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한 달 만에 폐업한 후 보증금 못 받아 문 잠근 채 점유
대법 “관리비는 임대인 몫”

[법알못 판례 읽기]
보증금 못 받아 점유한 상가…관리비는 누구 책임일까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갈등 중 하나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이다. 그렇다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임차인이 점유한 상가의 관리비는 누가 부담해야 할까. 대법원에서는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임대인 A 씨(A사)와 임차인 B 씨는 2016년 10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748만원의 상가에 대해 임대차 계약을 했다. 당시 계약 기간은 2016년 12월부터 3년까지였다. 실제 입주는 그보다 훨씬 늦어졌다. B 씨는 다음 해 1월부터 식당을 개업하기 위한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갔고 건물도 4월 12일부터 사용 승인이 났다. B 씨는 4월 20일부터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가피한 이유로 개업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5월 22일 식당을 닫았다.

그 과정에서 B 씨는 A 씨에게 월세를 내지 않았다. A 씨는 “B 씨가 4월 1일부터 월세를 내기로 했으나 7월 말까지 약 4개월분의 월세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B 씨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한다는 소송을 냈다. 임대차 계약을 해지한다는 소장은 7월 31일 전달됐지만 B 씨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며 상가의 문을 잠근 채 점유했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소송전이 시작된 것이다.
1심 “상가, 임대인에게 돌려줘”
1심은 임대인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B 씨가 A 씨에게 밀린 월세 2500여 만원을 지급하고 상가 역시 넘겨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에게 월세 지급의 의무가 있으나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의 임대차 계약 해지 의사 표시가 담긴 소장이 2017년 7월 31일 피고에게 송달됨으로써 임대차 계약은 적법하게 해지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4월 1일부터 월세를 지급하겠다는 계약은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영업을 시작한 4월 20일부터 임대차 계약이 종료된 7월 31일까지 3개월분의 월세를 지급하라”고 원고의 주장을 일부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A 씨는 B 씨가 상가를 점유하던 기간에도 월세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증금 반환’으로 새로운 국면 맞은 2심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은 1심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갔다. 1심 판결로 A 씨는 2018년 10월 상가를 인도받았지만 B 씨는 이 과정에서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했다. B 씨는 보증금을 반환하라며 반소를 제기했고 A 씨는 B 씨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 이후 상가를 넘겨줄 때까지의 월세와 관리비, 원상 회복 비용 등을 추가로 청구하며 맞불을 놓았다. 반소는 민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을 의미한다. 보통 피고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으로, 본소송의 절차에 병합해 진행된다.

항소심은 B 씨가 계약 해지 이후 상가를 넘겨줄 때까지의 월세나 건물의 원상 회복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에게 임대차 보증금 반환의 의무를 이행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 피고가 주장한 동시이행항변권이 인정된다”며 “피고의 불법 점유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동시이행항변권은 쌍방으로 채무를 가진 관계에서 한쪽이 채무를 갚지 않을 경우 다른 한쪽도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다. A 씨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B 씨가 상가를 돌려주지 않아도 불법 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B 씨가 연체 관리비를 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2017년 4월 21일부터 다른 업체에 건물 전체의 관리 업무를 위탁했다”며 “상가를 넘겨받은 2018년 10월까지 이 상가에 대한 관리비 1800여 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B 씨가 상가를 점유하던 중 이틀 동안 한국조리사협회 대전시지회의 행사를 열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에 대한 공간 사용료 40여 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덧붙였다. 항소심은 A 씨가 B 씨에게 지급할 보증금 가운데 월세와 연체 관리비를 제외하고 전달하라고 판결했다.
대법 “연체 관리비 낼 필요 없어”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대부분 유지했다. 하지만 B 씨가 건물의 연체 관리비를 내야 한다는 항소심의 판결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임차인의 관리비 지급 의무 범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1800여 만원으로 산정한 연체 관리비와 지연 손해금을 다시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파기의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관리비 변제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원심 법원으로 환송했다. 그러면서 임대차 계약이 유지됐던 2017년 4월 21일부터 7월 31일까지의 관리비와 이후 B 씨가 한국조리사협회에 장소를 대여한 이틀을 제외한 모든 연체 관리비를 파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돋보기] “개정법 시행 이전에 계약 기간 5년 채웠으면 적용 못 받아”
대법원은 2020년 ‘최초 임대차 계약 당시 법으로 보장된 5년의 임대 기간이 개정법 적용 이전에 끝났다면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대 보증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 이후 내놓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임차인 A 씨는 2012년 7월 임대인 B 씨로부터 경북 의성군의 한 상가 건물을 임대했다. A 씨와 B 씨는 2014년 7월 임대료를 올리고 임대차 기간을 2019년 7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계약이 만료되기 3개월 전인 2019년 4월 B 씨는 A 씨에게 계약을 갱신할 뜻이 없다고 알렸다. 그런데 2018년 10월부터 임대 보증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임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A 씨는 이를 바탕으로 계속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겠다며 계약 갱신을 요구했다.

이는 개정 상임법의 표현이 명확하지 않아 벌어진 문제다. 개정 상임법 10조 2항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 기간을 포함해 전체 임대차 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부칙을 통해 개정법 시행일(2018년 10월 16일) 이후 ‘최초로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임대차’부터 해당 조항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조항에 나온 개정법 적용 대상은 ‘갱신되는 임대차’라고 쓰여 있을 뿐 기간을 특정하고 있지 않다.

1심은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임차인 A 씨가 계약 갱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리는 항소심에서 바로 뒤집히고 말았다. 2심 재판부는 B 씨가 계약 갱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최초 계약이 보장하는 5년의 임대차 보장 기간이 이미 2017년에 끝났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개정 상임법의 ‘갱신되는 임대차’라는 문구에 대해 개정법 시행 당시 임대차 보장 기간이 5년을 넘지 않아 옛날 법에 의하더라도 임차인이 기간 만료 전에 갱신 요구를 할 수 있는 경우로 축소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차인뿐만 아니라 임대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항소심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개정법 시행 이전에 체결된 임대차에 대해서도 10년의 보장 기간을 적용하는 것은 임대인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며 “(1심의 판결은) 임대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A 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B 씨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