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을 막론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흐름을 거스르는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같은 디지털 트렌드 속에서 전통적인 경매 문화에도 새바람이 부는 모습이다. 최근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문제적 분야’로 주목받고 있는 미술품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 토큰)부터 음악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하는 음원 저작권 경매 플랫폼까지. 디지털이 몰고 온 새로운 경매 트렌드를 알아본다.

[빅스토리]경매 문화에도 새 바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자, 3억5000만 원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없으시면 마무리합니다. 현장 32번 고객께 3억5000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국내 주요 미술품 경매 회사의 정기 경매 현장. 긴장감 어린 눈길로 경매사가 든 망치를 바라보던 컬렉터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수많은 경매 물건 가운데 자신의 눈에 띈 ‘숨은 보석’을 낚아채려는 컬렉터들의 열기가 뜨겁다. TV 드라마나 유튜브를 통해 하는 오프라인 미술품 경매의 진풍경이다.

여느 투자 분야 못지않게 치열한 현장이지만, 미술품 경매에 심리적 장벽을 갖고 있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거리감이 큰 게 사실이다. 미술품 경매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에 부동산 등 저마다 고유의 문화를 형성한 경매 분야가 존재하고 있지만, 소액 투자를 희망하는 일반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관련 분야에 정통하지 않은 일반 대중이 소액으로 가볍게 참여하기에는 낙찰액 수준이 높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이다. 경매 참여 방식이 복잡하고 전문적일 것 같다는 편견 또한 이런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디지털로 가볍게…달라지는 미술 경매
[빅스토리]경매 문화에도 새 바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얼마 전부터 경매를 대하는 대중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미술품 시장에서는 온라인 경매가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며 일반 투자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경매 시장은 2018년 상반기 105억 원에서 지난해 상반기 123억 원 규모로 17.1% 성장했다. 최근에는 젊은 투자자들이 시장에 대거 유입되는 현상까지 더해지며 전체 미술품 경매 시장이 리프레시되고 있다는 게 미술계 전문가들의 평이다.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도 온라인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 기업 UBS가 내놓은 ‘미술 시장 2021(The Art Market 2021)’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온라인 미술품 판매액은 124억 달러로, 2019년 60억 달러를 기록했던 데 비해 106.7% 늘었다.

같은 기간 온·오프라인 미술 시장의 규모(501억 달러)가 전년(644억 달러) 대비 22.2% 줄어들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미술 트렌드의 무게중심이 디지털과 온라인 쪽으로 일부 옮겨간 것으로 해석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오프라인 시장이 다소 위축된 상황 속에서 디지털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시장이 조명받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경매 트렌드가 있다. 바로 NFT 기반의 디지털 아트다. NFT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등기부등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개별 디지털 파일에 고유의 인식번호를 붙여,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증해준다. 디지털 파일 원본을 훼손하거나 위조할 수 없고, 온라인상에서 파일 복제가 무한대로 일어난다고 해도 단 하나의 오리지널 파일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가 없어 투자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낮았던 디지털 아트의 맹점을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 보완해주는 셈이다.

NFT 기반 디지털 아트는 수백년에 걸쳐 기반을 다진 미술품 경매 시장에 전례 없이 등장한 이단아에 가깝다. 최근 NFT 미술품 경매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데에는 지난 3월 한 미국 작가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은 디지털 아트 <매일: 첫 5000일>의 역할이 컸다.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이 ‘비플’이라는 가명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그가 2007년부터 만든 작품 5000개를 붙여 제작한 NFT 디지털 아트다. 최종 낙찰액이 무려 6934만 달러에 달해 디지털 아트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런 흐름을 타고 국내외 경매 회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 2대 경매 회사인 소더비는 최근 NFT 디지털 아트 시장 진출 계획을 밝힌 데 이어, 디지털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구성한 NFT 경매를 열었다.

