정보기술(IT) 가전, 운송, 헬스케어 등이 대표적이다. 외국인이 최근 많이 산 10대 종목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 기아, 크래프톤, 포스코, HMM 등도 포함됐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10월 이후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가 점차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크게 올라가면서도 수익률이 낮았던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내내 소외되며 주가가 부진했던 바이오업종이 안전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가증권시장 헬스케어업종지수의 상대 수익률이 26개 업종 중 가장 낮다는 점에서 밸류에이션 부담이 작다는 설명이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낙폭이 컸던 바이오는 하방 리스크가 제한돼 현재 시장에서 대응이 가장 적합한 업종”이라고 말했다.

양극재 업체인 엘앤에프도 외국인이 13일 이후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 3위에 올랐다. 엘앤에프는 테슬라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맺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최근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증권가에서 “양극재 2차 대규모 수주 사이클이 시작됐다”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은 영향으로 2차전지 소재·장비주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