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자는 보호받는 동물이지만, 과거에는 사자 사냥이 역사상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사자 사냥은 자연에 대한 투쟁이자 숭배이며, 권력의 과시이고, 원초적 힘을 향한 매혹인 한편 악을 퇴치하는 신성한 싸움이기도 했다.
사자를 사냥하는 아슈르바니팔, 신아시리아 니네베 왕궁 부조, 기원전 645~635, 런던 대영박물관
사자를 사냥하는 아슈르바니팔, 신아시리아 니네베 왕궁 부조, 기원전 645~635, 런던 대영박물관
왕의 사자 사냥
사자는 맹수의 제왕으로 불리는 만큼 고대부터 통치자들이 최고 권력의 상징으로 삼았다. 고대의 유물에서 사자를 양 옆에 거느린 인물이나, 얼굴은 사람인데 몸이 사자인 형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 메소포타미아의 라마수가 그 예다. 사자와 같은 힘과 위엄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강력한 통치자의 자격이 있고, 마땅히 숭배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사자는 백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다. 왕은 사자를 물리쳐 백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주기적으로 사자 사냥이 이뤄졌고 사자를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가 왕의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이를테면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비석에 “내가 큰 사자 370마리를 사냥창으로 죽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사자가 번성해 골칫거리였다고 하지만, 왕이 죽였다는 그 많은 사자의 숫자가 순수하게 자연 상태에서 사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자 사냥은 야외뿐 아니라 경기장에서도 이뤄져, 잔혹한 스포츠가 됐다. 사냥은 체력을 단련하고 병기를 다루는 일종의 전쟁 연습이었다. 나아가 왕이 직접 나서는 사자 사냥은 정치적·제의적 성격을 띤 공식 행사였다.

아시리아는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 시대에 정치,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수도 니네베의 왕궁에는 왕의 존재와 역할, 전쟁, 사냥 등을 묘사한 부조가 벽면에 가득 설치돼 있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그 부조에서 사자 사냥 장면은 공간 활용과 실감 나는 묘사가 매우 우수한 작품이다.

기서는 마차를 탄 사람들이 주변에서 날뛰는 사자들을 물리치고 있다. 암수 사자 여러 마리가 이미 화살을 맞아 쓰러졌고, 아직 힘이 남은 숫사자가 뒤에서 공격하는 것을 두 사람이 물리치고 있다. 마차 위 제일 크고 당당해 보이는 사람이 바로 아슈르바니팔 왕이다. 그는 뒤쪽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아랑곳없이 전진하며 다른 사자를 향해 힘껏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왕이 사냥할 때면 신하들이 먼저 사자를 괴롭혀 지치게 한 다음 왕에게 몰아가서 왕이 사자의 심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도록 했다. 오직 왕만이 생명을 끊을 권리를 가졌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냥이 끝나면 왕은 죽은 사자를 모아놓고 제사를 지냈다. 자연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력이 왕에게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피터 파울 루벤스, 사자 사냥, 1621년경, 뮌헨 알테피나코테크
피터 파울 루벤스, 사자 사냥, 1621년경, 뮌헨 알테피나코테크
루벤스가 그린 <사자 사냥>
고대 이후 ‘사자 사냥’ 테마는 예술 작품에서 계승돼 근대까지 자주 다뤄졌다. 17세기 국제적 화가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년)는 원숙기에 몇 년 동안 사냥 주제에 집중해 특유의 역동적인 회화 양식을 확립했다. 1621년 작품 <사자 사냥>은 격렬한 동작과 선명한 색채로 바로크 회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림은 건장한 남자들이 숫사자, 암사자와 뒤엉켜 싸우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모두 창이나 칼을 들었고, 일부는 말을 타거나 갑옷을 입고 있어 전쟁을 방불케 한다. 중앙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이 백마에서 거꾸로 추락하고 있다. 그는 긴 창을 치켜들어 막아보려 하지만, 사자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공포에 질려 있다.

