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구조 조정으로 재무 약정 조기 졸업 앞둬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제3의 변신’ 시도

[스페셜 리포트]
(사진) 30MW 규모의 제주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두산중공업 제공
(사진) 30MW 규모의 제주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두산중공업 제공
두산그룹이 부활의 날개를 폈다.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자금난으로 KDB산업은행 등에서 긴급 수혈을 받은 지 1년여 만에 ‘재무 약정 조기 졸업’ 전망이 나오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 조정 등에 따른 결과다. 위기를 넘긴 두산은 창사 이후 셋째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중후장대’ 기업에서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꾼다는 목표다.

9월께 재무 약정 만기 종료 전망

두산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1896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포목상 ‘박승직 상점’이 모태다. 소비재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1990년대 변신을 시작했다. 오비맥주와 처음처럼을 비롯해 코카콜라 판매권 등을 선제 매각했다.

두산은 외환 위기 이후인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시작으로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의 소형 건설 장비 사업 부문(현 두산밥캣) 등을 인수했다.

두산은 ‘중후장대 기업’으로 거듭나며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다. 중동 플랜트 시장 호황 등으로 2011년 세계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이 휘청이면서다.

두산중공업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2014년 48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7년 158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살아나는 듯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석탄 화력 발전 시장이 침체한 데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프로젝트 수주까지 급감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8년부터 2년간 누적 순손실 규모만 1조2203억원에 달했다.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는 급기야 지난해 초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회사채 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돈줄이 꽉 막혔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만기가 도래하던 빚을 못 갚게 된 두산은 결국 정부에 손을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산은 자산 매각과 비용 절감 등으로 3조원을 확보해 두산중공업을 정상화하겠다는 자구 계획 최종안을 지난해 4월 27일 채권단에 제출했다.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서 3조원을 지원받는 대가였다.
긴급 수혈 1년 만에 부활의 날개 편 두산
두산은 두 달 뒤 KDB산업은행과 3년 만기 재무 구조 개선 약정을 맺으면서 5조6500억원(평가액 기준) 규모의 계열사 보유 주식과 유형 자산 등을 담보로 내놓았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6월 11일 그룹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을 받은 것은 금전적 부채를 넘어 사회적 부채를 진 것으로 생각한다”며 “재무 구조 개선안을 신속히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산은 이후 ‘각골난망’의 심정으로 구조 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8월 골프장 클럽모우CC(1850억원)를 시작으로 그룹 본사 건물인 서울 동대문의 두산타워(8000억원), 전지박(동박) 생산 기업 두산솔루스(7000억원), (주)두산의 유압기기 사업부인 모트롤BG(4530억원) 등을 연이어 매각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2월 1조3000억원의 유상 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한국 건설 기계 1위 기업 두산인프라코어를 매각하는 절차도 막바지 단계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가 마무리되면 두산은 8500억원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두산이 채권단의 대출금을 올해 안에 모두 상환해 재무 구조 개선 약정에서 조기 졸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은 3조원의 금융 지원 중 유상 증자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약 1조5000억원을 상환했고 8월 두산인프라코어 최종 매각 등으로 이르면 9월 말 재무 구조 개선 약정이 만기 종료될 가능성 있다”며 “두산이 채권단에 제공한 두산중공업 지분 등의 담보도 해지 또는 축소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긴급 수혈 1년 만에 부활의 날개 편 두산
주요 계열사 ‘깜짝 실적’으로 그룹 재건에 힘 보태

주요 계열사들도 올해 들어 ‘깜짝 실적’으로 그룹 재건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주)두산의 올 1분기 순이익(별도 재무제표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19.09% 증가한 786억원을 기록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두산의 자체 사업은 모트롤BG 등의 매각을 통해 동박 적층판 중심의 전자 사업 비율이 전체의 약 69%로 높아졌다”며 “2분기 두산의 전자 사업은 전방 산업의 수요 증가로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하반기에도 호실적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도 1분기 1066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전년 동기 3012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김포열병합발전소(3600억원), 폴란드 폐자원에너지화 플랜트(2200억원), 창원 수소액화플랜트(1200억원) 등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수주 성과가 실적에 반영된 결과다.
올 1분기 426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한국 발전용 수소 연료 전지 시장 1위 기업 두산퓨얼셀의 실적도 호전되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2분기 421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난해의 수주 공백이 올 상반기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지만 하반기부터는 지난해 4분기 이후의 수주 물량이 성적표로 이어지는 만큼 외형 및 이익 증가가 두드러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사진) 두산퓨얼셀의 발전용 수소 연료 전지 제품. /두산그룹 제공
(사진) 두산퓨얼셀의 발전용 수소 연료 전지 제품. /두산그룹 제공
최악의 고비를 넘긴 두산은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한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석탄 화력발전 비율을 낮추는 대신 수소와 해상 풍력, 가스터빈, 차세대 원전 등 4대 성장 사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바꿔 가고 있다. 최근 가장 공을 들이는 사업은 수소 분야다.

