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 인터뷰]

이원태·김탁환 <조선마술사> 작가

“탄탄한 스토리 없으면 ‘크로스 콘텐츠’는 불가능”


조선 최고의 마술사 환희와 왕의 딸 청명의 운명적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마술극장 ‘물랑루’를 배경으로 마술대결을 펼치는 환희.

오는 12월 개봉을 앞둔 유승호·고아라 주연 영화 <조선마술사>의 내용이자 11월 출간된 소설 <조선마술사>의 줄거리다. 동시에 지난 9월 높은 관심을 받았던 웹소설 <조선마술사>의 내용이기도 하다. 한 가지 이야기가 다양한 버전을 갖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처음부터 영화와 책, 웹과 모바일에 맞춰 콘텐츠가 기획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그릇에 담아내기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에 호기심이 동해 두 저자를 찾았다.





'영화(Movie)'와 '소설(Novel)'을 합한 '무블(Movel)'.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이 아닌 애초에 영화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품을 말하는 새로운 용어다.

이렇게 탄생한 소설은 웹소설이나 뮤지컬과 같은 다양한 매체에 최적화된 형태로 변주되기도 한다. 이른바 '원 스토리 멀티 유즈' 콘텐츠다.

이 용어를 처음 꺼낸 이는 소설가 김탁환과 기획자 이원태가 결성한 창작집단 '원탁'이다.

'원탁'은 지난해 무블 장르로 출간한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에 이어 올해는 모바일, 책, 영화 등 다양한 플랫폼의 두 번째 무블 작품 <조선마술사>로 대중을 만난다.



이원태·김탁환 &lt;조선마술사&gt; 작가  “탄탄한 스토리 없으면 ‘크로스 콘텐츠’는 불가능”

김탁환(47)

장편소설 <목격자들><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밀림무정><리심> 등 출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황진이>, 영화<조선 명탐정>의 원작자



이원태·김탁환 &lt;조선마술사&gt; 작가  “탄탄한 스토리 없으면 ‘크로스 콘텐츠’는 불가능”

이원태(47)

MBC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아름다운 TV 얼굴>등을 기획, 연출

영화 <가비><파파>기획, <오싹한 연애> 제작



영화 <조선마술사>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원작자로서 기대되는 장면이 있나요?

가장 마지막에 마술극장 ‘물랑루’에서 펼쳐지는 마술대결 장면이 있어요. 가장 하이라이트이니 기대되네요.(이원태)

천민 신분의 마술사인 주인공 환희와 공주가 만나 ‘썸’을 타는 장면이 좋아요.(김탁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2010년 쯤부터 작업을 시작했어요. 2011년 1월에 소설 초고가 나왔죠. 그러고는 초고로 놔두고 다른 작품을 쓰다 지난해 꺼내 다시 1년을 만졌어요. 3~4년 전에 쓴 걸 보면 고칠 부분이 많이 보이거든요. 영화는 2011년 원고로 발전시켜 진행돼 지금의 소설과 조금 차이가 있어요. 스토리는 그대로인데, 조금 더 좁혀 갔더라고요. 플랫폼이 다르니 두 개의 맛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김탁환)




두 분이 어떤 인연으로 만나 한 작품을 탄생시켰는지 궁금해요.

고향 친구예요. 둘이 의기투합해 일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예요. 살다 보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한 번씩 오게 마련인데, 이 친구와 그 시기가 같았던 듯해요. 저는 MBC에서 PD로 일하다 그만뒀고, 김 작가는 교수로서 다른 학교로 옮기는 시기였죠. 그래서 저희 둘, 그리고 현재 세계적 다큐멘터리 PD인 친구까지 세 명이 싱가포르로 여행을 떠났어요.

그때 김 작가와 같이 방을 쓰게 됐는데, 정말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야기에 대한 비즈니스부터 시작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까지요. 방송 연출자로서, 소설가로서, 둘 다 이야기꾼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죠. 그렇게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 <노서화갑>이라는 작품이죠.(이원태)




싱가포르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 콘텐츠가 탄생한 셈이네요. <조선마술사>가 영화로 제작되는 것처럼, 작품에서 염두에 두는 플랫폼이 있나요?

