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수소 이어 우주로 진격…M&A 승부사 기질 발휘해 글로벌 위성통신 사업 강자로

[스페셜 리포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주)한화 제공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주)한화 제공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엘론 머스크,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혁신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우주 비즈니스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으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 시대가 끝나고 민간 기업들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되면서 우주는 혁신가들의 새로운 꿈의 무대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화그룹이 우주 항공 산업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한화그룹은 최근 우주 항공 방산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한국의 우주 인공위성 전문 기업인 ‘쎄트렉아이’와 지분 인수 계약을 하며 우주 항공 산업 주도권 선점에 나섰다. 쎄트렉아이 지분 인수 계약과 관련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영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 회장은 2021년 신년사에서 “혁신의 속도를 높여 K방산·K에너지·K금융과 같은 분야의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며 “미래 모빌리티, 우주 항공, 그린 수소 에너지, 디지털 금융 솔루션 등 신규 사업에도 세계를 상대로 미래 성장 기회를 선점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김 회장은 2014년 2월 배임 등의 혐의로 인해 (주)한화 등 7개 계열사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5년의 집행 유예 기간이 만료된 이후 2년간 취업 제한 조치가 이뤄지면서 그동안 경영 복귀의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이 조치는 2021년 2월 18일 해제된다.

한화그룹 측은 김 회장의 경영 복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3월 정기 주주 총회를 거쳐 김 회장이 7년 만에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 회장은 유력한 차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그래픽=전어진 기자
그래픽=전어진 기자
경영 복귀 앞두고 우주 항공 역량 강화 박차

김 회장의 경영 복귀와 함께 한화그룹의 우주 항공 사업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회장은 2014년 삼성그룹의 방위 사업과 화학 계열사(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인수 ‘빅딜’을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구 삼성테크윈)를 세우면서 우주 항공 사업의 역량을 강화해 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한화 아래 항공·방산 부문 중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한화디펜스·한화시스템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삼성그룹은 반도체,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LG그룹은 전기차용 배터리 등 주요 그룹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한 상황에서 우주 항공 사업은 한화그룹을 대표하는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21년 1월 13일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한 쎄트렉아이는 한국 최초의 위성인 ‘우리별 1호’를 개발한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출신 연구원들이 1999년 창업한 위성 전문 기업이다. 중소형 위성 시스템과 소형·중형·대형 위성의 탑재체와 부품 등을 개발, 제조하는 기술력을 갖춘 한국 유일의 업체다.

쎄트렉아이는 2009년 말레이시아의 라작샛(RazakSAT)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샛(DubaiSat-1), 칼리파샛(KhalifaSat) 등의 위성을 개발, 발사하고 운용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수출 비율이 60%를 넘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쎄트렉아이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약 30% 인수하기로 했다. 이번 지분 인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뉴 스페이스 시대(민간 우주 탐사 개발 시대)를 맞아 미래 성장이 기대되는 우주 위성 산업 관련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한화그룹의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통한 위성 개발 기술 역량 확보와 기술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결정에 따른 것이다.
(사진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 한화시스템이 개발하고 있는 초소형 SAR 위성 이미지, 한화시스템의 고성능 영상 레이다(SAR) 탑재 위성, 한화시스템의 차세대 우주 물체의 정밀 추적 식별 및 능동 대응 기술을 구현한 이미지, 한화시스템의 카이메타 위성 통신 안테나 U8의 차량 장착 모습. /한화시스템 제공
(사진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 한화시스템이 개발하고 있는 초소형 SAR 위성 이미지, 한화시스템의 고성능 영상 레이다(SAR) 탑재 위성, 한화시스템의 차세대 우주 물체의 정밀 추적 식별 및 능동 대응 기술을 구현한 이미지, 한화시스템의 카이메타 위성 통신 안테나 U8의 차량 장착 모습. /한화시스템 제공
한화그룹은 이미 위성 사업에 진출할 기술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상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고 한화시스템은 방산 통신·레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우주 인터넷 시대의 우주 항공 시스템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인공위성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위성 산업 규모는 2018년 기준 2774억 달러(약 310조1332억원)로 분야별로는 위성 서비스 46%, 위성 제조 7%, 발사체 2%, 지상 시스템 45%다. 세계 지구 관측 위성 시장은 2018~2027년 647기로 2008~2017년 162기 대비 29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7월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우주 발사체에 대한 고체 연료 사용 제한이 완화돼 쎄트렉아이가 가진 지구 관측 기술에서 사업 확대의 기회도 노릴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쎄트렉아이 지분 인수로 위성 분야 사업을 더욱 확장할 수 있게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미 우주 발사체 제작 경험을 갖고 있다. 2014년 7월 한국형 발사체 공장을 완공하고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KSLV-2)’ 액체 로켓 엔진 개발을 맡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항공기 엔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항공기 엔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우주 산업, 3000조원 규모로 고속 성장

한화시스템도 우주 항공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전자광학, 레이저 응용 분야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위성의 ‘눈’ 역할을 하는 ‘전자광학·적외선 탑재체’, 초경량·저비용으로 위성의 군집 운용을 실현해 실시간으로 지구를 관측할 수 있는 ‘초소형 정찰 위성(SAR)’, 우주 인터넷을 실현할 ‘위성 통신 안테나’ 등을 개발해 첨단 위성 기술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공위성은 탑재체와 위성 본체로 구성된다. 탑재체는 인공위성의 용도와 목적이 그대로 반영된 시스템으로, 자외선·가시광선·적외선 등을 관측하는 카메라, SAR 레이다, 통신 위성의 통신 중계기 등이 탑재체에 해당한다. 위성의 눈으로 불리는 전자광학(EO)·적외선(IR)·고성능 영상 레이다(SAR) 탑재체는 감시·정찰·관측을 위한 위성의 핵심 장비다. 한화시스템은 이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한국 유일의 기업이다.