두산은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팀(TFT)을 신설해 두산중공업의 수소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두산중공업과 두산퓨얼셀 등 계열사 전문 인력을 모아 (주)두산 지주 부문에 수소TFT를 구성했다.

두산중공업은 풍력 발전을 활용한 그린 수소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제주 ‘그린 수소 실증 사업’에 참여한 가운데 제주에너지공사가 보유한 풍력 단지에서 그린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은 이곳에 수소 생산 시스템과 생산된 수소를 압축 저장하는 시스템도 구축한다.

두산중공업은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 모듈 원전(SMR)’을 활용한 청정 수소 생산도 검토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자력 발전을 활용해 그린 수소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은 수소 가스 터빈 개발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수소 가스 터빈은 수소만 사용하거나 수소와 천연가스를 혼합한 연료를 사용한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5월부터 5MW급 수소 가스 터빈용 수소 전소 연소기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고 있다.

두산 계열사들은 수소와 연관된 새로운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인산형 수소 연료 전지(PAFC)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최근 영국 세레스파워와 손잡고 고체 산화물 연료 전지(SOFC) 기술도 개발 중이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은 수소 모빌리티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DMI는 비행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수소 드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양산에 돌입했다. 응급 물품 배송, 가스 배관 모니터링, 산림 감시 등의 관제, 해상 인명 구조 등에 활용 가능한 드론이다.
(사진)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수소 드론이 인명 구조 비행을 시연하고 있다. /두산그룹 제공
(사진)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수소 드론이 인명 구조 비행을 시연하고 있다. /두산그룹 제공
수소·해상 풍력 등 미래 먹거리 확보에 총력

두산중공업은 해상 풍력 사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한국전력기술과 100MW 규모의 제주한림해상풍력 기자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전력기술에 5.56MW급 해상 풍력 발전기 18기를 공급할 예정이다. 계약 금액은 약 1900억원 규모다.

제주한림해상풍력단지는 제주시 북서부 한림항 인근 해상에 조성된다. 2024년 4월 준공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이 공급하는 해상 풍력 발전기는 블레이드 길이만 68m에 이르는 대형 제품이다. 최대 초속 70m의 강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다. 두산중공업은 올 초 창원 본사에 풍력 2공장을 준공하는 등 해상 풍력 수주 물량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SMR 사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2019년 한국 투자사들과 함께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4400만 달러의 지분 투자를 진행한 데 이어 최근 한국 투자사들과 추가로 6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은 기존에 확보한 공급 물량과 이번 투자를 통해 확보하게 된 물량 등 SMR 기자재 공급 물량을 수 조원 규모로 확대하게 됐다. 또한 SMR을 활용한 수소 및 담수 생산 분야까지 양사의 협력을 넓혀 가기로 했다.

두산중공업과 뉴스케일파워가 협력하는 첫째 프로젝트는 미국 발전 사업자 UAMPS(Utah Associated Municipal Power Systems)가 아이다호주에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난해 10월 14억 달러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UAMPS는 2023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SMR 건설·운영 허가를 신청해 2025년까지 허가를 취득하고 2029년 상업 운전하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케일파워의 SMR은 1기당 77MW의 원자로 모듈을 최대 12대 설치해 총 924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SMR 초도 호기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북미를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등의 SMR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은 2019년 뉴스케일파워에서 원자로 모듈에 대한 제작성 검토 용역을 수주해 지난 1월 완료한 이후 시제품을 제작 중이다. 내년부터 UAMPS 사업 원자로 모듈용 대형 주단 소재 제작에 착수할 계획이다.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은 “두산중공업과 뉴스케일파워는 이번 추가 투자를 통해 전략적 협력 관계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게 됐다”며 “뉴스케일파워에서 확보한 SMR 기자재 공급 물량이 한국 협력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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