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디젤게이트’로 불린 수입차 업계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달 8일엔 한국닛산이 대법원으로부터 이 사건과 관련해 확정판결을 받았다. 배출가스 인증서류 및 연비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이 확정된 것이다.

다만 벌금액이 1심의 1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줄어든 데다 그 규모도 수백억원대 벌금을 내게 된 다른 수입차 한국법인에 비해 훨씬 적어 선방했다는 게 수입차 업계의 중론이다. 닛산을 대리한 태평양의 법리가 법정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진 게 이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美·日 사례 파헤쳐"…태평양, 韓닛산 '디젤게이트' 선방

다른 업체에 비해 선방한 닛산

2015년 터진 디젤게이트는 아우디폭스바겐이 배출가스량을 조작한 게 골자다. 폭스바겐 차량의 디젤 엔진에서 배기가스가 기준치의 최대 40배 가까이 초과 발생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폭스바겐은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닛산, 아우디, 포르쉐 등도 배출가스 성적표 조작 등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수년간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닛산은 유독 다른 수입차 회사들과 다른 판결을 받아냈다. 한국닛산 법인은 지난해 2월 2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1심(1500만원)에 비해 금액이 500만원 줄었다. 앞서 BMW코리아에 대해 벌금 145억원이 확정된 것과 대조적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AVK) 법인은 하급심에서 260억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한국닛산이 다른 업체들에 비해 자동차 판매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닛산의 배출가스 조작 차량은 3100여 대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7000여 대, BMW코리아는 2만9000여 대에 대해 시험성적서를 조작해 수입해온 혐의 등을 받는다. 하지만 2000여 대를 조작한 것으로 나타난 포르쉐코리아(7억8050만원 벌금형)와 비교해도 한국닛산의 처벌은 약한 수준이다.

태평양은 우선 “실무자의 비위를 상급자들이 몰랐다”고 주장했다. 태평양은 “해당 사건은 차량 본질에 영향을 주는 기계적 조작이 아니었다”며 “인증 실무자가 제출일자를 준수하지 못한 실수를 덮고자 시험일자를 조작한 것”이라고 변론했다. 또 “수입자동차 판매 업계에서 인증 절차는 실무자 의존도가 높은 업무이고, 그 업무만의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결과 법인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한국닛산 임직원 가운데 2명의 사문서변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가 무죄로 바뀌기도 했다.

태평양, 판사 출신 변호사들 활약

배출가스 조작 사건에서 한국닛산 측의 방어를 도맡은 주역은 법무법인 태평양의 강동욱, 김준모, 배용만 변호사다. 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형사지방법원과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2006년 태평양에 합류했다. 현재 국제중재소송 그룹장을 맡고 있다.

김 변호사는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뒤 수원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등에서 법관으로 재직했다. “민사와 형사뿐 아니라 행정·가사 사건 경험도 풍부하다”는 게 태평양 측 설명이다.

함께 승소를 이끈 배 변호사는 국제 상사 관련 분쟁 등 국제 소송을 두루 처리해왔다. 강 변호사는 한국닛산 사건 대리에 대해 “무엇보다 꼼꼼한 조사가 이끌어낸 성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벌어진 해외 디젤게이트 사건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 미국 등의 셀 수 없이 많은 자료를 검토해 근거자료를 분석, 정리했다”며 “자동차관리법상 관련 요건과 절차에 관한 연구와 리서치에 전 팀원이 힘을 쏟은 결과”라고 덧붙였다.

수입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과 관련해 일부 업체의 법적 공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BMW코리아가 “환경부 과징금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낸 게 대표적이다. BMW는 지난달 2일 서울고등법원에 환경부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청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과징금 583억원이 취소됐고, 44억원만 유지됐다.

법원은 “환경부가 옛 대기환경보전법을 잘못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판단했다. 벤츠코리아도 과징금 776억원에 대해 불복해 소송을 하고 있다. 한국닛산은 소송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국내 시장에선 철수한 상태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코로나19 등이 겹치자 한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안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