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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가장 불공평한 세금, 인플레이션
세계의 다양한 지폐들.  AFP연합뉴스

세계의 다양한 지폐들. AFP연합뉴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는 걷은 돈보다 더 쓴다. 경제가 파탄나는데도 로마의 군인황제들이 저질 은화를 발행한 것도 돈이 급했기 때문이다. 국가 부채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군대를 유지하고 복지사업을 펴고 호화생활을 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세금은 저항이 컸고 정복 지역이 줄어 세금이 쪼그라드는 판이었기에 조폐소에서 귀금속 함량을 줄여 그 차익, 곧 시뇨리지(화폐 액면가에서 제조비용을 뺀 차익)를 챙기는 것은 세금 징수보다 손쉬운 일이었다.

은화의 실질 가치가 낮아졌으니 물가가 뛰는 인플레이션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3세기에 로마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5~6%로 추정된다. 해마다 6%씩 오르면 물가는 12년마다 두 배가 된다. 군인황제시대는 곧 경제와 민생 붕괴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정치·경제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순도 100%인 새 은화를 만들어 화폐가치를 안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화폐 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새로 발행한 은화도 곧 사라지고 물가는 더 올랐다. 급기야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가격통제 칙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물가는 법으로 누른다고 내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는 더 위축됐고, 사람들은 못 믿을 화폐 대신 물물교환으로 돌아섰다.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306년 순금으로 새 금화 솔리두스를 만들고, 330년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금을 대부분 가져가 예전 수도 로마는 쇠퇴하고 말았다.

시뇨리지는 ‘인플레이션 세금’으로 불린다. 화폐 발행량을 부풀릴수록 물가는 부풀어 오른다. 군인황제들이 불량 은화의 시뇨리지로 국고를 채운 대가가 물가 폭탄이었다.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피해는 빈곤층에게 돌아간다.
금·은으로 몰락한 스페인, 신대륙의 저주인가
16세기 유럽의 최강국은 5대륙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한 스페인이었다. 당시 대항해시대의 선두 주자로서 포르투갈까지 합병한 스페인에 맞설 세력은 없었다.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금과 은으로 무적함대를 구축했고 대규모 선단은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하지만 스페인의 전성기는 불과 한 세기 만에 수그러들었다. 그 원인이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던 신대륙에서 초래됐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당시에는 왕실이 금·은을 많이 보유할수록 부유한 나라라는 중상주위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스페인은 페루, 멕시코 등지에서 캐낸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본국으로 가져왔다. 16세기에 신대륙에서 스페인으로 유입된 은이 1만7000t, 금은 180t에 달했다.

갑자기 많은 금·은이 유입되면서 물가가 뛰었다. 화폐 유통량이 늘면서 16세기 스페인의 물가는 4배로 올랐다. 신대륙 발견 이전의 스페인은 농업 국가여서 변변한 산업이 없었다. 정복과 약탈로 부를 축적한 지배층은 산업을 일으킨다는 개념이 없었다. 대부분 물품을 수입했기에 물가 급등은 곧 금·은의 유출로 이어졌다. 또한 가톨릭 국가의 대표 격인 스페인은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과 끊임없이 반종교개혁 전쟁을 치르느라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런 상황에 즉위한 펠리페 3세는 국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문제는 그 칼이 너무 위험해 스스로를 베었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화폐에서 금과 은을 빼고, 옛 주화는 새 주화로 교환하도록 명령했다. 이후 상황은 로마의 쇠퇴기와 다를 게 없었다. 금화와 은화는 해외로 유출되거나 숨겨졌고, 저질 구리 화폐만 남았다. 스페인의 전성기는 불과 한 세기 만에 막을 내렸다. 신대륙 약탈로 부를 누린 스페인이 신대륙의 금과 은 때문에 몰락했다는 점에서 ‘신대륙의 저주’라고 부를 만하다.
국가 경제의 파탄 경로는 언제나 같다
한 나라의 경제가 붕괴하는 경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국가가 유사하다. ‘과중한 국가 부채→무분별한 화폐 발행→물가 폭등→경제 및 신용 위기→경제 붕괴’로 이어진다. 지폐의 등장은 국가 경제 파탄을 대규모로 빈번하게 만들었다. 금화와 은화는 화폐의 교환가치와 소장가치가 원칙적으로 동일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조선 말기에 발행된 당백전도 유사한 사례였다.

이에 반해 발행자 입장에서는 지폐로 엄청난 시뇨리지를 챙길 수 있다. 미국 100달러짜리 지폐의 가치는 100달러지만 한 장을 찍는 데 드는 비용은 30센트에 불과하다. 불량 지폐가 마구 남발된다면 물가 폭등과 경제 붕괴는 시간문제다.

역사상 최초로 지폐가 통용된 곳은 중국이었다. 10세기 송나라 때 등장한 교자(交子)는 화폐 지급 보증서였다. 1023년 송나라 인종이 교자를 화폐로 지정했다. 그러나 요나라, 서하 등 이민족과의 전쟁 비용으로 남발된 탓에 오래 가지는 못했다. 유럽의 지폐 실험은 이보다 700년 뒤에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 발행량이 무분별하게 늘면서 모두 실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이다. 그러나 1720년 미시시피회사 주식 투기 사건인 ‘미시시피 버블’이 터지면서 존 로의 은행권 구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렇듯 지폐는 19세기 이전까지 불신의 대상이었다. 지폐가 신뢰를 확보한 것은 1817년 영국을 시작으로 각국이 금본위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지폐 발행량을 은행의 금 보유량 이내로 제한한 것이다. 지금은 금본위제가 사라진 대신 정부나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화폐 발행을 전담하고 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화폐란 금속에 새겨 넣은 신뢰’라고 했다. 마구 찍어낸 화폐가 신뢰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런 주화나 지폐는 고철 덩어리, 휴지 조각과 다름없다. 현대의 지폐는 가치가 있어서 통용되는 게 아니다. 교환가치와 지급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만 가치를 갖는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서기 68년 은(銀) 함량이 90%이던 로마 은화는 268년에는 4%까지 떨어졌다는데 같은 기간 로마의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였을까.

② ‘악화(나쁜 돈)가 양화(좋은 돈)를 구축(몰아냄)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재정고문인 토머스 그레셤에서 유래했다는데 오늘날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등에도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③ 화폐가 신뢰를 얻고 통용되려면 국가가 지급을 보증해야 하는데, 최근 주목받는 비트코인처럼 민간이 유통시키는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가치를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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