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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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와 미중 마찰 격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공급망 국산화에 착수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4일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와 투자대상 기업이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작년 7월 이후 1년새 한국 상장사 8곳과 상장기업의 자회사 1곳 등 9개 회사에 2762억원을 출자했다"고 전했다.

또 "1개 회사당 출자금액은 크지 않지만 기술지원을 실시한다"며 "삼성전자가 한국 반도체 장비 및 소재기업을 육성해 자체적으로 국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반도체 장비 및 소재를 납품하는 업체 지분을 사들인 사례는 드물었다. 한일, 미중간 대립으로 기존의 국제 반도체 공급망의 분업체계가 해체 위기에 처하자 공급망 국산화를 서두르게 됐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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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1년새 출자한 기업은 불화수소 제조업체 솔브레인(249억원), 반도체 테스트 장치업체 YIK(473억원), 반도체 회로원판 제조업체 S&S테크(659억원), 반도체 웨이퍼 연마장치 업체 KC테크(207억원), 진공펌프 장치업체 Lot베큠(190억원), 웨이퍼 세정장치 업체 뉴파워프라즈마(127억원), 반도체 장비용 세라믹 부품업체 미코세라믹스(217억원), 반도체 마스크보호 소재업체 FST(430억원), 반도체 제조용 소재업체 DNF(210억원) 등이다.

모두 특정 분야에 강점을 가진 매출 수천억원대의 중견기업이다. 삼성전자는 대부분 제3자배정 유상증자 형식으로 출자했다. 출자 후 지분은 10% 미만이다. 이 기업들은 모두 "삼성전자로부터 투자받은 자금을 연구개발비에 쓸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신문은 "불화수소와 반도체 웨이퍼 연마장치 등 일본 기업이 높은 점유율을 가진 품목이 많다"고 설명했다. 또 "FST, DNF 등 첨단소재 기업과 협력해 반도체 회로 미세화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급망 기업에 대한 출자를 가속화하는 것은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이후 한국 기업들이 '일본 의존 위험도'를 강하게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삼성 뿐 아니라 SK하이닉스도 그룹 내 소재업체 육성을 서두르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불화수소 수입만 86% 급감했을 뿐 포토레지스트와 불화폴리이미드의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하지만 일본 화학대기업 관계자는 "수출관리 엄격화(수출규제)가 국산화를 단숨에 진전시킨 면이 있다"며 "한국 기업의 의사결정이 빠른데는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말했다.

내년 예산안에도 소재·부품·장치 국산화가 우선순위에 포함됐다. 내년 산업육성예산은 1조6845억원으로 올해보다 9% 늘어난다.

미중마찰도 삼성전자가 공급망 국산화를 서두르는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미국 납품업체의 장비나 소재를 중국의 반도체 메모리 공장에서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공급망 국산화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하지만 "반도체 매출이 70조원을 넘고 3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삼성전자의 움직임은 의미가 크다"며 "삼성전자가 주고객인 일본 업체들의 국제분업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닛케이는 전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