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전진시키는 네가지 원동력[강정원의 CFO's view]
안녕하세요 창업자님, 창업자님이 지난 번에 솔직하게 털어놓으신 고민에 대하여 저도 많이 공감하였고, 요 며칠 계속 고민하였습니다. 왜 조직의 역량이 창업자님 기대수준에 한참 못미치는지, 왜 외부에서는 창업자님의 회사 밸류를 창업자님이 생각하시는 만큼 높게 보지 않는지, 왜 창업자님의 회사보다 열위로 보이는 회사가 시장에서 더 인정을 받는지 등 사업적으로 답답하다는 얘기를 듣다보니 저도 도통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 뿐이었습니다.

며칠간 깊은 고민을 하던 중 안개 속 같던 머리가 또렷하게 정리되면서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1차적으로 창업자님의 사업아이디어는 훌륭하고, 창업자님의 조직은 훌륭한 인재가 충분하며, 자금조달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이 훌륭한 조건들이 두번째 단계에서 꼬여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것을 ‘자유형으로 바다 건너기’ 비유로 쉽게 설명해볼까 합니다. 자유형으로 바다 건너기를 할 경우, 발차기, 팔젓기, 숨쉬기, 그리고 파도 잘 타기 등 네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빠르고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어릴 적 자유형을 처음 배울 때를 기억해보면 팔만 열심히 젓거나 발만 열심히 찼는데, 앞으로 나가지 않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갔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발차기를 했는데, 팔젓기를 간과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숨쉬기를 못해서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진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더 웃긴 경험은 바다에서 숨쉬기를 까먹지 않으면서 열심히 발차기와 팔젓기를 했는데, 망할 놈의 파도 때문에 계속 제자리에 있거나 오히려 후진했던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요??
키판을 처음 잡았을 때는 발차기로 방향성과 추진력을 모두 해결하지만, 자유형을 할 때는 발차기는 추진력이 아니라 방향성을 담당합니다. 창업자의 역할은 발차기, 곧 '방향성'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
키판을 처음 잡았을 때는 발차기로 방향성과 추진력을 모두 해결하지만, 자유형을 할 때는 발차기는 추진력이 아니라 방향성을 담당합니다. 창업자의 역할은 발차기, 곧 '방향성'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
1. 발차기: 전사적으로 합의되고 공유된 일관성 있는 사업의 방향성

창업자님은 조직에서 발차기 담당입니다. 자유형 영법에 따르면 ‘현대의 자유형에 있어서 발차기의 역할은 직접적인 추진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하지만 발차기는 방향키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방향을 올바르게 잡아주고 몸의 균형을 맞춰준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창업자님을 만날 때마다 창업자님의 사업아이디어가 아주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전략방향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는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창업자님이 사업초기 간소한 조직으로 사업을 운영할 때는 조직이 작은 돛단배와 같아서 창업자님의 사업전략 변경이 바로바로 회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으나, 지금은 조직규모가 커지면서 항공모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축함 내지 순양함 사이즈가 되버렸습니다. 이제는 창업자님의 사업전략 변경이 조직전체의 방향전환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업전략 방향의 큰 그림은 신중하게 고민하여 결정한 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하며, 세부적인 전술을 변경할 경우에는 빠르게 조직과 합의하여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저는 창업자님이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조직규모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이크로매니지먼트를 통해 모든 의사결정과 실무적인 지시를 직접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아마도 자유형을 처음 배울 때, 키판을 잡은 채 팔젓기는 하지 않으면서 발차기로 방향성과 추진력 두가지를 모두 해결하는 방법부터 배웠던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창업자님이 오랫동안의 사업경험으로 실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업도 조직도 너무 커져버려 창업자님이 모든 지시를 할 수도 없고, 모든 의사결정을 할 수도 없습니다. 마이크로매니지먼트가 계속될 경우, 창업자님은 큰 그림을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게 되고, 능력있는 팀원들은 창업자님의 지시와 의사결정만을 기다리다가 주도성이 퇴화하여, 조직은 커졌으나 사업은 커지지 못할 것입니다. 발차기를 담당하는 창업자님은 방향성을 잡고, 추진력은 팀원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2. 팔젓기: 창업자의 사업구상을 구체화하고 실행할 수 있는 강한 팀

