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없이 즐기는 동안 실력이 쑥쑥

지난해 캐나다로 영어 연수를 떠난 이미래(이화여대 경영학 03학번) 씨는 연수 초반 외국인 친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한국에서 어학원에 열심히 다녔고 토익 점수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지만 막상 부딪쳐보니 영어 점수와는 별개 문제였다”는 것. 책에 나오지 않는 표현을 익히는 데 꽤나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투자하는 시간이나 비용에 비해 실력이 늘지 않고 재미를 붙이기도 어려운 것이 외국어다. 외국어를 잘하려면 그 언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려야 하지만 외국에 나가 생활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외국어 공부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외국어 고수들은 삶의 축소판인 ‘드라마’ 보기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드라마 보며 외국어 공부하기] 드라마로 외국어 완전 정복
드라마를 통한 외국어 공부의 핵심은 ‘재미’를 좇는 만큼 ‘실력’이 쌓인다는 것이다. 드라마에 빠져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해당 언어를 접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실력이 향상되는 원리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거나 관심 있는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동명의 소설·영화가 있는 리메이크 작품을 고르는 것도 초보자들에겐 외국 드라마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이다. 재미가 붙으면 점차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선택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좋다. 풍부한 어휘력을 쌓기 위해서다.

드라마를 정했다면 자막 없이 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를 고른 뒤 한 번은 자막 없이, 그 다음은 외국어 자막으로 다시 보는 방식이다.

초보자의 경우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종로 YBM 일본어센터의 전태숙 강사는 “정형화된 표현에 익숙한 학생들은 드라마 속 회화를 알아듣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처음엔 꾸준히 드라마를 보며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들을 몇 개씩 정리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처음 볼 때 이해되지 않았던 표현들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면 잠시 멈추어놓고 소리 내어 따라해 보자. 실제 배우처럼 연기하는 느낌으로 읽어야 원어민의 억양과 톤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면 알고 있는 단어로 동사나 명사를 바꿔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스스로 자막을 만들어 보는 것도 문장 구성력을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익히겠다는 욕심으로 첫마디부터 전부 받아 적기 시작하면 지치기 쉽다. “본인에게 익숙한 짧은 문장부터 시작해야 장기간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드라마 중국어’의 저자 이미향 씨의 노하우다.

드라마에선 기본적으로 대화 중심의 언어를 사용하므로 간혹 문법에 맞지 않는 말도 나온다. 이때 너무 문법에 얽매이면 곤란하다. 사전엔 나오지 않지만 실생활에서는 자주 쓰이는 관용어구를 익힐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표현이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드라마가 외국어 자격증 공부에도 도움이 될까?

꾸준히 드라마를 보면 외국어 자격증을 따는 데에도 도움이 될까? 토익의 LC 파트 같은 듣기 평가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반적으로 드라마 속 대화는 시험보다 빠르기 때문에 마치 '모래 주머니를 차고 달리기 연습'을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드라마 속 상황과 시험에 나오는 표현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공식적인 상황의 표현 능력을 요하는 스피킹 시험 준비에는 드라마가 적합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드라마 속 구어체 표현 대신 정확한 문법 체계를 갖춘 표현들을 따로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일본 드라마의 경우 일부 학원물에 거친 표현이 자주 나오므로 내용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대만 드라마 역시 남방 특유의 발음이 나오거나 표준어와 발음체계가 다른 언어를 섞어 쓰는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드라마 보며 외국어 공부하기] 드라마로 외국어 완전 정복
● 미드
(도움말 이충훈 영어콘텐츠 개발업체 J&L ENGLISH LAB 대표·‘미드&스크린 영어회화 표현 사전’ 저자)
[드라마 보며 외국어 공부하기] 드라마로 외국어 완전 정복
초급자에게 추천!

요절복통 70쇼 (That 70’s Show)
1970년대 평범한 10대들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 주인공들의 대사 속도가 다른 드라마에 비해 느린 편이다. 각 에피소드가 20분 정도로 초보자가 반복해서 보기에 좋다. 청소년들의 일상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다 보니 쉽고 유용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How I Met Your Mother)
미국 뉴욕의 젊은이들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드라마. 편당 분량이 짧아서 반복해서 보기 좋다. 대화 속도가 빠르지 않으며 20대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과 문장이 자주 등장해 영어 학습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중급자에게 추천!

