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장 “광물, 깎아 낼 수 없는 아름다움 있죠”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장은 삼성전자 재직 시절부터 광물 수집을 시작해 어느덧 3000여 점의 광물을 모았다. 어느새 40년째 광물 수집을 이어가고 있는 이 소장. 이제는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라는 타이틀보다 광물연구소장이란 직함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광물과 함께 인생 2막을 힘차게 연 그의 수집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장과 광물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미국 출장 때 우연치 않게 들른 자연사박물관에서 광물을 접한 것이다. 대학 시절 금속공학을 전공했으니 광물과 영 동떨어진 삶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광물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눈에 들어온 광물은 그의 호기심에 불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출장 때 본 광물은 저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했어요. 가난하던 시절, 아무런 놀잇감이 없던 때 냇가에서 반짝거리던 돌을 주우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스쳤죠. 저는 아마 그 시절부터 광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번쩍 하고 불을 당긴 거죠.”

처음 수집한 광물은 마노석이다. 겉은 일반 돌인데 눈사람 모양으로 생겼다. 겉모습도 독특하지만 단면으로 갈라 보여 준 모습은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작은 돌 속이 반짝이는 광물로 채워진 것이었다.

“이 광물이 저를 수집 인생으로 이끌었죠. 돌 속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내시경을 이용하거나 조심스럽게 갈라 봐야 하죠. 하지만 수집가들은 꼭 잘라 보지 않아도 들었을 때 무게만으로도 광물이 들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아프리카나 남미,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광물을 수집해 왔다. “수집가에게는 세 가지 덕목이 필요해요. 열정, 돈, 인연이죠. 열정과 돈이 있어도 인연이 닿지 않아 수집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정말 많이 아쉽죠.”

여행지에서 직접 광물을 채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할 때면 수집가의 눈에는 광물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산책을 할 때도 마찬가지. 매일 지나는 산책길에서도 작은 돌, 바위를 그저 지나치지 않게 됐다.

광물을 세공하면 보석이 된다. 그런데 그는 왜 보석이 아니라 광물을 수집하는 것일까. “저는 광물 자체가 아름다워요. 그렇기에 일반 보석으로 세공할 수 없는 거죠. 이 표본들 좀 보세요. 어느 한 부분을 깎아 내 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이 이 안에 그대로 담겨 있거든요.”

그의 말은 정말이었다. 보석에서는 볼 수 없던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광물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평범한 차돌 위에 우아하게 앉은 순금 조각이나, 파란색과 초록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남동석이나, 하얀색 바탕 위에 드라마틱한 대조를 이루는 붉디붉은 능막간석 등. 연구소 1층에 진열된 광물을 이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보니 하나하나 그 존재가 남달라 보였다. 형태적으로도 특별한 것이 많다. 평탄한 돌 위에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자수정, 십자 모양을 한 백연석, 돌에 솜털이 앉은 것 같은 오케나이트,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보석을 만드는 에메랄드 등 크고 작은 광물들은 저마다의 빛깔을 뿜어내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의 연구소는 개인의 수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양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충실했다. 학습을 위해서 250개의 광물표본을 모두 모았다는 그는 현재는 광물의 색에 대한 연구에 한창이다. 똑같은 원소의 광물인데 왜 색깔에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연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기 전만 해도 그의 연구소는 경기도 중등지구과학연구회와 공동으로 지구과학 수업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학생들에게 교육의 장이 됐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그의 지식을 나누었다. 국내에 이만큼 많은 표본을 볼 수 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눈으로 직접 광물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 것은 책으로만 접하는 것과 교육의 질이 크게 달라집니다. 사진으로는 광물의 빛깔이나 생김새를 모두 담아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꿈은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에서 자라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큰 과제가 있다. 연구소의 규모를 좀 더 키워 전시관을 더욱 넓히는 것이다. 수장고에는 미처 전시하지 못한 광물이 1000여 점에 달한다.

“수집에는 완성과 끝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수집해 가는 과정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혼자서 즐기는 즐거움도 크지만 가장 큰 즐거움은 많은 분들과 그 즐거움을 나누 것입니다. 앞으로 연구소가 그런 일들을 잘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장 “광물, 깎아 낼 수 없는 아름다움 있죠”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장 “광물, 깎아 낼 수 없는 아름다움 있죠”
좋은 광물은 어떤 것인가.
“광물을 감상하는 것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좋고 나쁨을 가르는 분명한 기준이 없지 않은가. 그저 작품이 좋고, 마음에 와닿는 것이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광물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감상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수집을 하다 보면 보는 눈이 생기기는 한다. 이 역시 예술작품을 보는 눈이 키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를 들어 루비는 색깔이 붉을수록 가치가 크다. 루비의 특성 때문이다.”

광물 관리는 어떻게 하나.
“광물마다 모두 다르다. 습도, 햇볕, 온도 등 개별적으로 모두 신경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소금도 일종의 광물인데 소금은 흡습성 때문에 밀폐된 용기에 두거나 건조한 조건을 잘 유지해야 한다. 예전에 미국 데스밸리에서 채집한 핑크색 호퍼 구조를 가진 소금 표본이 있었는데 부주의로 햇빛에 노출되는 바람에 탈색돼 본래의 아름다움이 다소 바라기도 했다. 빛에 자주 노출되면 안 되는 원석도 있어서 어두운 곳에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도 광물을 수집하나.
“요즘에는 주로 교육 목적으로 수집한다. 이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광물 표본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또 가족들도 해외에 가면 광물을 사 오기도 한다. 광물 수집가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겠는가.”

연구소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앞서 <광물, 그 호기심의 문을 열다>란 책을 펴냈고 현재도 수집을 통해 얻은 경험, 지식, 그리고 그 수집품을 엮어 많은 분들이 즐겨 읽을 수 있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단순한 소장품의 도록이 아니라 뭔가 재미있으면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집필 목표다.
또한 연구소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이나 유럽의 자연역사박물관에 못지않은 자연사박물관으로서 소장품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국가 또는 큰 재단이 이런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어서 단기적으로는 박물관 내 박물관(museum in museum)의 형태로 대중에게 접근하고자 한다. 역사박물관 또는 과학관, 심지어 미술관의 작은 공간에 전시를 하는 형태다. 이제 박물관도 융합, 복합의 개념이 필요하고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효과적인 전시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지섭 연구소장은…
한양대 금속공학과 출신으로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반도체, LCD부문 등을 거쳐 부사장으로 2010년 퇴임했다. 퇴임 후에는 호서대 IT융합학부 교수를 지낸 후 현재 광물 수집가이자 이야기꾼으로 민자연사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장 “광물, 깎아 낼 수 없는 아름다움 있죠”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9호(2021년 02월) 기사입니다.]