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책임질 자신 있나"…산은 회장의 작심 비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기업 구조조정 현안에 대해 "국내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없다"며 경쟁당국의 협조와 전향적 검토를 읍소하고 나섰다.

이 회장은 13일 취임 만 4년을 맞아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그간의 소회와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등 현안들에 대한 질의를 받았다.

이 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다소 이례적일 만큼 공정위와 노조,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다만 대우건설 `재입찰` 매각, 한국성장금융 운용책임자에 청와대 인사가 내정되는 등의 논란에 대해서는 "개별사들의 독립적인 책임 경영을 존중하고 있다"고 선을 그으며 다소 부족한 해명을 내놨다.

● "대우건설 매각, 법적 문제 없어"…HMM 매각 계획 묻자 "정말 없다"

먼저 이 회장은 산은이 현재 조사 중인 대우건설 매각 절차에 대한 질문에 "아직까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대우건설 매각은 산은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KDB인베스트먼트의 책임으로 위임했다"면서 "매각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있으며, 필요시 매각의 공정·투명성 더 높이려는 계획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과정도 공정·투명하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KDB인베스트먼트가 (법적 문제에 대해) 최선의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HMM의 매각과 관련해 장·단기 계획을 묻는 질문에 "매각 관련 별도 진행 중인 사안이 정말 없다"면서 "큰 방향만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HMM은 작년부터 코로나 특수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내년부터는 이익 많이 줄고 내후년에는 이익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2년 내로 재무 구조를 본질적으로 개선하고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각 관련 `큰 방향`에 대해서는 "HMM을 더 이상 갖고 있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서 원론적으로 구조조정 목적을 달성하면 매각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향후 원활한 매각과 M&A 여건 조성을 위해서는 단계적 매각을 통해 보유 지분을 조금씩 낮추는 게 좋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시장 여건 등 고려하여 유관기관과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산은이 독자적으로 결정 안 할 것"이라며 "해진공 등 유관기관과 정책기관과의 협의를 통해서 점진적 매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구조조정 힘들다…공정위·노조·지역사회 등 도와달라"

이날 이 회장은 구조조정과 관련한 현안 기업들에 대한 질문을 받자 작심한 듯한 태도로 날선 답변을 이어갔다.

먼저 쌍용차 매각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이 회장은 "쌍용차는 제대로 된 사업 주체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사업 계획을 가져오기 전에는 만사휴의(萬事休矣, 어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음)"라고 답했다.

이어 "내일모레(15일) 본입찰 곧 있을 예정인데, 현재 법원이 주도 중인 M&A 절차가 잘 마무리되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사업 계획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쌍용차 노사의 협조"라면서 "노사 협조 없이는 신규 투자자의 정상화 작업도 굉장히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 드린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인수 후보자들이 공장부지 용도 변경을 노리고 이른바 `먹튀`를 하지 않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실무적으로 `먹튀`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공장 이전 추진, 다른 부지 탐색, 용도 변경 등 그 과정이 수 년이 걸리는데 `먹튀`를 노리고 투자자가 투자를 결정하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과의 결합을 묻는 질문에는 "현대중공업에서 EU 경쟁당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면서도 "그러나 전세계 1, 2위를 다투는 조선사의 합병인 만큼 심사와 발표 시기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유감 표명을 해야겠다"며 간담회를 잠시 멈춘 그는 "대우조선의 노조와 지역 정치인 일부가 EU 경쟁당국 앞에까지 가서 기업 결합을 반대하는 등 압박을 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EU 경쟁당국 결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과연 그분들에게 묻고 싶다. 대우조선을 책임질 자신이 있나"라고 물으면서 "독자생존에 자신이 있다면 정부를 설득해서 모든 금융 지원을 끊고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설득해보겠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러한 행동들이 "그저 대우조선의 국유화와 대우조선 직원의 공무원화를 원하는 것"이라면서 "상생의 기반 위에 협조하면서 차분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현안에 대한 질의에도 이 회장은 날선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양사의 합병에 대해 "각국 경쟁당국들의 결합 심사 후에도 PMI 등 많은 과정과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면서 "긴 과정 동안 조심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일부 주주와의 논의 가능성도 열어놨다"면서도 "다만 강성부 대표의 발언 등을 돌아볼 때 이제 엑시트(exit) 할 의향도 있어 보이는 만큼, KCGI와의 협의는 불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 회장은 "우리 경쟁 당국이 우리 부실기업의 도태 시에 발생하는 파장을 놓고 좀 전향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를 저격했다.

그는 "예를 들면 EU 경쟁당국이 아마존과 구글 등 플랫폼 빅테크들을 규제하려고 하면 미국 경쟁당국이 보호하려 나서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조금 기다리고 앉아서 다른 국가들이 하는 거 보고하자는 기분이 들어서 심히 섭섭하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은 대한민국 항공 산업의 생존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조치"라면서 "시장과 산업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공개적으로 드린다"고 밝혔다.

● "개별사들, 독립 경영 중…재임 중 보람찬 일은 구조조정 인식 변화"

다만 이 회장은 대우건설 `재입찰` 매각, 한국성장금융 운용책임자에 청와대 인사가 내정되는 등의 논란에 대해서는 "개별사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KDB인베스트먼트에 대해 "산은의 장기 미매각 자산을 이관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라며 "책임성 갖고 구조조정을 수행 중인 개별 조직"이라고 밝혔다.

KDB인베스트먼트가 첫 본입찰 당시 내세웠던 가격 등 조건 변동은 없다는 원칙을 깨고, 입찰 가격을 수정해 준 문제의 책임 소재가 KDB인베스트먼트에 있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또 청와대 인사가 투자운용 경력 없이 20조 원 규모의 한국형 뉴딜펀드 사업을 총괄하는 한국성장금융의 운용책임자로 내정된 점에 대해서도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그는 "산은은 한국성장금융의 8%대 소수 주주"라며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성장금융의 독립적 책임 경영을 존중해왔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재임 중 소회를 묻는 질문에 "기업 구조조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답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기업 구조조정은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하면 3-6개월 내로 끝내고 정상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라면서 "미래를 안 보고 지금 당장만을 본 요구만 하기 때문에 이해 당사자가 비협조적인 점이 가장 난관"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임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어렵지만 원칙을 지킨 점이 보람되고, 사회의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도 변화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어 "무조건적인 지원, 기관 중심 구조조정 넘어서서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통해 조속하게 턴어라운드 시키려 노력했다"면서 "일부 인식 전환이 있었던 점을 보람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회장은 "산은은 구조조정 전담 기관이 아닌 혁신기업 전담 기관"이라면서 "기업금융과 기업 육성에 최선 다하겠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아울러 "산은은 디지털 기업과 4차 산업 기업, 탄소 중립 기업 육성 등 신산업 전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이라면서 "회장실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재임 기간 중에는 언제든 찾아달라"고 밝혔다.

배성재기자 sjbae@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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