온갖 상상을 다 해봐요. 뮤지컬에서 영화까지. 하지만 작품을 시작할 때는 영화를 우선 생각하는 편이에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선동하는 게 영화잖아요. 스토리에 따라 쓰임새는 달라지지만, 스토리가 탄탄하다면 어떤 플랫폼에도 잘 소화되리라 생각해요.

<조선마술사>의 경우는 마술대결의 배경이 되는 ‘물랑루’가 뮤지컬 무대와 잘 맞아떨어지리라 생각을 했어요. 영화도 물론 볼거리가 풍부할 것이고요.(이원태)




이원태·김탁환 &lt;조선마술사&gt; 작가  “탄탄한 스토리 없으면 ‘크로스 콘텐츠’는 불가능”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먼저 공개된 플랫폼에 만족한 경우 플랫폼 변화를 원하지 않는 대중도 많은데요.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영화와 글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도 소설에서는 한 페이지에 걸쳐 깊게 다루지만, 영화에서는 몇 초 만에 모두 표현되죠. 때문에 소설이 더 깊을 수밖에 없어요. 또한 소설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스토리를 이어나갈 수 있는데,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시간제약이 많아 소설을 충실히 따라가기 벅차죠.

<조선마술사>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물랑루’는 재현하는 데만 해도 수억 원씩 들어간다고 해요. 반면 소설은 전혀 부담이 없으니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찾아보기 드문 거죠.(이원태)




웹소설 형태로도 공개됐는데, 소설과 차이가 있나요?

그럼요. 독자들도 다르고, 페이지도 다르죠.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이야기의 속도도 다르고요. 웹에 익숙한 사람들은 종이를 오려 넣어놓으면 답답해해요. 공간에 대한 감각이 다른 거죠. 그러니 완성된 작품이라도 웹에 맞춰 다시 편집해야 해요. 편집기간은 한 달 정도 걸린 듯 하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 스토리예요. 5년 전에 만든 <조선미술사>의 스토리는 변함이 없지만, 다양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이유죠.(김탁환)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만나셨는데, 장·단점이 있을 듯해요.

처음에는 방송 연출, 소설로 분야가 달라 서로 하는 일의 경계가 뚜렷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어요. 저는 방송 연출을 많이 한 덕에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지점에 대한 이해가 넓어 대중성을, 김 작가는 소설가였기에 작품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이원태)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동시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어떤 것에서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나요?

기본적으로 책을 계속 봐요. 책을 보면 계속 생각을 하게 되죠.

소재는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을 찾아요. ‘악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고민이요. <조선미술사>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5년 전에 어떻게 트렌드를 읽었느냐”고 묻지만,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기 때문에 트렌드와는 관계가 없었어요. 국가나 나이를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게 마술이고, 인류 공통의 감정인 ‘로맨스’를 다뤘으니까요.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소재가 떨어졌다는 말은 정말 소재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생각을 덜 한 거예요. 계속 질문하고 공부해야죠.(김탁환)


이원태·김탁환 &lt;조선마술사&gt; 작가  “탄탄한 스토리 없으면 ‘크로스 콘텐츠’는 불가능”




콘텐츠 기획을 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에게 독서는 필수겠네요. 대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은 책의 쓰임새인 것 같아요. 책이라는 게 크게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친구. 책은 고민을 먼저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거죠. 태어나기 전의 사람들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장작이에요.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좋은 장작이 필요하죠. 좋은 장작은 늘 하나씩 모아야 하고요. 이런 면에서 장작을 하나도 사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려는 사람은 결코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없어요. 포털사이트에서 장작을 구하면 된다는 말을 간혹 듣는데, 정말 좋지 않은 모습이죠. 책의 두 가지 의미 중 자신이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김탁환)



덧붙여, 이야기든 게임이든 콘텐츠를 기획하고 싶다면 역사책을 찾아 읽는 게 가장 기본이에요.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인물이, 또 상상 이상의 나쁜 짓을 한 인물이 등장해요. 수 십, 수백 만 인간 군상이 다 들어있죠.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수월하고, 앞서 김 작가가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 고민도 할 수 있어요. 알아야 좋은 장작을 고르죠. 단,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연도와 한 줄의 사실만 기록된 역사책이 아닌 방대한 분량으로 쓰인 역사책을 읽었으면 해요.(이원태)





글 김은진 기자 (skysung89@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