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상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삶의 공간도 변한다. 현재 우리가 선호하는 공간의 유형은 어떤 모양일까.
[special]공간의 변신, 상생의 답을 찾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아모레 성수’. 사진 아모레퍼시픽 제공]

‘공간(空間).’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공간의 사전적 정의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반짝이는 도심 속 야경이 펼쳐지는 펜트하우스를 원하기도 하고, 고요한 산속의 오두막집을 삶의 공간으로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취향의 차이만 있을 뿐 우위는 없다.

모든 공간에는 그 공간을 사용했던, 혹은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 세월, 그리고 시대상이 배어 있다. 그래서일까. 현재 사람들이 열광하는 공간의 면면에는 지금 우리 시대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태도, 그리고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급변하면서 기존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유형의 융합 공간이 뜨겁게 떠올랐다.

이러한 공간의 지각변동이 두드러진 곳은 단연 ‘유통업계’다. 코로나19 직격탄과 온라인쇼핑의 대전환으로 유통업계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간의 변신을 선택했다. 핵심은 ‘체험’이다.
[special]공간의 변신, 상생의 답을 찾다
[아모레 성수에는 소비자들이 직접 아모레퍼시픽그룹 30여 브랜드의 제품을 카테고리별로 체험할 수 있을뿐더러 맞춤형 화장품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자연친화적 외부도 특징이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제공]

체험은 요즘 소비의 주류로 급부상한 MZ(밀레니얼+Z, 1980~2004년생)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기업들의 마케팅도 이 점을 파고들었다. 고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와의 상호작용과 유대감을 높이는 ‘체험 마케팅’을 발 빠르게 선보이고 있다. 그중 오프라인 매장은 체험 마케팅의 주요 수단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성수동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아모레 성수다. 아모레 성수는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뷰티 체험 라운지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동차 정비소였던 건물을 개조했다. 이곳에서는 아모레퍼시픽그룹 30여 개 브랜드, 2300여 개의 제품을 카테고리별로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만을 위한 맞춤형 파운데이션, 쿠션 제작 서비스인 ‘베이스 피커(BASE PICKER)’도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들이 각자 고유의 아름다움을 직접 찾아보고, 공유하고, 여유롭게 차 한 잔까지 즐길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새 랜드마크로 부상 중인 ‘더현대 서울’도 ‘파격’과 ‘혁신’을 핵심 키워드로 공간 디자인과 매장 구성을 차별화했다. ‘자연친화형 미래 백화점’에 걸맞게 상품 판매 공간을 의미하는 매장 면적을 전체 영업 면적의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고객들이 편히 휴식하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고객 동선을 넓힌 게 특징이다.
[special]공간의 변신, 상생의 답을 찾다
[더현대 5층에 조성된 '사운즈 포레스트 모습. 사진 현대백화점 제공]

특히 5층의 3300㎡(약 1000평) 크기 실내 녹색공원 ‘사운즈 포레스트’는 ‘도심 속 숲’을 모티브로 주변 여의도공원(23만㎡)을 7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휴식 공간이다. 아파트 6층 높이인 20m 층고로 개방감을 살린 공간에 천연 잔디와 30여 그루의 나무, 꽃을 심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고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백화점이란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수준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거듭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더현대 서울’의 경우, 오픈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8만3000개(4월 16일 기준)를 넘어설 정도로, 고객들에게 파급력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간, 공유와 나눔 확산
공간의 변화는 공유경제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가장 화두인 공유 공간 유형은 ‘공유오피스(코워킹스페이스)’다. 공유오피스는 원래 빌딩을 빌려 작은 규모의 사무실로 나눈 뒤 재임대하는 사업으로 회의실, 라운지, 휴게 공간 등 부대시설은 입주 기업들이 함께 사용한다. 위워크(WeWork)와 패스트파이브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사무실 공유 서비스 기업 위워크는 지난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돼 개인 프리랜서와 소규모 기업들에 책상과 사무실 공간을 임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편리한 위치, 아름다운 내부 공간, 효율적인 인테리어도 강점이지만 위워크의 진짜 가치는 공간이 아닌 해당 공간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나온다.

디지털 문화심리학자인 이승윤 건국대 교수도 저서 <공간은 경험이다>에서 위워크의 성장에 대해 “가치 있는 커뮤니티에 소속된다는 ‘경험’을 팔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위워크에는 건물 관리자 대신 ‘커뮤니티 매니저’가 존재한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위워크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잇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같은 사무실 혹은 인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이 연결은 온라인으로도 이어진다. 위워크 사무실에 입주하면 커뮤니티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찾기도 하고, 자기 사업 분야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지난해 위워크 여의도에 입주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위워크의 강점은 좋은 입지 외에도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과 다양한 이벤트 등을 통해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며 “그 속에서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이고, 최신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사업 아이디어 구상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패스트파이브는 2015년 사업을 시작한 국내 토종 공유오피스로, 서울에만 총 27개를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패스트파이브에 입주한 기업은 1900여 개, 이용자 수는 1만8000여 명에 이른다. 고객 맞춤형 ‘커스텀 오피스’와 기존 업무 공간에 컨설팅과 디자인을 제공하는 ‘오피스 솔루션’ 등 여러 사업모델을 론칭하며 효율적으로 운영한 것이 빠른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저렴한 임대료도 매력적인 요소다.

이 밖에도 공간은 상생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착한 임대료’ 운동을 비롯해 생계 자체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로 공간을 대여해주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세종시는 방역소독기, 비말차단 칸막이, 체온계 등 코로나19 방역물품은 물론, 회의실, 주차장 등 일상 공간을 웹사이트 ‘공유누리’를 통해 시민들에게 대여한다. 특히 공유누리에는 주민들이 일부 이용료를 부담한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소규모 상가, 주택, 사무실 등이 등록돼 있으며, 앞으로 개방 자원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CJ문화재단도 지난 2010년부터 ‘스테이지업’ 사업을 통해 꾸준히 젊은·신인 공연 창작자를 발굴·육성하고 작품 개발을 지원한다.

핵심은 공간 대여다. CJ아지트 대학로 공연장과 부대시설, 무대장비 무료 대여 등 공간 나눔을 통해 미래 문화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가치소비’ 확산과 함께 소비자의 소비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공간들도 대거 늘어나고 있어 공간의 무한 변신은 계속될 전망이다.


글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사진 각 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