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프리 브리트니' 사태 막으려면

최근 미국에서 부는 ‘#프리 브리트니(Free Britney·후견인 제도로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해방하라는 SNS 운동)’ 운동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성년후견인제도의 실효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성년후견인제도 실효성 놓고 갑론을박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2월 12일 공개한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0년대 전 세계 팝음악의 아이콘이었던 브리트니가 우울증과 약물중독 등에 시달리다 재활시설을 오가게 된 과정을 그린다.

특히, 가장 쟁점이 된 부분 중 하나는 약 12년 동안 그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는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에 대한 내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앞서 2008년 브리트니의 정신적 불안정을 이유로 제이미를 그의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이때부터 브리트니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 약 5900만 달러(약 650억 원)에 달하는 자신의 돈을 쓸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직업이나 복지 등에 관해서도 자기결정권을 잃게 됐다. 브리트니 역시 지난해 로스앤젤레스(LA) 고등법원에 금융기관 베세머 트러스트가 자기 자산을 관리하기를 바란다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LA 고등법원은 베세머 트러스트와 제이미를 ‘공동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미국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프리 브리트니’라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브리트니가 이제는 충분히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상태이고, 본인이 아버지의 법정 후견인 자격을 원치 않는 만큼 ‘브리트니를 자유롭게 하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는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 77)의 후견인 지위를 놓고 윤정희의 동생들과 딸의 법적 다툼이 알려지면서 성년후견인제도를 향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새로운 성년후견인제도는 종래 무능력자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가정법원이 후견인과 후견의 범위를 정하고 감독사무를 담당한다. 또한 후견인이 재산 관리뿐만 아니라 치료, 요양, 거주 이전 등 신상에 관한 결정권 행사도 가능하며, 본인들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잔존 능력을 활용해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상화의 원칙 등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성년후견결격 조항 등 논란 여전
성년후견인제도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특히, 정신적 제약이 있는 고령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 제도가 그 빈틈을 채워줄 수 있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다만, 모든 법과 제도에는 명과 암이 존재하듯 성년후견인제도 역시 개선돼야 할 것들도 적잖은 실정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성년후견 결격조항이다. 후견제도는 애초 의사결정 능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권익을 신장시키자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피후견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제한해 국제사회로부터 장애인 차별법이란 비판을 받았다. 가령 후견이 개시되면 변호사, 세무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공인중개사, 요양보호사 등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거나 지적 장애를 입기 전 노력해 취득한 자격증도 하루아침에 취소된다.

최근 유명 대학교수 A씨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휴직했다. 그는 정년을 불과 1년여 정도밖에 남겨두고 있지 않아 병가 후 자연스럽게 퇴직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A씨의 배우자가 업무 처리를 위해서 성년후견개시 신청을 했고, 개시 결정이 나면서 결격조항으로 인해서 정년퇴직을 못하게 됐다.

이에 대해 전창훈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는 “국가공무원법 등에서 피성년후견 등을 결격 사유로 규정하는데 정말 실효성이 있을지는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라며 “성년후견인제도는 기본적으로 후견인에게 대리권 등을 부여하고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의사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의사결정제도다. 당사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념의 지원의사결정제도와는 대척점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 성년후견인제도를 가지고 있던 서구의 나라들에서도 현재 의사결정 지원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9년 일본도 후견을 받는 장애인의 경제·사회적 권리를 법으로 제한한 결격조항을 모두 삭제했다.

또한 브리트니 사례에서 드러났듯 후견감독의 자질 문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미국처럼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후견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령자나 장애인의 비이성적인 결정을 자기결정이라는 미명하에 악용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장애인의 후견인 90%가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이 차지합니다. 보통 친족후견인은 피후견인과 친밀감 및 심리적 유대감이 높고 피후견인의 필요(needs)를 잘 알고 있으며 신상 보호 사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적합하지만, 후견인으로서의 지위나 의무를 망각하거나 자신의 재산과 피후견인의 재산을 혼동하기 쉽고 횡령이나 학대와 같은 비행이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후견재판을 통해 달성하려고 했던 목적, 예컨대 피후견인 명의의 예금 인출이나 보험금 또는 연금 수령, 인감증명서 발급, 부동산 매각 등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더 이상 후견사무를 수행하거나 법원의 감독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후견인 선정에 더욱 신중해야 하고, 후견인의 후견사무 수행에 법원과 후견감독인 등의 적정한 감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후견인의 비행이나 학대 등이 있는 경우 피후견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손해나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시간에 늦지 않게 감독이나 후견인 교체, 피후견인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전창훈 변호사도 “사회의 각 주체들이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분들을 위한 지원 방안을 고민할 수 있는 통합된 제도 논의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법원 이외에도 금융기관, 보험, 법원, 사회복지 등 관련 유관기관들이 통합적으로 논의해서 그 방향성을 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CNN은 짐 조던과 매트 개츠 공화당 의원이 미 하원 법사위원장에게 브리트니가 법정후견인제도에 의해 부당하게 갇혀 있는지 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3월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두 의원은 “2008년부터 브리트니는 법원으로부터 보호 명령을 받았고, 이러한 판결을 끌어낸 사실과 정황이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며 “또 의심스러운 동기와 법적 책략들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제이미는 변호사를 통해 CNN에 이번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전했다. 제이미 측 변호사는 “제이미도 법정 후견을 끝내기를 원한다”며 “법정후견인제도를 끝낼지는 전적으로 브리트니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다만, CNN은 브리트니는 현재 법정 후견인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