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코인 투기 광풍, 케인스라면 '더 큰 바보 이론'으로 설명했을 거예요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은 주인공은 ‘비트코인’이 아니라 ‘도지코인’(사진)이다. 이달 초만 해도 한 개에 60원 안팎이던 도지코인 값은 13일 125원, 16일 540원, 19일 575원으로 치솟았다. 한국 투자자들이 하루 동안 사고판 도지코인 규모가 최대 17조원을 기록해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을 추월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도지코인은 2013년 소프트웨어 개발자 빌리 마커스와 잭슨 팔머가 장난 삼아 만든 암호화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에 도지코인을 찬양하는 글을 계속 올려 유명해졌을 뿐, 이 코인을 활용해 추진되는 사업은 딱히 없다. 암호화폐업계 관계자는 “무명(無名)의 코인이라 해도 ‘이 코인으로 이런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내놓고 투자자를 모으는데 도지코인은 그런 것도 없다”며 “머스크를 통해 높아진 인지도와 투기 심리가 결합돼 ‘묻지마 투자’가 폭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보다 비싸게 살 사람 찾아 ‘폭탄 돌리기’

올초와 비교하면 80배 넘게 뛰어오른 도지코인에 대한 투자 열풍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킴벌리 프리트레이드 연구원은 미국 경제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도지코인 가격 상승은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가격이 오르면 금방 팔아넘길 생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 큰 바보 이론’은 어떤 시장에 투기 바람이 몰아칠 때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다. 상품이나 자산의 가격이 본질적 가치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믿음이나 기대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원래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이 물건에 적정한 가격이 매겨졌는지를 따져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투기적 시장에서는 지금보다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는지 없는지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비싸게 구매한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더 비싼 값에 사갈 ‘더 큰 바보’가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어떤 가격이든 정당화할 수 있다. 폭탄 돌리기와 다를 게 없다.

이 이론을 만든 사람은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다.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중요하게 봤다. 대다수 경제활동은 합리적인 경제적 동기에 따라 이뤄지지만, 때론 야성적 충동의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제학 책에서 투기의 역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이 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자였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과시욕을 해소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는데, 터키에서 수입돼 정원을 장식하던 튤립이 대상이 됐다. 귀족은 물론 중산층 사이에서도 튤립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한 달 만에 50배 치솟았다. 거품이 터진 뒤 튤립 값은 최고치 대비 수천분의 1로 무너져내렸다.

도지코인 투자자들은 왜 뛰어든 것일까

암호화폐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됐고 이런 희소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또 해외에서 비트코인을 활용한 상장지수펀드(ETF)나 선물(先物)이 개발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도지코인은 발행량이 무제한이어서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생성되고 있다. 태생 자체가 ‘재밌자고’ 개발된 것이라 블록체인 기술로서 두드러지는 강점도 딱히 없다. 암호화폐 옹호론자인 마이클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 CEO조차 “내 친구가 도지코인에 투자하려 한다면 무척 걱정될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이 비싸지면서 가격 변동성이 낮아지자,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도지코인 같은 나머지 암호화폐에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