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 확정…“공무원 보수 규정 적용 안 돼”

[법알못 판례 읽기]
학교 무기계약직 “공무원처럼 호봉상한 없애달라”…法 판단은?
회사와 노동자가 법정 분쟁을 빚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이유도 다양하다. ‘근로 계약’의 형태에서 비롯된 다툼이 대표적이다. 근속 연수에 따른 호봉 상승 등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고용 형태는 더 나아졌지만 새로운 취업 규칙이 적용되면서 월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면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비정규직인 기간제 노동자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경우 종전의 취업 규칙이 무조건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4월 7일 행정 보조 등 교사 및 공무원 지원 업무에 종사하는 학교 회계 직원들은 직접적 공익을 실현하는 교사와 같은 공무원이 아닌 만큼 매년 정기 승급하는 호봉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이들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전환 전의 호봉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 대한 확정 판결이다.
기간제 →무기 계약직, 호봉 상한 생긴다면?
분쟁의 발단은 2007년에 시작됐다. A 씨 등은 경기도 내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학교 회계 직원들로 그해 무기 계약 노동자로 전환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체결했다. 학교 회계 직원은 학교가 직접 채용해 학교의 운영비와 학교 자체의 회계로 인건비를 충당하는 직원을 가리킨다. 이들은 무기 계약 노동자가 되기 전까지는 지방공무원 보수 규정을 적용받았다. 기능직 10급 기준으로 매년 1호봉씩 호봉이 올랐다. 하지만 무기 계약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호봉 상한선이 생겼다. 고용 형태는 개선됐지만 급여 측면에서 ‘제약’이 생긴 것이다.

A 씨를 포함한 학교 회계 직원 6명은 호봉 상한 제한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경기도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새로운 취업 규칙에 ‘보수에서 종전 기준에 따르는 것이 유리한 경우 종전 기준에 따른다’고 규정해 놓은 만큼 호봉 상한선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호봉 상한선을 정한 것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취업 규칙 변경이 노동자에게 불리하면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근로기준법 94조 1항에 어긋나며 다른 학교의 회계 직원과 비교해 차별이 생겼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차별적 처우 금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은 A 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 씨 등은 행정 보조 등 지원 업무에 종사하면서 교사와 공무원 직원의 교육과 행정 활동을 보조하는 만큼 ‘호봉 승급’처럼 공무원 보수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들이 다시 체결한 근로 계약에 따르면 매년 호봉이 자동 승급된다는 규정이 없고 지방공무원 보수 규정이 적용된다는 조항도 없다”고 판시했다.

A 씨를 비롯한 학교 회계 직원들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호봉 상한선 설정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와 다른 회계 직원 B 씨가 일하는 고등학교의 회계 직원 17명 중 17명이, 다른 학교의 C 씨가 일하는 고등학교 회계 직원 24명 중 22명이 취업 규칙 변경에 동의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리고 A 씨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기존 취업 규칙의 취지가 호봉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장한 것은 아니었던 만큼 호봉 상한을 없애고 매년 승급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밝힌 것이다. 또 다른 학교 회계 직원들의 동의를 받는 만큼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차별적 처우 금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계약직 ‘근속 승진’ 인정 요구 패소 사례도
앞선 사례와 유사한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2020년 12월 ‘근속 승진’ 문제와 관련해 서울시를 상대로 55명의 학교 계약직 직원들이 소송을 낸 데 대한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서울시 ‘승(勝)’. 대법원은 학교 행정실 등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들에게 공무원 보수 기준에 따른 급여를 지급하면서도 근속 승진을 인정해 주지 않은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앞서 서울의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교육 공무 직원으로 근무한 D 씨 등은 근속 승진을 인정받지 못해 각종 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냈다. 교육 공무 직원은 시·도교육청 산하 교육 기관에서 교육 및 행정 실무를 맡는 직원들로, 계약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공무원의 9급 보수 기준에 따라 교육 공무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다.

그런데 D 씨 등은 다른 공무원과 달리 교육 공무 직원에게는 근속 승진이 인정되지 않아 명절휴 가비 등 수당을 적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교육 공무 직원과 일반 공무원을 비교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무원은 대부분 공개 경쟁 임용 시험 등을 통해 채용된 반면 D 씨 등과 같은 호봉제 노동자는 각 학교장이 옛 육성회 직원(학교 회계 직원) 또는 학부모회 직원으로 고용한 것”이라며 “공무원은 호봉제 노동자와 달리 지방공무원법 등의 적용을 받아 직무상 명령 준수 의무 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근속 승진을 전제로 한 각종 수당에 관해서도 원고인 학교 계약직 직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서울시와 공무원의 보수 기준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방향으로 단체 협약을 맺었지만 근속 승진까지 적용한다는 내용은 아니다”며 근속 승진과 무관한 일부 수당에 대한 주장만 받아들였다.

2심도 “호봉제 노동자와 공무원은 채용 형태 및 절차, 업무 내용 및 범위, 권한과 책임 등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돋보기] 일선 사업장에선?…“무기 계약직은 ‘정규직’과 똑같이 처우해야”
한편 대법원은 지난해 ‘비정규직법 적용으로 계약직에서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는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무기 계약직 노동자의 처우에 대해 처음으로 내놓은 대법원 판결이었기 때문에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0년 1월 대법원은 대전MBC 무기 계약직 노동자 7명이 정규직과 동일한 취업 규칙을 적용해 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재판을 다시 하라며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은 대전MBC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무기 계약직과 정규직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의 판단은 다시 뒤집어졌다. 대법원이 무기 계약직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 재판부는 “무기 계약직이 정규직이 받는 임금과 상여금을 80% 수준에 불과하고 근속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은 비정규직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한을 침해한다”며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무기 계약직은 처우도 동일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판결을 두고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업계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전체 노동자 중 무기 계약직은 공공 부문에 약 22만 명, 민간 부문에 100만 명 이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간제 노동자로 입사한 뒤 2년이 지나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그때부터는 정년 보장뿐만 아니라 임금과 상여금 등 다른 조건과 관련해서도 정규직과 차이가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안효주 한국경제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