왼쪽 뒤에서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사자의 등에 창을 내리꽂고 있는데 그를 태운 말은 벌써 엉덩이를 보이며 도망친다. 그 옆에는 검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인물이 말 위에서 칼로 사자를 내리치려 한다. 오른쪽 뒤에서도 검은 말을 탄 사람이 사자의 목을 향해 긴 창을 겨눈다. 바닥에는 파란 옷을 입은 남자가 죽은 듯 쓰러져 있고, 왼쪽에는 암사자에게 저항하는 사람과, 칼과 방패를 들고 그를 도우려는 남자가 보인다.

루벤스는 백마와 추락하는 남자를 흰색으로 중앙에 비스듬히 배치하고 황금빛 사자를 결합해 구성의 중심을 형성했다. 그 양쪽에 빨강과 파랑의 선명한 색채를 대각선으로 배치해 균형을 맞췄다. 인물과 동물의 과격한 움직임이 여러 방향으로 굽이치는 곡선들을 형성하는데, 중앙의 사자를 향해 집중되는 창의 긴 직선들이 무절제한 움직임을 제어하며 본연의 주제를 강조한다. 이 모든 구성 요소는 꼭대기의 검은 갑옷을 입은 인물로 수렴해 정점에 달한다. 잔인한 장면을 미의 경지로 끌어올린 탁월한 회화적 처리가 아닐 수 없다.

형식의 미가 돋보이는 <사자 사냥>에서 루벤스가 전하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유럽에서 사냥은 본래 토지를 소유한 귀족의 스포츠로서 사회적 지위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 등장인물들은 다수가 터번을 착용하고 있어 아프리카나 동방을 연상시킨다. 야수가 사는 땅은 본능적·원초적 힘이 충만한 곳이다. 유럽인들에게 그 낯선 지역은 호기심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의 땅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문명으로써 개화시켜야 할 야만적인 장소였다.

그림 속 검은 갑옷을 입은 남자를 보자. 그는 혼란 속에서도 가장 자세가 바르고 제일 중요한 위치에서 유일하게 정면을 향하고 있다. 로마 군인 같은 완벽한 무장과 깃털 달린 투구, 붉은 망토로 보아 신분 높은 지휘자임을 알 수 있다. 그가 휘두르는 검이 결국 사자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사자를 죽이는 자, 그는 과연 누구일까.

말 탄 기사의 모습으로 야수를 무찌른 자라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연결된다. 그는 소아시아의 로마 군인이었지만 기독교를 믿고 순교했다. 전설에 의하면 게오르기우스는 흑해 연안에서 괴물인 용을 퇴치해 공주를 구하고 대중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영웅 게오르기우스는 신의 전사로 여겨지며 기독교의 큰 성인으로 숭상받게 된다.

오늘날 그는 잉글랜드, 조지아, 카탈로니아, 러시아, 에티오피아 등 수많은 국가와 도시의 수호성인이다. 그만큼 게오르기우스는 미술 작품에도 자주 그려져 대개 거대한 용을 물리치는 백마 탄 기사로 등장한다. 루벤스도 성 게오르기우스를 그렸는데 인상, 복장, 자세, 말의 위치까지도 <사자 사냥>의 검은 갑옷을 입은 남자와 거의 같다. 사자를 죽일 특권을 가진 남자는 신앙의 수호자요, 용맹한 전사이자 정의로운 기사인 게오르기우스 성인과 동일시된다.

루벤스는 ‘사자 사냥’을 폭넓은 의미를 지닌 기념비적 주제로 격상시켰다. 아시리아의 부조처럼 루벤스의 <사자 사냥>도 전쟁의 축소판이며 지휘자의 특권을 암시한다. 그런데 루벤스의 그림에서 전쟁은 성 게오르기우스가 그랬듯이 선하고 정의롭고 불가피하며 신성한 싸움으로 정당화된다. 아마 이것이 당시 많은 전쟁과 정복에 앞장섰던 유럽의 군주들이 원하는 이미지였을 것이다. 외교관으로서 각국 군주들의 역사에 동참한 루벤스는 그들의 전쟁과 자신의 활동이 진정한 평화를 위해 정당한 것이기를 바라며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