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경제교류는 「7·7 선언」 이후 1988년 (주)대우가 홍콩 중개상을 통해 북한의 도자기 519점에 대한 정부의 반입 승인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남북 경제교류는 일반교역, 위탁가공교역, 직접투자 순으로 발전해 왔다.

1990년대에는 주로 민간차원의 남북 경제협력의 틀이 정비되었다. 1990년 8월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과 '남북협력기금법'이 제정되었고, 이후 1994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 조치'가 발표됨으로써 민간 경제 협력이 확대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2010년 5월 24일부터 우리 정부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응하여 남북 교류를 전면 금지하였다. 이후 2011년 9월 우리 국민의 투자 점검을 위한 개성 및 금강산 지역 방북 허용, 2013년 11월 나신 하산 물류사업, 2015년 5월 광복 70주년 계기 민간 교류 적극 지원 등 여러 차례 유연화 조치와 예외 인정하면서 5.24 조치가 사실상 무효화되었다.

남북경제 협력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임의적으로 악화와 개선을 되풀이 되고 있다. 현재는 정치적 경제적 교류가 전면 중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다분히 정권의 성향과 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게 냉온탕으로 번갈아 변하면서 남북관계는 계속해서 악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6.25전쟁의 직접 당사자이면서 글로벌 리더 국가인 미국과의 관계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속적인 한반도 긴장 고착 상태의 해소를 위해 남-북-미간의 협력관계를 고정시킬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그와 더불어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켜 정상국가로 전환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삼국간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유무역협정은 국가 가의 조약이라 FTA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남북한 양 측에서 꺼려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만-중국의 사례와 같이 ECFA (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경제합작구조협의)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도 있다.

남-북-미 FTA는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완화를 불러올 것이다. 물론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는 북한 핵의 남-북-미 삼국 공동 컨소시엄에 의한 인수이다. 그 대가로 남한과 미국은 우크라이나사례처럼 경제지원을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있다. 남-북-미 FTA는 동북아 뿐만 아니라 국제 경제의 흐름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있다.

특히 한반도-중국, 한반도-일본 그리고 한반도-아시아의 경제 협력의 틀이 바뀌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중국의 반응이 염려되기는 하지만, 드러내놓고 노골적인 반대하기는 명분이 부족하여 큰 저항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만일 3국 간 FTA가 체결되고, 현재 남한이 체결한 기존의 57개국 17건의 FTA에 북한도 포함시키면 북한은 일약 세계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이미 한-EFTA 등 몇몇 FTA에는 북한 상품도 포함시키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대외 수출경쟁력도 제고되고, 선진국으로부터 일반특혜관세 (GSP) 혜택을 받아 수출관세 면제 또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선진국 투자자들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받는다면 북한의 경제개발 속도는 한층 빨라지고, 그만큼 핵과 전쟁무기 사용의 필요성도 줄어들어 한반도 평화를 앞당기게 된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조세일보 / 홍재화 필맥스 대표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