한화시스템은 2009년 다목적 실용 위성(아리랑 위성) 3A호의 IR 센서 개발을 시작으로 2015년 한국 최초로 IR 센서 국산화에 성공하며 현재까지 위성 탑재 장비의 독자 개발 능력을 확보해 왔다.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리며 우주에서도 5세대 이동통신(5G), 롱텀 에볼루션(LTE)급의 인터넷을 전 세계 어디에나 제공할 수 있는 ‘우주 인터넷’ 기술이 급부상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소형 위성 1만여 개를 지구 저궤도에 발사해 인공위성으로 데이터 통신용 그물을 만드는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지구촌 오지에 인터넷 환경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룬’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우주 인터넷 사업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우주 인터넷을 실현하기 위해 중요한 핵심 기술이 바로 수천 개의 위성과 지상 기지국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위성 통신 안테나’ 기술이다. 위성 통신 안테나 관련 시장 규모는 2026년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전어진 기자
그래픽=전어진 기자
한화시스템은 2020년 6월 영국의 위성 통신 안테나 전문 기업 ‘페이저 솔루션’의 사업을 인수해 한화페이저를 설립했다. 2020년 12월에는 미국의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ESA) 기술 선도 기업인 카이메타에 3000만 달러(약 330억원)를 투자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화시스템은 차세대 전자식 위성 통신 안테나 공동 개발을 추진하는 동시에 올해부터 카이메타 위성 안테나 제품의 한국 시장 독점 판권을 확보해 국내외 시장 개척에 나설 예정이다.

한화시스템은 실용성과 시장성이 높은 카이메타의 메타 구조 기반의 안테나 기술과 한화페이저의 반도체칩 기반의 고성능 안테나 기술을 동시에 확보해 해상·상공·지상 전 영역의 저궤도 위성 통신 안테나 사업 역량을 높여 나간다는 전략이다.

김 회장이 우주 항공 사업을 미래 성장 엔진으로 키우는 이유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우주는 사실상 인류의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머스크 CEO와 베이조스 CEO가 우주 항공 사업을 놓고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베이조스 CEO가 설립한 블루오리진은 4월 우주 관광 로켓을 발사할 예정이고 머스크 CEO가 설립한 우주 항공사 스페이스X는 2020년 11월 첫 민간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을 발사한 데 이어 연내 우주를 여행하는 관광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테슬라 등 파괴적인 혁신 기업에 투자해 ‘대박’을 낸 미국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아크인베스트가 올해 첫 ETF 테마로 ‘우주 항공’을 선정하면서 우주 항공 산업에 대한 투자 열기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는 우주 산업 시장 규모가 2016년 3390억 달러(약 337조9850억원)에서 2045년 2조7000억 달러(약 3010조5000억원)로 고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돋보기]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김연철 한화시스템 사장
-김승연의 우주 꿈 실현할 ‘키맨’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김연철 한화시스템 사장 /한화그룹 제공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김연철 한화시스템 사장 /한화그룹 제공
한화그룹의 차세대 먹거리인 우주 항공 사업에서 주목할 인물은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와 김연철 한화시스템 사장이다. 두 사람 모두 30년 넘게 방산과 기계부문을 이끌어 온 ‘정통 한화맨’이다.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 항공 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신 대표는 1987년 한화에 입사해 방산부문을 이끌어 왔다. 한화그룹이 2014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방산부문을 인수한 ‘빅딜’을 주도했다.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12월 한화테크윈(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 대표이사에 올랐고 2018년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장으로 ‘한국의 록히드마틴’을 꿈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미래 비전 달성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2018년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베트남 공장 준공식에 직접 참여할 만큼 신 대표는 그룹 내부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당시 한화큐셀 전무)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당시 한화생명 상무)와 함께 2019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동행하기도 했다. 2020년 12월 대통령 직속 국가우주위원회의 민간 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우주 항공 사업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 사장은 1986년 한화 기계부문의 전신인 한국종합기계에 입사해 한화그룹의 우주 항공 사업, 무역, 기계부문 등 주요 계열사 요직을 거친 엔지니어 출신의 최고경영자(CEO)다. 위성 통신 안테나 관련 해외 선진 기업들을 차례로 인수, 투자하며 우주 위성 사업 분야를 폭넓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 사장은 “한화페이저 설립에 이어 카이메타 신규 투자를 통해 저궤도 위성 안테나 시장에서 기술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등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한화시스템이 보유한 업계 최고의 방산 통신·레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우주 인터넷 시대의 우주 항공 시스템 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우주 항공 사업과 함께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도 힘을 싣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을 통해 디지털 금융 솔루션 신규 사업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