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마찰 새 국면…디지털 통화전쟁 벌이나
미국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에 의해 크게 손상됐던 세계경제질서 복원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디지털 통화전쟁 등 새로운 형태의 마찰이 시작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3월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전국인민정치협회회의(정협)와 전국인민대표자회의(전인대)가 끝났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자 바이든 정부 출범 첫해에 열리는 올해 양회는 내부적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체제를 공고히 하고 대외적으로는 세력 확장을 통해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모색해 나간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렸던 19기 5중 전회에서 확정된 실천계획은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과 2035년까지 중장기 계획이다. 사회주의 국가가 순조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연적 단계’에서 ‘내연적 단계’로의 전형적인 경로를 잘 이행해야 한다. 전자는 외형을 키우는 단계인 데 반해 후자는 생산 효율을 중시하는 단계다.

중국은 1978년 덩 샤오핑 주석이 개혁과 개방을 표방하면서 수출 위주의 외연적 성장 단계를 밟아 왔다. 성과도 컸다.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43년 전에는 10%에도 못 미쳤으나 지난해에는 72% 수준까지 좁혀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빠르면 6년 후에는 미국마저 추월해 팍스 시니카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주도해 온 미국을 비롯한 선진 7개국(G7)이 오는 6월 열릴 영국 정상회담에서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머리를 맞댈 예정이지만 ‘G-something’ 체제는 갈수록 약화되는 추세다. G7이 주축이 돼 세계 공동의 이익 추구를 표방하더라도 ‘그룹 제로(G0)’로 가는 시대에서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캐치플레이즈를 내걸고 트럼프 정부에 의해 크게 손상됐던 세계경제질서를 복원시키기 위해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G0 시대가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그칠지 아니면 더 강화돼 분권화 시대가 정착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바이든 정부 시대에 예상되는 세계경제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 공존하는 ‘차이메리카’ △미국과 중국이 경제 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신냉전 2.0’ △지역 혹은 국가별로 분화하는 ‘분권화’ △모두 조화를 이루는 ‘다자주의’ △무정부 상태인 ‘서브 제로(sub zero)’ 등의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상정해볼 수 있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해관계에 따라 ‘차이메리카’와 ‘신냉전 2.0’이 반복되는 커다란 줄기 속에 다른 국가는 자국 문제 해결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중층적 ‘분권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세계경제질서는 G7 국가가 주도가 돼 구축해 놓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하지 않으면서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 젤리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 앱노멀 젤리형 세계경제질서는 종전의 스탠더드와 거버넌스에 내재돼 왔던 한계에서 비롯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탠더드와 지배구조를 주도해 왔던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발생했고, 각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직면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음에 따라 주도국으로서의 위상과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다.
미‧중 마찰 새 국면…디지털 통화전쟁 벌이나
미·중 간 ‘중심축’ 확보 마찰 본격화
G0 시대에서는 어느 국가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경제 발전 단계를 높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뉴밀레니엄 시대 이후 G7 이외 새로운 중심국으로 부각될 것으로 기대됐던 브릭스 국가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인구와 부존자원 이외 다른 성장 동인이 있어야 주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 로스토(W. W. Rostow) 교수가 주장했던 ‘제2의 도약론’이다.

새롭게 거론되는 성장 동인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콘택트 추세가 앞당겨져 초연결 사회가 도래되는 시대에 있어서는 ‘중심축 국가(pivot state)’일수록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심축 국가란 특정 국가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국가와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국가를 말한다.

시 주석은 올해 양회를 계기로 내수 위주의 ‘쌍순환’ 전략과 세계가치사슬(GVC)의 중심지를 더 강화하는 ‘홍색 공급망’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 중국 중심의 네트워크 체제를 본격적으로 구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1978년 덩 샤오핑 체제 이후 추진해 왔던 수출 지향적 성장 전략을 42년 만에 수정하는 대전환이자 대변화다.