조직의 인재는 팔젓기를 담당합니다. 자유형 영법에 따르면 ‘팔동작을 통해 대부분의 추진력을 얻는다. 팔동작을 빨리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정확히 하는 것이 속도는 물론이고 체력면에서 유리하다. 무리해서 팔젓기를 하면 장거리 수영은 절대 불가능하다. 빠르게 숨이 차고 자세가 무뎌지고 체력고갈이 오기 때문이다. 같은 자세를 최대한 바르게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효과가 뛰어나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창업자님은 그동안 저를 만날 때마다 좋은 인재들을 영입했다고 만족해했습니다. 이는 아주 축하드릴 일입니다. 그런데 창업자님 얘기를 자세히 듣고 있다보니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인재들을 채용하여 창업자님의 지시를 단순히 실행하는 오퍼레이터로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큰 조직의 효율적인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한의 위임입니다. 일단 채용한 인재를 신뢰하고 명확한 역할과 권한을 준 후, 결과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채용하신 인재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법입니다. 지금과 같이 훌륭한 인재에게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평범한 오퍼레이터로 운영할 경우, 인재들은 자괴감을 느끼고 조직을 이탈할 수도 있고, 혹은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의견과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나 도전적인 시도를 점차 회피하면서 발차기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수동적이고 평범한 인재가 될 것이고 동시에 조직은 하향평준화될 것입니다. 모 대기업 창업주께서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의심을 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가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3. 숨쉬기: 효율적인 자금의 조달과 운용

자금은 숨쉬기와 같습니다. 자유형 영법에 따르면 ‘숨쉬기에서 머리를 치켜들어서 숨을 쉬면 상체가 들리면서 무게중심이 하체로 쏠리고 다리가 가라 앉으면서 물속으로 꼬르륵이 된다. 숨을 많이 들이 마시면 오히려 몸이 가라앉고 더 숨이 차게 되므로 적당량만 들이마신다. 입을 크게 벌린다고 산소가 많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므로 입을 적당하게 벌리는 것이 좋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창업자님은 성공적인 투자유치를 마무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또한 축하드릴 일이나, 그동안 창업자님의 사업얘기와 여러 번의 투자유치 과정을 들으면서 투자유치의 규모나 투자유치의 빈도가 적절한가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스타트업에 있어서 자금조달은 중요한 부분이고, 최근 풍부한 유동성과 정책자금으로 투자유치가 원활하게 되고 있는 점은 스타트업 환경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유상증자 기반의 투자유치로 인한 자기자본비용은 은행권 차입의 타인자본비용에 비해 너무 크기 때문에 자금적 리스크가 크지 않은 한도 내에서는 투자유치는 기업가치가 더 상승하는 뒤로 미룰수록 좋고, 투자규모는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필요한 규모에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자금이 여유롭다보면 자칫 방만한 자금운용을 할 수 있어 향후에는 투자유치 보다 자금운용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습니다. 생각해보면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은 외부자금유치와 내부비용효율화 두가지가 있는데, 창업자님은 요즘 후자는 간과한 채 너무 전자에만 집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바다를 건너기 위해 수영을 할 때는 한 가지 동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든 동작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요. /사진=게티이미지.
바다를 건너기 위해 수영을 할 때는 한 가지 동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든 동작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요. /사진=게티이미지.
4. 파도: 외생변수에 올라타기와 외생변수 피해가기
절망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고 희망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자유형으로 바다 건너기’를 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파도의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발차기, 팔젓기, 숨쉬기가 조화롭고, 원활하게 돌아가는데 창업자님이 통제할 수 없는 외생변수로 인해 사업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고, 거꾸로 예상 밖의 외부 이벤트로 사업이 기대 이상의 순항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2020년에 Covid-19가 올지, 2016년에 사드사태가 올지, 2011년에 유럽 재정위기가 올지,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지 누가 예측을 했겠습니까? 또한 창업자님 회사가 속한 산업의 변화, 경쟁구도의 변화, 환율과 같은 매크로의 변화는 예측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대응의 영역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생변수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창업자님 회사가 한 단계 레벨업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외생변수는 예측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변수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창업자님 혼자 예측하고 대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자님은 좋은 팀을 꾸린 것입니다. 조직의 훌륭한 인재들과 마이크로한 회사의 사업논의 뿐만 아니라 수시로 매크로 환경과 외생변수에 대해 열린 논의를 한다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을 것이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매니지먼트팀과 수시로 매크로 환경에 대한 논의를 하길 추천드립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은 사이클이 있습니다. 산이 있으면 골이 있고,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합니다. 이를 믿고 회사가 다운사이클에 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길 바랍니다. 위기상황에서 창업자님이 조바심을 내고 흔들리면 조직은 너무도 불안해할 것입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관상’이라는 영화의 엔딩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대표님께 소개드립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요
당신들은 그저 높은 파도를 잠시 탔을 뿐이요
우린 그저 낮게 쓸려가고 있는 중이었소만
뭐 언젠간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른 파도가 언젠간 부서지듯이 말이요’




[편집자 주] 본문 내용은 필자가 재직했던 회사나 현재 재직 중인 회사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