국내 최대 메이저 경매 회사인 서울옥션도 관계사인 서울옥션블루와 함께 디지털 자산 분야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옥션블루가 디지털 자산 관련 기술 개발을 맡고 서울옥션은 아티스트 발굴을 진행하는 식으로 새로워진 미술 시장 트렌드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서울옥션블루 관계자는 “NFT 예술품은 유일무이한 자산이며 위변조가 불가능해 거래 내역을 추적할 수 있고, 제3자 검증 없이도 진위 확인이 가능하다”며 “작품에 희소성과 유일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미술 시장에서 그 영향력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국내 메이저 경매 회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NFT 관련 사업 준비에 나섰다는 것은 이 시장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신하고 있는 것”이라며 “시장 진입 초기에 뛰어들어 안정적인 포지션을 취하게 되면, 향후 펼쳐질 NFT 시장에서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과도기 걷는 NFT 시장, 어떻게 접근할까
세계적 미술품 경매 장터인 크리스티 경매에서 지난 3월 6934만 달러(약 780억 원)에 팔린 <매일 : 첫 5000일>. 블록체인 기반의  NFT가 적용된 디지털 아트다.
세계적 미술품 경매 장터인 크리스티 경매에서 지난 3월 6934만 달러(약 780억 원)에 팔린 <매일 : 첫 5000일>. 블록체인 기반의 NFT가 적용된 디지털 아트다.
물론 아직 초창기 시장인 만큼 NFT 미술품을 둘러싼 혼란도 적지 않다. 우선 NFT 디지털 아트에 아무리 고유의 인식값을 부여한다고 해도 이를 희소성 높은 ‘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짙다. 통상 예술 작품의 희소성이 높을수록 투자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데, NFT 디지털 세상에서의 무한 복제까지 막아주는 기술은 아니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미술품 NFT가 블록체인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건 맞지만, 현재 형성되는 가격을 보면 거품이 지나치다”면서 “특정 디지털 아트의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입증할 수는 있지만, 불법 복제는 가능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희소성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NFT 미술품을 낙찰받았다고 해도 해당 작품의 모든 저작권을 소유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김승주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NFT 미술품을 한 번 구매하면 마치 그 작품의 모든 권리를 산 것처럼 오해한다”면서 “작품 원본의 저작권과 2~3차 저작권은 또 각각 다른 문제라, 해당 작품을 경매로 낙찰받았을 때 어느 정도 수준까지 권리를 보장해주는지는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NFT 미술품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국내에서도 있었다. 국내 한 디지털 아트 플랫폼이 한국 미술계 거장 3인의 작품을 NFT 방식으로 발행해 경매를 추진하려다가 저작권 침해 논란으로 중단한 사례다. 국내법상 저작권 보호 기간은 70년으로, 작품의 소유권을 갖고 있어도 원본 작품을 가공·복제해 판매하려면 별도의 권리를 양도받아야 한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디지털 세상에서 가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대상으로 NFT 거래가 진행된다면 덜 헷갈릴 텐데, 오프라인에서 거래됐던 실물 작품의 이미지를 활용해 2차적으로 NFT 거래를 한다고 하니까 더욱 혼선이 빚어지는 것”이라며 “특히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NFT로 만들 경우, 해당 작가의 이름을 그대로 내세우기보다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은 NFT라는 콘셉트로 접근해야 혼란이 적다”고 조언했다.

NFT 미술품을 일반적인 순수미술과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NFT는 어디까지나 미술을 매개로 하는 금융상품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단 NFT 미술품을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리세일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형성할 수 있어야 투자자산으로서 가치가 생긴다. 한국 시장에서 NFT 미술품을 낙찰받았다고 해도, 해당 NFT가 글로벌 마켓에서 온전한 매매 수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김 대표는 “NFT 미술품 시장에 어떻게 적응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라면서 “물론 NFT가 미술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충분히 있는 상황이다. 다만 NFT 시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방법에 대해서는 좀 더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와 재미를 동시에, 뮤직테크 즐기는 법

미술 시장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NFT 경매라면, 음악 시장에서는 저작권을 투자자산으로 활용하는 ‘음악 저작권 경매’가 화제다. 좋아하는 음악의 저작권 일부를 경매를 통해 낙찰받고, 이를 주식처럼 사고팔 수도 있다. 대체 투자처를 찾는 MZ(밀레니얼+Z) 세대 사이에서 주목받는 플랫폼으로, 가수의 활동을 응원한다는 의미가 담긴 일종의 ‘덕질테크’다.

뮤직카우는 저작권자와 리스너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통해 창작과 소비의 선순환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투자 가치가 높은 음원을 선별해 저작권 지분의 일부를 뮤직카우가 사들인 뒤 이를 잘개 쪼개 경매를 진행하게 되는데, 경매가 끝나면 최종 수익금의 50%를 창작자들에게 배분해주는 식으로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

투자자는 자신이 사들인 저작권 지분에 따른 저작권료 수익을 매월 연금처럼 받을 수 있다. 특히 저작권 보호 기간 동안 경매 시작가 대비 연 8%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게 뮤직카우 측의 설명이다.

김경숙 상명대 지적재산권학과 교수는 “최근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저작권 관련 사업 중 하나”라면서 “창작자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음악 저작권을 유통할 수 있는 창구가 추가로 생겼다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사업이다. 저작권을 잘 유통해서 수익이 발생하고, 이를 창작자와 경매 참여자가 제대로 나눈다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플랫폼을 통해 저작권 지분을 낙찰받았다고 할지라도, 저작권법상의 모든 권리를 구매했다고 오해하는 것은 금물이다. 보유한 지분율에 따라 저작권료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벗어난 권리를 실제 저작권자와 동일하게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산받을 저작권료 수익에 대한 ‘청구권’을 보유한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김경숙 교수는 “주택을 구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집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가 돼 있어야 한다. 음악 저작권도 마찬가지다”라면서 “만약 투자자가 실지분권을 행사하려면 공동 저작자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는데, (뮤직카우 사업모델의 경우) 채권적 권리를 주는 형태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