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원 회사채 발행에 2090억원 몰려 ‘흥행 성공’

[마켓 인사이트]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에서 원유운반선이 제작되고 있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에서 원유운반선이 제작되고 있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현대삼호중공업이 6년 만에 공모 회사채 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글로벌 경쟁력과 현대중공업그룹이라는 든든한 후광에 힘입어 ‘BBB급’ 기업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이끌어 냈다.

또한 살아난 신규 수주와 매출 회복세에 힘입어 줄곧 내리막이었던 신용 등급도 상향 조정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 신용도의 발목을 잡고 있던 것은 절대적으로 낮은 수익성이었다. 하지만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현금 창출 능력을 키우고 수주 잔액의 질적 개선을 달성하면 상향 조정될 것이란 의견이 많다.
현대삼호중공업의 LNG선. 출처: 현대삼호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의 LNG선. 출처: 현대삼호중공업
6년 만에 공모채 발행 ‘대성공’

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7월 공모 회사채 시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2015년 이후 6년 만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은 ‘BBB급’ 조선사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인식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그동안 필요한 자금을 사모 회사채 시장에서 조달해 왔다.

하지만 조선 업황이 개선되고 있고 사업·재무 구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공모 회사채 시장에 복귀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현대삼호중공업이 당초 발행할 회사채 규모는 500억원이었다. 그런데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사전 청약)을 진행해 보니 2090억원이 몰렸다. 투자 경쟁률이 4 대 1에 달했다. 결국 기관투자가의 투자 수요를 감안해 회사채 발행 규모를 당초 500억원의 두배인 1000억원으로 늘렸다.

‘BBB급’ 회사채를 주로 담는 하이일드펀드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대하는 보험사와 자산 운용사도 현대삼호중공업의 회사채를 사기 위해 달려들었다. 투자 수요가 폭발하자 회사채 발행 금리는 현대삼호중공업의 신용 등급과 동일한 기업과 비교해 1%포인트 이상 낮게 책정됐다. 회사로서는 장기 자금을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에 조달하게 된 셈이다.
회사채 흥행 성공의 배경은 현대삼호중공업의 신규 수주가 당분간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덕이다. 최근 한국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한 친환경 선박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 확대와 비대면 소비 증가로 컨테이너 운임도 급등하고 있다. 우호적인 수주 상황이 조성되면서 현대삼호중공업의 영업 실적 역시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또한 현대삼호중공업의 모호한 신용 등급도 기관투자가를 유인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한국 신용 평가사들은 현대삼호중공업의 신용 등급을 각각 다르게 부여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 ‘A-’, 한국신용평가 ‘BBB+’, 한국기업평가 ‘BBB+’ 등이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의 신용 등급에 한 단계 차이가 있다.

신용 평가사의 신용 등급이 다를 때는 낮은 등급이 채권 시장에서 유효하게 활용된다. 이에 따라 현대삼호중공업은 ‘BBB급’ 기업으로 여겨지지만 ‘A-’ 평가도 있어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투자 의지가 나타난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또 실적 향상에 따라 나이스신용평가처럼 다른 신용 평가사도 신용 등급을 상향 조정할 것으로 보는 기관투자가들도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신용 평가사는 높은 신용 등급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현대삼호중공업의 신용 등급도 중·단기적으로 ‘A’급으로 수렴할 것”이라며 “회사채를 사들인 후 신용 등급이 오르면 그만큼 투자 이익이 커져 기관투자가들이 이번 수요 예측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친환경 선박 프로젝트에 투입할 계획이다. 또 국제자본시장협회에서 제정한 녹색 채권으로 인정받은 만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와 시장의 긍정적 평판 확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는 평가도 있다.
6년 만에 공모채 시장 화려한 복귀…‘BBB급 저력’ 보여준 현대삼호중공업
신용도 회복의 걸림돌 ‘낮은 영업 수익성’

현대삼호중공업은 1977년 인천조선소로 출발했다. 2002년 현대중공업 계열에 편입됐고 수주 잔액 기준 글로벌 4위권의 대형 조선사다. 초대형선 제작에 강점이 있고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사업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올해 3월 기준 지분 80.5%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중공업그룹의 핵심 조선사로 분류된다. 원자재 공동 구매와 선박 공동 설계 및 영업 등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단, 현대삼호중공업의 실적과 신용도의 역사가 굴곡 없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 탱커선·컨테이너선·LNG선 등 일반 상선 건조에 주력하고 있지만 2010년대 초반에는 반잠수식 시추 설비와 부유식 원유 생산 설비 등 해양 플랜트 분야로 수주 영역을 확대한 바 있다.

이 같은 해양 플랜트 프로젝트는 부족한 생산 경험에 원가 상승까지 겹쳐 2014~2015년 현대삼호중공업에 대규모 손실을 가져 왔다. 2014년 영업 적자 규모는 5022억원, 2015년에는 3500억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선 업황 침체로 신규 수주도 계속 줄었다. 2017년 기준 수주 잔액은 3조50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한 때 ‘AA-’까지 올랐던 현대삼호중공업의 신용 등급은 줄곧 하락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탱커선과 LNG선 등의 수주가 늘면서 2018~2020년 평균 40억 달러(약 4조5200억원) 안팎의 신규 수주를 달성했다.

올해 3월을 기준으로 현대삼호중공업의 수주 잔액은 8조1000억원 규모로 회복됐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산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등이 맞물린 결과다.

올해 상반기에는 물동량 증가와 해상 운임 상승으로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수주 흐름이 좋아졌다. 올해 1분기 현대삼호중공업의 신규 수주는 12억 달러(약 1조3700억원)에 달했다.

조선업 특성상 매출 인식은 신규 수주 후 2~3년 후에 이뤄진다. 이에 따라 현대삼호중공업의 올해와 내년 매출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수주 잔액을 기반으로 4조원 안팎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2020년 확보한 수주 잔액에 따른 매출이다.

재무 안정성도 나쁘지 않다. 올해 3월 현대삼호중공업의 조정 부채 비율은 113%다. 조정 순차입금 의존도는 25%다. 2016년 유형 자산 재평가, 2017년 상장 전 투자 유치(pre-IPO)를 통해 자본 확충이 이뤄지면서 재무 안정성이 좋아졌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2018년 투자 부문을 인적 분할하면서 자산·자본이 줄고 매출이 늘면서 운전 자금 부담이 커져 차입금이 증가했지만 재무 안정성 자체는 우수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영업 수익성은 현대삼호중공업의 고민거리다. 수주 잔액 회복에 따라 2019년 이후 매출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절대적인 영업 수익성은 낮은 편이다.

2017~2018년 수주 잔액 감소에 따른 매출 축소로 고정비 부담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바닥을 쳤다. 2018년 매출 대비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은 마이너스 8.7%다. 2019년부터 점차 영업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지만 지난해 매출 대비 EBIT가 0.4%, 올해 1분기에는 1.5%를 기록해 절대적 수준은 여전히 낮다.

올해 들어 주요 원재료인 강재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데다 신조선가 상승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어 영업이익률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광훈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수익성 개선 폭이 미미하다 보니 환율 변동과 공사 손실 충당 부채 설정 여부에 따라 분기 손익이 등락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수익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