체인지 디바 (Drop Dead Diva!)
사후에 모델에서 변호사로 몸이 바뀐 한 여성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법정 드라마. 법정 드라마지만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표현을 부담스럽지 않게 접할 수 있고 배우들의 발음도 정확하다.

빅뱅이론 (Big Bang Theory)
물리학 전공 공부벌레들의 일과를 그린 시트콤. 전체적으로 내용이 어렵지는 않지만 몇몇 캐릭터의 대사가 조금 빠르고 은유적이다. 전문 용어를 활용한 문장도 자주 등장한다. 중급 수준의 학습자가 일상생활 표현들 위주로 정리하며 공부하기에 적절하다.

고급자에게 추천!

가십걸(Gossip Girl)
뉴욕 상류층 젊은이들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 감각적인 영상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이미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들의 대사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발음 또한 얼버무리듯이 내뱉는 경우가 많아 중상급 수준의 학습자가 보기에 적합하다.

● 일드 (도움말 전태숙 YBM 스크린일어 전문 강사·‘진짜 회화는 일드에 있다’ 저자)
[드라마 보며 외국어 공부하기] 드라마로 외국어 완전 정복
초급자에게 추천!

절대 그이
얼굴, 성격, 목소리까지 완벽한 이상형의 연인 로봇을 만든다는 상상에 착안해 만들어진 드라마. 다소 유치한 설정이지만 내용이 순수하고 쉬운 표현이 많아 기초 문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면 초급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빠와 딸의 7일간
아빠와 딸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룬 가족 드라마.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가 돋보인다. 10대인 딸과 부모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다. 초중급 수준의 학습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중급자에게 추천!

호타루의 빛
대표적인 ‘건어물녀’의 이야기. 직장 여성의 모습을 다뤘지만 회사 업무에 대한 표현보다 일상 회화가 많이 나온다. 여주인공의 말이 빠르고 방언을 종종 사용해 중급 이상의 실력이 돼야 알아들을 수 있다. 남주인공의 정갈한 발음과 표현을 참고할 만하다.

노다메 칸타빌레
클래식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 푼수 같은 여주인공 캐릭터가 드라마의 재미로 작용하며 어려운 클래식을 재미있고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다. 음악 전문 용어가 종종 나오지만 난이도가 그다지 높지 않고 말의 빠르기도 적당하다.

고급자에게 추천!

파견의 품격
일본 사회의 비정규직(파견직) 문제를 다룬 드라마.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독특한 캐릭터의 주인공을 통해 코믹하게 전달했다. 난이도가 높은 편이지만 알아두면 좋은 고급스러운 표현이 많이 나온다.

●중드 (도움말 이미향 ‘드라마 중국어’ 저자)
[드라마 보며 외국어 공부하기] 드라마로 외국어 완전 정복
초급자에게 추천!

취상뢰저니
죽은 형의 조카들을 키우는 변호사와 그 집에 보모인 여주인공의 이야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지만 전문 용어 비중이 적다. 조카들이 나누는 대화는 초급자가 공부하기에 좋다.

악작극지문2
한국에서 ‘장난스런 키스’로 리메이크됐던 대만의 트렌디 드라마. 주인공인 대학생 부부가 캠퍼스에서 겪는 다양한 일을 통해 비교적 쉬운 생활 용어를 접할 수 있다.

중급자에게 추천!

귀가의 유혹
한국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리메이크한 작품. 한국 배우 추자현이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전체 줄거리를 알고 보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표현의 난이도가 높지 않고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어휘들이 나와 공부하기에 좋다.

추녀무적
못생긴 외모 때문에 취업을 못하던 주인공이 힘겹게 입사한 직장에서 인정받는 과정을 담은 시트콤 형식의 드라마. 회사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관련 용어를 익히기에 좋다. 여직원들의 수다를 통해 유행어도 접할 수 있다.

고급자에게 추천!

분투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젊은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다뤘다. 다소 무거운 심리 묘사가 많아 상급자 이상의 수준을 갖춘 학생이 보기에 적절하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윤보람 대학생 기자(숙명여대 수학통계학부 3) bbburami@naver.com│사진 각 프로그램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