특히 중국의 세력 확장 전략에 있어서는 일대일로 등을 통해 추진해 왔던 각종 오프라인 계획이 부진하자 이를 보완할 목적으로 앞으로 주력해 나갈 것은 ‘디지털 실크로드(DSR)’다. DSR는 5세대(5G) 이동통신망, 인공지능(AI), 클라우딩 컴퓨팅, 모바일 결제, 보안 감시 등 차세대 첨단 기술상의 우위를 바탕으로 전 세계 국가를 촘촘히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현재 공식적으로 참가한 국가는 26개국, 비공식적으로 관련된 국가 138개국을 합하면 160개국이 넘는다. 세계 모든 국가의 3분의 2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영국, 한국, 폴란드, 아랍에미리트 등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과 군사 요충 국가까지 파고들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보다 더 강화된 수준과 형태의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견제를 지속해 나가는 동시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기치를 내걸고 대서양 동맹을 통한 유럽 국가, 지리적으로 중국에 가까운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관계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미‧중 마찰 새 국면…디지털 통화전쟁 벌이나
위안화 vs 달러화, 新 디지털 통화전쟁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세계 모든 국가가 중국과 미국으로 재편돼 나가는 이원화(two-track) 디지털 콘택트 초연결 시대가 도래된다면 미·중 간 마찰은 ‘디지털 통화전쟁’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미국보다 앞서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용해 왔던 중국은 이번 양회를 계기로 디지털 기축통화 야망을 본격적으로 구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위안화는 종전의 가상화폐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했다는 차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왔다. 실물 화폐와 달리 그 자체적으로 가치(value)가 없는 화폐가 교환 수단, 가치 저장, 회계 단위 등과 같은 3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정화 여부와 발행기관이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디지털 위안화를 1대1로 교환해 구권을 신권으로 교체할 때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거래 단위 축소)’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켰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소비자(고객)의 전자수첩에 넣어줘 사용토록 하는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할 경우 의외로 빨리 정착될 가능성도 높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다지털 위안화를 정착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나라 밖으로도 세계 1위의 수출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 비중이 빨리 올라갈 가능성도 높다.

민간 권력이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하는 직전 트럼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미국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 달 만에 양대 경제수장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이 잇달아 ‘디지털 달러화’ 도입 방침을 밝혔다.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상승하고 인식까지 개선되는 상황에서 디지털 달러화 도입이 늦어지자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이 자사 상품의 결제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사도 비트코인을 자산에 포함시키면서 상장지수펀드(ETF) 등 관련된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디지털 위안화가 조기에 정착됨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본격적으로 도래할 디지털 통화 시대에 기축통화 지위를 영원히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 과제를 꾸준히 추진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의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구축할 경우 글로벌 화폐 발행에 따른 차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 금융사의 자금 조달 효율성과 편리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미국은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을 연간 23억∼118억 달러로, 전체 조세수입의 0.4∼1.8%에 달하는 큰 혜택을 누려 왔다.
미‧중 마찰 새 국면…디지털 통화전쟁 벌이나
중국, 美 국채 매각으로
아킬레스건 더 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에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 왔던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민이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임시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2023년까지 유지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의 대표 격인 10년물 국채금리는 오르는 ‘파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월 수수께끼는 2004년 이후 Fed가 기준금리를 올렸음에도 시장금리가 낮아진 ‘그린스펀 수수께끼’와 정반대 현상이다. 15년 전에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Fed의 금리 인상 조치가 무력화돼 금융위기를 낳게 한 원인이 됐으며, 이번에는 미국 국채를 내다 파는 과정에서 장기채 금리가 상승돼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은 월평균 50억 달러 정도 미국 국채를 팔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9월 이후에는 60억 달러대로 늘리고 있다. 올 2월 기준으로 중국의 미국 국채보유분은 1조 달러 내외로 외환보유액 1조 2000억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중국 인민은행 등에 따르면 중장기적으로 8000억 달러 선까지 줄여 나간다는 계획이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것은 그 충격이 의외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3대 평가사 중의 하나인 유럽의 피치사가 미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한 단계 강등시킬 정도로 재정적자와 국가 채무가 위험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중국의 국채 매각은 곧바로 미국의 모라토리움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면에서도 Fed의 금리 인하 효과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국채 매각으로 미국의 장기채 금리가 더 오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높아지고 있는 저축률을 더 끌어올려 소비를 둔화시키고 기업의 설비투자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8%대였던 미국 국민의 저축률은 최근에 20%대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3월 이후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없는 ‘트레핀 딜레마’에 빠진 여건에서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은 달러 가치를 추가적으로 하락시킬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유일하게 강세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Fed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분을 추가적으로 늘릴 것에 대비해 디지털 달러화 도입 발표와 함께 무제한 양적완화를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로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OT란 단기채를 매각한 대금으로 장기채를 매입해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에 따라 부담이 될 장기채 금리를 하락시키는 정책을 말한다.

금융 마찰로 초점이 이동된 미·중 간 경제패권 다툼은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중간자 입장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어느 한편으로 치우칠 경우 더 불리해지는 만큼 현 정부 들어 중국으로 치우쳤던 대외 경제 정책상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야 한다.

바이든·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개될 새로운 미국과 중국 간 마찰 시대에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앞날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심축 사회에서 더 거세질 양국의 네트워크 가담 요구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와 ‘앞으로 전개될 디지털 통화전쟁에 디지털 원화의 위상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만큼 중요한 과제가 없기 때문이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