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이날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며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상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규정했으며, 오는 9월 가상화폐거래소가 대거 폐쇄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을 '잘못된 길',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규정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가상자산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용자 권리구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상자산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을 단순히 '잘못된 길'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투기를 억제함과 동시에 이용자 피해 방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입법조사처(처장 김만흠)는 1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가상자산 관련 투기 억제 및 범죄 피해자 보호 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지난달 14일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당일 비트코인 가격이 8100만원 대를 넘어섰고, 이에 따라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됐다.

그러나 관련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면서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개입 여부를 고민하며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 투기 열풍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우려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2017년 이후 거래소 해킹 및 시세조종 등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 및 소관 부처, 정책 방향, 과세 방안,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 확립, 피해자 보호 방안 등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 국내 규제 및 각 부처의 입장은?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등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을 고려해 지난해 3월 24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을 개정했다.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증표'로 정의하고 금융회사의 확인의무, 거래거절·종료의무 등과 가상자산사업자의 보고의무 이행 등을 위한 고객별 거래내역 구분관리 조치, 신고의무 등을 규정한 것.

그러나 개정은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둔 것으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 거래 안정화와 거래 활성화를 위한 법률은 미비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의 기존 인식은 가상자산을 화폐, 통화나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내 핀테크 현황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자산을 포함시킨 바 있다. 또 국내 가상자산 정책은 투기과열을 진정시키고, 관련 금융거래 투명성을 제고하고, 불법행위를 차단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정리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가상자산이 "화폐, 전자지급수단, 금융투자상품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으며, 유형적인 실체 없이 전자적 정보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독립적인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상품(디지털 형태의 상품)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비트코인에 대해 "경제적인 가치를 디지털로 표상해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 및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가상화폐의 일종"이라고 하면서,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인 비트코인도 몰수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 해외 주요국은 어떻게 보고 있나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과거 암호자산이 법정화폐가 되기 어렵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가상자산에 대해 금융자산 또는 지급수단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주요국에서 발견되고 있다.

미국은 가상자산을 증권 또는 상품 등의 관점에서 각기 다른 규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연방차원에서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가상자산이 증권의 정의를 충족할 경우 증권 감독 규율을 적용하며, 교환의 매체로 기능할 경우 은행비밀보호법을 통해 법정화폐와 유사한 규제대상으로 취급한다.

일본은 2019년 금융상품거래법과 자금결제법의 개정을 통해 암호자산을 금융상품의 범위에 포함시켰고, 암호자산교환업자 및 관리업자에게 이용자 보호의무를 부과한 바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은행법 제1조제11항제1문에서 암호화폐가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규정했으며, 연방금융감독청의 지침을 통해 암호화폐 수탁업을 새로운 금융서비스로 규제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이 같은 사례들을 살펴보았을 때, 가상자산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을 단순히 '잘못된 길'로 치부할 것은 아니며, 규제 공백 상태 하의 무분별한 투기를 억제함과 아울러 이용자 피해 방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컨트롤타워 구축, 충분한 정보 제공, 피해자 보호 방안 등 필요"

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 정책에 대해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가 아닌 부처 간 조율의 체계화를 위한 정부 컨트롤타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가상자산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된 2017년 이래, 그동안 정부는 금융위원회 등 10개 부처가 협의체 형태로 공동참여하면서 국무조정실이 협의체를 주재하는 방식으로 현안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에 관한 정부의 공식입장이 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용하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으로 인해, 가상자산 거래의 정보 투명성 확보, 거래피해 방지 및 구제방안 등에 관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과 관련한 정책과 제도 설계는, 이를 혁신산업의 하나로 장려·발전시키고자 하는 진흥에 초점을 둘 것인지, 과도한 투기와 피해자 보호를 막기 위한 규제에 방점을 둘 것인지, 양자를 어떻게 적절히 혼재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결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입법조사처는 "특히, 가상자산의 거래는 자금세탁 방지, 개인정보보호, 과세,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제약 등 여러 부처의 소관 업무가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해 규제보호·대상 및 그 내용을 명확히 시장에 제시하기 위해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가 아닌 부처 간 조율의 체계화를 위한 정부 컨트롤타워의 구축 또는 주무부처의 지정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입법조사처는 무분별한 가상자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상자산 이용자들에게 가상자산과 관련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적 지위가 불분명하고 관련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상자산의 성격과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한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입법조사처는 현재의 가상자산은 발행인의 부재, 발행인 신용과의 무관련성, 상환의무의 부재 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현행법상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가상자산의 기술적 특성을 반영해 정의를 새롭게 규정하고, 기능 및 용도(증권형, 지급결제형 등)에 따라 이용자의 권리·의무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밖에 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에 대한 범죄 피해자 보호 방안 등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시세조종행위 금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금지,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 기재 등 부정거래행위 금지, 시장질서 교란행위 금지 등에 대한 법을 도입해야 된다는 설명이다.

이수환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입법조사관은 "가상자산 규제를 입법화 할 경우 새로운 단일법을 통해 별도로 규제하는 방안과 기존의 법률 개정을 통해 규제하는 방안이 있다"면서 "단일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은 가상자산 시장을 통일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시장 참가자와 규제 당국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방법으로 규제를 입법화하든 현행 법률과의 충돌이 없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며, 무분별한 투기를 막고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입법목적이 충실히 담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세일보 / 이현재 기자 rozzhj@joseilbo.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